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조영욱 음악감독

영화에 빠진 친구의 친구, 선곡한 음반의 해설지를 써준 글쟁이. 1990년대 음반사 직원이었던 조영욱에게 박찬욱은 그런 남자였다. 그 후로 30년,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 영화의 지평을 일신우일신 넓혀왔다. 지난달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조영욱(62) 음악감독이 받은 음악상은 그 정점이다. 두 사람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시작으로 ‘어쩔수가없다’까지 영화와 드라마 11편을 함께 만들었다. 조 감독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박 감독과 만드는 영화는 늘 새로움을 요구받는다”며 “그래서 할 때마다 힘들고, 힘들어서 재밌고, 재밌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한석규·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접속’(1997)의 음반 작업을 맡으며 영화음악에 발을 들였다. 그가 선곡한 ‘접속’ OST는 한국 영화 최초로 단일 음반 100만장 판매 기록을 세웠다. ‘접속’의 제작사 명필름이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며 ‘친구의 친구’로 알고 지내던 박찬욱을 연출자로 만나게 됐다.

조 감독은 “박 감독은 어떤 음악감독이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연출자”라며 “다른 감독이면 상업성이 떨어진다며 거절했을 음악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줘 저의 음악 세계도 함께 넓어졌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자주 하는 말은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아? 좀 새로운 거 없을까?”다. 그에게 ‘익숙한 것’은 ‘촌스러운 것’이다. 조 감독은 “음악 지식도 풍부한 박 감독이 자신의 고집보다 저의 시각을 새롭게 봐주니 매번 고통스러우면서도 신이 난다”고 했다.

그가 음악을 맡은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CJ ENM

신이 난 조 감독이 박 감독의 작품에 불어넣는 음악은 인간적인 여운을 진하게 남긴다. 조 감독이 즐겨 쓰는 현악기는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은 불협화음 사이로 날 선 긴장을 곧추세운다. 그 결과 박찬욱이 그려놓은 미장센 바깥,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영화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새로움과 남다름으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미지의 영역도 함께 개척했다. 박 감독이 처음 만든 해외 드라마 시리즈에도 조 감독이 참여했다. 영국 BBC 6부작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2019)이 조 감독에게도 첫 드라마였다. 조 감독은 “6부작이면 영화 3편 분량이라 부담스러웠다”며 “그래도 박찬욱 작품이기에 했는데, 결과적으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두 동지의 드라마 작업은 HBO 드라마 ‘동조자’(2024)로 이어졌다.

가장 고민한 작품은 ‘헤어질 결심’이었다. 로맨스를 강조하면 촌스러워질 게 눈에 보였다. 로맨스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로맨스가 오래 남을 음악이 필요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웃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무서운 분위기를 원했다. 제일 어려운 장면이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다른 구직자(차승원)를 살해하는 신이었다. “생각 끝에 ‘만수에게는 살인이 아니라 노동’이라고 결론 내리고 음악을 넣었어요. 음악도 캐릭터와 함께 가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음악’은 “화면에 표현되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음악”이다. “영화음악을 만들 때 가장 흔한 실수는 화면에 있는 것을 음악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라며 “영화음악은 화면을 음악으로 묘사하려 하면 안 되고, 화면이 담지 못한 느낌을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이 평생의 직업이지만, 그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저는 예술가라기보단 화면과 소리의 엇갈림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예술가의 태도는 갖고 있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니까요.”

차기작은 내년 개봉 예정인 류승완 감독의 첩보 액션 ‘휴민트’다. 조인성과 박정민이 남북한 비밀요원으로 출연한다. 액션 영화는 그에게 또 다른 숙제다. “액션 장면에 쓰이는 음악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흔히 듣는 쿵닥쿵닥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자꾸 다른 걸 시도해보는 중입니다.” 현재까지 결론은 ‘관악기를 현악기처럼 쓰는 음악’이다. 조 감독은 “‘휴민트’도 잘 되고, ‘어쩔수가없다’도 내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꼭 받았으면 좋겠다”며 “저는 두 감독이 미장센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영역을 관객께 전해 드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