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조선일보 문화부 영화팀에서 보내드리는 영화 레터 ‘그 영화 어때’에 이어 영화인 인터뷰 시리즈인 ‘그 영화 그 사람’을 시작합니다. ‘그 영화 어때’와 마찬가지로 저와 백수진 기자가 보내드려요. 저희 지면에 나간 기사보다 더 깊은 뒷얘기로 영화인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여러분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 영화 그 사람’ 첫번째 인물은 배우 박중훈입니다. 이번에 배우 인생 40년 만에 처음으로 에세이집 ‘후회하지마’를 냈는데요, 지면에 못 담은 얘기까지 좀 더 살려봤습니다.

1985년 11월 영화 ‘깜보’의 첫 촬영으로부터 40년, 내년에 환갑을 맞는 배우 박중훈은 “세상은 고마움투성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앞으로의 목표도 지난 40년과 마찬가지로 좋은 배우”라고 했다./김지호 기자

1985년 11월 11일 대학생 박중훈은 배우 박중훈이 됐다. 영화 ‘깜보’의 소매치기 역으로 첫 촬영에 들어간 날이었다. 영화사를 찾아가 몇 달간 꽃병의 물을 갈고 걸레질을 하고 은행 잔심부름을 도맡으며 어렵게 오디션을 따낸 배역이었다. 이듬해 개봉한 ‘깜보’로 박중훈은 단숨에 백상예술대상 남자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1990년대 한국 영화계 대표 배우의 화려한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40년, 박중훈(59)은 그간의 회고를 담아 에세이집 ‘후회하지마’(사유와공감)를 낸다. 지난달 29일 만난 박중훈은 “쓰는 내내 고해성사하는 느낌이었다”며 “솔직한 반성과 사죄, 성찰을 담았다”고 말했다. 박중훈은 20대에 국내 3대 영화상인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의 연기상을 모두 받았다. 두 번째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로 흥행 가도에 올라탄 후 ‘우묵배미의 사랑’(1990), ‘투캅스’(1993), ‘게임의 법칙’(1994) 등 장르를 넘나들며 흥행 보증수표로 꼽혔다.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투쟁을 위해 만든 애니메이션 제목이 ‘중훈아 손님 받아라’였을 정도다.

모든 걸 가진 듯했던 그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최고와 최악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1994년이었다. ‘투캅스’가 해를 넘겨 매진 사례를 빚으며 그해 4월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6월에는 결혼, 9월 ‘게임의 법칙’ 성공으로 정상을 만끽했다. 그러나 10월 구속 수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마초 흡입 혐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싶었으나 12월 청룡상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탔다. 곧이어 개봉한 ‘마누라 죽이기’가 또 히트하려는데 다른 약물 건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광고 6건 중 5건이 송사에 휘말리며 살던 집이 가압류되고, 타던 차 한 대와 현금 30만원만 남았다. 이듬해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흥행으로 광고 모델 10건이 몰리며 다시 일어서기까지, 촬영장만큼이나 법정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다.

박중훈은 “결국 사람의 힘으로 40년을 지나왔다”며 “세상은 고마움투성이”라고 했다. 특히 배우 안성기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명세 감독을 은인으로 꼽았다. 그는 “안성기 선배님은 세상을 움직이는 건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준 분”이라며 “선배님이 계셔서 제 인생이 참 좋았다”고 했다. 안성기와 그는 ‘칠수와 만수’ ‘라디오 스타’ 등 4편을 함께했다. 그는 “선배님을 못 뵌 지가 1년 반쯤 됐다”며 “요즘 아무도 안 만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건강이 어서 나아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1991년 그가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뉴욕 유학을 떠날 때 추천서를 써주고 격려했다. 그가 한국 배우 중 최초로 할리우드에 본격 진출한 영화 ‘찰리의 진실’(2002, 감독 조너선 드미)의 계기가 된 영화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였기에 이 감독에게도 깊은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찰리의 진실’에서 그는 ‘이일상’이라는 이름의 형사로 출연했다. 작고한 부친의 이름 일상과 이 감독의 성(姓)을 합한 작명이다. 그가 감독에게 간곡히 부탁해 시나리오와 다른 배역명을 관철시켰다. 그는 촬영 당시 ‘일상 리’ 이름표가 붙은 자신의 트레일러를 바라보며 해내보이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힘들 때 향한 곳은 체육관이었다. “이대로 끝내지 않을 거면 쓰러져 있지 말고 일어나자, 일어나서 운동하자고 생각했어요. 기회가 언제 다시 오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게 준비를 해야 되니까요.” 요즘도 하루에 2~3시간씩 운동한다. 그는 “배우는 일단 외양이 상하지 않아야 한다”며 “그게 잘 이겨내는 것이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뺏기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어려웠던 때에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며 “원망하기엔 제가 너무 많은 걸 받았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저의 계절은 가을쯤 온 것 같다”며 “내년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한 편씩 할 예정”이라고 했다. “누군가 제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기쁨이와 버럭이 수백 명이 춤추고 놀고 멱살 잡고 싸우고 있을 것 같아요.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기쁨이와 버럭이 수백 명의 에너지를 갖고 앞으로도 작품에 임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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