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컴백 공연을 기다리는 아미들, 윗줄 왼쪽부터 유나(벨기에), 나나(일본), 벤야다(태국), 프라티마(인도), 시바니싱(인도, 아랫줄 왼쪽부터), 사브리나시스터나스(칠레), 앰버리안(수리남), 아나 판카(15)씨 가족(브라질)./ 각자 제공

“인생의 전부였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저를 살린 게 방탄소년단(BTS)입니다.”

벨기에 국적의 유나 세르넬스(25)씨에게 BTS 노래는 음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보고 싶다’라는 노랫말이 반복되는 BTS의 ‘봄날’을 들으면서 버텼다.“매년 봄이 올 때마다 그 노래가 다시 나를 살게 합니다.” 유나씨는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겨울은 지나고 끝내 봄이 온다는 노랫말이 무너진 마음을 붙들어줬다”고 했다.

14년차 아미인 벨기에인 유나씨가 BTS 멤버 정국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본인 제공

일본 오사카에서 온 나나(50)씨에게도 BTS는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숨구멍이었다. 2020년 말 나나씨의 고등학생 아들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졌다. 나나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들의 병원 치료를 힘겹게 이어갈 때, 나나씨에겐 BTS 음악을 듣고 관련 소식을 찾아보는 시간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상당수 일본인들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올리는 걸 꺼린다. 하지만 나나씨는 자신의 옆모습을 본지에 공개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 슈가에게 자신의 사연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24년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팬미팅 현장에서 일본인 아미 나나씨가 멤버 슈가 사진을 올려다보고 있다./본인 제공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BTS 컴백 공연을 보러 인도, 칠레, 수리남, 태국, 벨기에 등 세계 각국의 팬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삶의 고비 때 BTS 음악이 함께했다고 했다. 유학·이주, 가족의 병환, 우울증, 외로움, 미래가 보이지 않던 청춘.... 저마다 인생의 한복판에서 흔들릴 때 그들은 BTS 노래를 붙들고 버텼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본지가 공연을 앞두고 만난 세계 ‘아미’(BTS 팬)들은 한목소리로 “인간적인 진솔함”을 BTS의 매력으로 꼽았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완벽해 보이지만 인터뷰나 라이브 방송에서는 방황과 상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에서 “저들도 나처럼 완벽하지는 않은 사람이구나”라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미국 빌보드 매거진은 “BTS는 K팝 특유의 기계적인 완벽함에 인간적인 취약성을 더했다”며 “대중은 완벽한 인형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진짜 사람’에게 반응한 것”이라고 했다.

18일 오후 브라질에서 온 아나 판카(15)씨 가족이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전광판에서 송출되는 BTS 컴백 광고 앞에서 BTS 캐릭터 인형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지혜진 기자

아미들도 BTS가 단지 완벽한 무대만 보여주는 팀이 아니라고 했다. 멤버 간 팀워크, 팬들과의 꾸준한 소통, 불안과 상처를 숨기지 않고 꺼내 보이는 BTS 멤버들의 태도가 더 깊은 신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칠레 출신 레슬리 사브리나 시스터나스(45)씨는 “아미들 사이에 ‘우리는 함께라면 불릿프루프(bulletproof·방탄이라는 뜻), 영원히 불릿프루프’라는 표현이 유명하다”며 “이 말은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함께 버텨왔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이번 광화문 공연에서도 멤버들과 팬들이 함께 만드는 특별한 유대감을 직접 느끼고 싶다”고 했다.

BTS는 아미들의 인생 항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 출신 프라티바(23)씨는 2018년 5월 정규 3집의 타이틀곡 ‘Fake Love’ 발표 무대를 본 뒤 BTS 팬이 됐다. 그는 “BTS가 숨 쉬는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어 2022년 한국으로 유학 왔다”고 했다.

8년차 아미(BTS 팬)인 인도인 프라티바씨가 BTS 멤버 뷔의 포스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프라티바씨에게 한국은 처음엔 낯설었다. 한국 생활이 외롭고 버겁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BTS 노래 ‘바다(Sea)’를 들으며 버텼어요.” 프라티바씨는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시련이 있네’라는 가사가 내 처지와 꼭 닮아 있었다”고 했다. 프라티바씨는 광화문 인근에 있는 핀테크 기업에서 일한다. 그는 “BTS 덕분에 한국을 동경하게 됐고, 결국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다”고 했다.

인도 출신 시바니 싱(27)씨도 대학 시절 BTS 노래를 들은 뒤 한국을 찾았다. 그는 “어디에서 왔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BTS가 보여줬다”며 “BTS를 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싱씨는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서 유학했고 지금은 서울의 한 뷰티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한다.

칠레에서 온 레슬리 사브리나 시스터나스(45)씨가 작년 6월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2025 BTS 페스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아미들에게 이번 광화문 공연은 BTS 복귀 무대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멤버들의 군 복무로 인한 긴 공백 끝에 “언젠가 다시 7명이 함께 아미들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태국의 벤야다 박(37)씨는 2019년 방콕 라차망칼라 경기장에서 열린 BTS 콘서트를 본 뒤 팬이 됐다. 대형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에너지와 태국어로 팬들과 소통하던 멤버들의 태도에 마음을 뺏겼다고 했다. 그는 “BTS는 공연을 볼 때마다 더 좋아지고, 컴백할 때마다 더 위대해진다”며 “이번에도 그 역사의 순간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수리남에서 온 앰버리엔 말리하 피어칸(33)씨는 2022~2023년 BTS 멤버들의 군 입대 소식을 들었던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피어칸씨는 직장 화장실에서 소리 내 울었다고 한다. 피어칸씨는 “다시 함께하기 위해 잠시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멤버들의 말을 되새기면서 그들이 다시 뭉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수리남 아미 앰버리안/본인 제공

지난 2019년 서울을 찾아 강남구 논현동 옛 빅히트 사옥을 방문했던 그는 “그 작은 건물에서 출발한 소년들이 광화문 같은 상징적 공간에 서게 됐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무엇보다 7명의 완전체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벅차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