영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혁신한 인테리어 디자인계의 거장이자 사업가인 테런스 콘란 경(卿·sir Terence Conran)이 12일(현지시각) 89세의 나이로 영국 버크셔 자택에서 별세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콘란 가족은 성명서를 통해 “영국인 삶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업적을 달성한 영국 모던 디자인의 창시자이자 선구자였다”고 추모했다. BBC는 또 “콘란경은 ‘좋은 디자인은 사람들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믿음으로 영국 디자인과 문화, 예술의 정수를 전 세계에 알렸다”고 전했다.
1931년 런던 교외인 킹스턴 업톤 테임즈에서 사업가인 아버지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콘란은 여러 미술 작품에 둘러싸여 창의성을 계발하며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다. 런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 앤드 크래프츠’에서 섬유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졸업하지는 못했다. 대신 영국 팝아트를 선도한 조각가이자 당시 그의 스승이었던 에두아르도 파올로치와 이후에도 꾸준히 교분을 쌓으며 디자인 감각을 키워냈다.
1953년 가구 디자이너로 출발한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1964년 영국의 유명 홈 가구 전문 브랜드 ‘해비타트(Habitat)’를 창립하면서. 대중들에게 좋은 디자인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세련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리빙 용품을 선보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영국 중산층 감성을 혁신한다는 목표로 일요일 햇볓 가득한 식탁에서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는 감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고급스러움을 차용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가구, 이탈리아 조명, 프랑스 조리기구,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모듈식 선반, 벽을 장식하는 팝아트 등을 소개했다.
이러한 덕분에 영국 BBC는 콘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바뀌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영국인에게 ‘취향’을 심어놓은 인물”이자 “럭셔리 디자인의 민주화를 이끈 인물”이라고도 소개했다. 콘란은 지난해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1950년대 영국은 전후(戰後) 상흔을 쉽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은 그야말로 감옥같았고, 옛날 가구를 물려받는 게 전부인 시절이었습니다. 식탁에 가족이 모여 온기를 나누게 하고 싶었습니다. 식탁 위에 테이블 매트 등 여러 도구로 하나둘씩 다양하게 채워넣다보면 삶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뛰어난 관찰력과 남다르고 예리한 시각(good eye)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가 13살 때 금속 조각이 오른눈에 튀어 시력을 잃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2011년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왼쪽 눈에만 의지해 세상을 해야 한다는 건 그에게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우게 했다고 했다.
1974년 런던에 처음으로 문을 연 리빙 편집숍 시초 격인 ‘더 콘란숍’은 이후 지난해 한국에 세계 12번째 매장을 오픈하며 명성을 알렸다. 전 세계 50여개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닭을 넣고 구운 뒤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치킨 브릭(chicken brick)’이 그가 내놓은 인기 소품 중 하나. 1970년대엔 침대 매트리스 위에 까는 푹신한 토퍼(topper)를 소개해 “영국의 성(性)생활을 바꿨다”는 평을 받았다. 그때는 침대가 딱딱해 숙면하지 못하는 이들을 관찰해 내놓은 제품이었다.
1983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수백억원 대 자산을 투입하고 1700만권이 넘는 책을 기증해 1989년 영국 디자인 뮤지엄을 세웠다. 팀 말로 런던 디자인 박물관장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성명서를 내고 “전쟁 이후 영국의 피폐한 삶을 재설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바로 콘란 경이 해냈다”면서 “그가 우리에게 남긴 큰 유산은 기억될 것이며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리 퀀트, 토마스 헤더윅, 조너선 아이브 등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 공부를 끝마치진 못했지만 후학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관심으로 2003 년부터 2011 년까지 런던의 컬리지 오브 아트 학장을 역임했다. 50권이 넘는 인테리어, 음식 등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콘란은 롯데백화점과 손잡고 서울에 선보인 콘란샵을 소개하며 지난해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는 디자이너는 98%의 상식과 2%의 미학적 감각으로 이뤄집니다. 시장 트렌드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상상력과 결단력, 창의력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온몸이 자기 확신이란 피부로 둘러싸여야 하지요. 또 보기 좋아도 쓸 데가 없으면 그건 디자인이 아니지요. 화려하고 쓸모 있어 보여도 지나치게 비싸면 그것 역시 좋은 디자인이 아닙니다. 꾸밈없이 소박하고(plain), 단순하며(simple), 실용적인(useful)! 그것이 좋은 디자인의 3대 조건입니다.” 그의 철학을 한 마디로 응축한 단어였다.
그는 ‘콘란 디자인’을 시작하는데 도움을 준 두번째 아내 셜리 콘란을 포함해 4번 결혼했다. 그의 아들 재스퍼와 세바스챤은 모두 디자이너가 됐고, 세 번째 아내이자 음식 작가인 캐롤린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인 톰, 소피, 네드는 음식 관련 서적 집필과 식당 창업에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