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 극장에서 티켓값을 받고 정식 개봉할 수준의 AI 영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국내 최초 장편 AI 영화가 15일 개봉했다. ‘범죄도시’ 1편을 쓰고 연출한 강윤성 감독의 신작 ‘중간계’다. 총 상영 시간 61분. 기존에도 극장 개봉한 AI 영화가 있었으나 모두 10~20분 길이 단편이었다.
‘중간계’는 컴퓨터그래픽(CG)이 필요한 모든 장면에 AI를 썼다. 촬영 개시는 지난 5월. 개봉까지 불과 넉 달 남짓 걸렸다. 일반 상업 영화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만들어졌다. 강 감독은 지난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CG로는 4~5달 걸릴 장면이 몇 시간 만에 나오기도 했다”며 “AI의 최대 강점은 비용과 시간 단축”이라고 말했다. 단, 연기는 변요한, 김강우, 이무생 등 모두 실제 배우가 한다. 덕분에 AI 배우가 주는 어색함이 없어 훨씬 몰입하기 쉽다.
빠른 개봉은 강 감독이 시나리오를 오래전부터 구상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강 감독이 ‘범죄도시’보다 먼저 쓴 ‘뫼비우스’를 한국적 SF로 키웠다. 필리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쫓는 국정원 블랙 요원(변요한)과 형사(김강우)가 동시에 교통사고를 당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염라대왕에게 쫓기는 액션극이다. 저승사자, 해태, 사천왕 등 18가지 괴생명체는 모두 AI로 생성됐다. AI 영화 ‘원 모어 펌킨’으로 지난해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 대상을 받은 권한슬 감독이 디자인했다.
‘중간계’의 AI 연출을 맡은 권 감독은 “AI의 결정적인 단점은 배우들과 주고받는 연기가 어렵다는 점”이라며 “AI들끼리 액션이라 해도 난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중간계’의 저승사자와 사천왕 격투만 해도 권 감독이 대표로 있는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의 전문가 20명이 동원됐다. 이들이 만든 수백 가지 AI 영상에서 각각 0.2~1초씩 떼다 붙여 하나의 장면으로 어렵게 완성했다. 권 감독은 “CG가 200㎞ 행군이라면, AI는 100㎞ 행군”이라며 “AI가 CG보다 빠르긴 해도, 클릭 몇 번으로 상업 영화에 들어갈 수준의 영상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AI가 눈에 띄긴 하지만, ‘중간계’의 최대 강점은 이야기다. 원래 2시간 분량 줄거리를 절반으로 나눠 정확하게 중간까지 보여준다.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와 ‘파인: 촌뜨기들’을 연출하며 관객의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타이밍을 익히 깨친 강 감독이 가장 궁금한 지점에서 영화를 끝낸다. AI가 아니라 이야기 때문에 2편이 궁금해진다. 강 감독은 “이야기를 반만 보여 드리기 때문에 관람료도 절반인 8000원으로 정했다”며 “2편을 제작할 때는 AI가 더 발전돼 배우들과 인터랙티브한 액션이 들어간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