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65번째 레터는 영화 ‘1980 사북’입니다. 올해 나온 정치·사회 다큐멘터리 중에서 가장 추천하는 작품이에요. 대상을 바라보는 출발점부터 연출의 관점과 자세 등 모든 면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이지 않나, 이런 다큐가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야 우리 영화가 발전하지 않나, 여러모로 꼭 보셨으면 해서 레터로 보내드립니다. 관객을 가르치려 하거나 일방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아요. 보시고 결론은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이런 다큐, 요즘 정말 드뭅니다. 6년간 관계자 100여명을 인터뷰해서 만든 ‘1980 사북’을 보시면 땀과 열정, 뚝심으로 만든 다큐가 어떤 건지 아실 수 있으실 거에요. 우리 역사에서 잊혀선 안 될 사흘, 그 사흘에서 시작돼 아직도 이어지는 상처가 생생한 ‘1980 사북’, 어떤 작품인지 살짝 말씀드려보겠습니다.

1980년 4월 22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의 안경다리 위에서 광부들이 다리 아래로 진입하려는 경찰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엣나인필름

영화관에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블록버스터도 흥행 힘들다 어떻다 하는 요즘에 다큐멘터리를 보러 극장에 간다는 건 매우 특별한 발걸음이겠지요. 그런데도 제가 ‘1980 사북’(감독 박봉남)을 권해드리는 건 그에 값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잘 만든 다큐는 어떤 영화보다도 울림이 크죠. 사실이 주는 힘 때문인데, ‘1980 사북’이 팩트에 대해 접근하는 엄정한 자세는 기자인 제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사북 사건, 혹은 항쟁, 아니면 사태, 또 아니면 폭동. 그 사이에 어딘가에 있는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 6년을 쏟아부었습니다. 저희 지면 기사 쓰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사북을 아예 처음 듣거나 거의 모른다는 답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다큐가 더 의미가 있다 싶었어요.

‘사북 사건’이 무엇인지부터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1980년 4월21일부터 사흘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벌어진 시위, 그 시위로 촉발된 대규모 유혈 사태를 말합니다. 광부들이 임금 인상과 노조 직선제 등을 요구하면서 벌어졌는데, 시위 진압하려 투입된 경찰 중 1명이 광부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숨지고 7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이번 레터 제목으로 쓴 ‘우박처럼 쏟아진 돌멩이’는 당시 투석전 때문에 나온 증언입니다.

광부들은 노조가 사측 편을 드는 어용 노조라고 불만이 많았는데, 노조지부장이 잠적해버리자 지부장 아내를 끌어냈습니다. 아내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어요. 정말 아무런. 그런데 분풀이 삼아 끌어내 기둥에 묶었습니다. 묶어두고 이틀간 집단 폭행했는데 옷을 벗기고 시내를 끌고 다니며 때리고 성적인 학대까지 했습니다. 눈 먼 군중이 폭도로 돌변해 행사하는 폭력은 반드시 시대 탓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다큐 '1980 사북'이 보여주는 2024년 동원탄좌의 모습./엣나인필름

1980년 4월이니 5월 광주가 멀지 않았던 시점, 계엄군 투입을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지며 시위는 종료됐습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후 마을에 보복의 칼바람이 몰아치며 수백 명이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시위 가담자, 지부장 아내 폭행 가담자를 색출하겠다며 새벽에 자는 주민까지 강제로 데려갑니다. 끌려간 사람들은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합니다. 그에 대한 증언이 다큐에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자세하게 적진 않을게요. 쓰다보면 새삼 또 답답하고 화가 날 것 같네요.

역사가 흔히 그렇듯,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이 어려워지는 지점도 있습니다. 고문을 못 이겨 지인을 가담자로 지목하고 원수가 돼버린 이웃, 언제든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에 노끈을 품고 사는 주민도 나옵니다. 고문당하고 출가한 광부도 있는데 다큐 촬영하고 얼마 후 고인이 되셨다고 하네요. 아마 극영화 시나리오를 이렇게 썼으면 ‘거 좀 비약이 심한 거 아니오’라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1980 사북’이 기록한 우리의 실제 역사이니.

다큐 '1980 사북'/엣나인필름

‘1980 사북’은 오직 원본 자료만 찾아내고 검증해 담았다는 점에서도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인터넷 세상, 챗GPT 세상이 되다보니 복붙에 또 복붙한 자료를 검증 없이 쓰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재가공한 자료를 쓰면 훨씬 쉽죠. 원본을 찾다보면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많이 써야하는데 그걸 감수한 다큐는 요즘 개봉관에서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1980 사북’은 카더라 말고 일인칭 증언을 담기 위해, 물어물어서라도 당사자를 찾아내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음성 변조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이 역시 드문 자세입니다. 저는 다큐 중에서도 정치·사회 다큐는 꼭 영화관에서 챙겨보는 편이라 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관객 단 423명이 본 다큐 ‘빛의 혁명, 민주주의를 지키다’도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요즘 정치·사회 다큐가 늘어난 편인데, 일부 다큐는 한숨이 나올 수준이랍니다. 선전선동에만 매몰돼 너무 강요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1980 사북’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어요.

‘1980 사북’은 입장에 따라 엇갈리는 주장 역시 그대로 담았습니다. 역사의 판관은 여러분, 관객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왜 그랬나, 그 후 어떻게 됐나, 보시고 판단해주세요. 앞으로도 훌륭한 다큐로, 역사 앞에 미처 몰랐던 진실과 마주할 기회가 많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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