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열풍 한가운데다. 올여름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귀멸의 칼날 2〉)〉 얘기다. 제작국인 일본보다 한 달여 늦은 8월 22일 개봉해 9월 9일 현재까지 단 하루도 일간 흥행 1위를 놓치지 않으며 406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올해 극장 개봉한 영화 전체에서 이미 통산 흥행 3위, 여전히 1위를 고수하는 것으로 보아 향후 1위도 가능하리라는 예상이다.
일본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개봉 52일 차인 9월 7일까지 2201만 관객을 동원하고 314억 엔을 벌어들였다. 역대 일본 3위 기록이고, 1위는 2020년 공개된 〈귀멸의 칼날〉 극장판 1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하 〈귀멸의 칼날 1〉)〉이다. 그리고 〈귀멸의 칼날 2〉는 일본에서도 개봉 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터라 곧 역대 흥행 2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그러면 일본 영화사상 역대 흥행 1, 2위를 모두 〈귀멸의 칼날〉 시리즈가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듯 일본과 한국, 이외 아시아 각국에 걸쳐 ‘올해의 문화 현상’으로 등극하고 있는 〈귀멸의 칼날〉은 어떤 작품일까?
‘혈귀 사냥꾼’
일본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한 만화가 원작이다. 신예 만화가 고토게 고요하루(吾峠呼世晴)의 첫 장편 연재작이었다. 다이쇼 시대(大正·1912~1926년)를 배경으로, 숯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소년 탄지로가 어느 날 인간을 주식(主食)으로 삼는 식인귀(食人鬼)인 혈귀(血鬼)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동생조차 혈귀로 변하고 말자, 여동생을 인간으로 돌려놓고 가족을 죽인 혈귀에게 복수하기 위해 ‘혈귀 사냥꾼’ 귀살대(鬼殺隊)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만화가 연재되던 초기에는 별 인기가 없었다. 소재도 딱히 신선하지 않고 아직 신인다운 미숙함이 엿보인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만화가 2019년 TV용 애니메이션화돼 방영되면서부터 모든 게 바뀌었다. 원작 만화의 부실한 요소들을 대폭 개선하고, 특히 액션 연출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성도를 보여줘 사실상 원작을 재창조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여세를 몰아 2020년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1〉이 개봉하고, 일본 내 모든 흥행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한국에서도 〈귀멸의 칼날 1〉은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임에도 222만 관객을 끌어모아 충격을 안겼다.
그러자 딱히 비범한 구석이 없던 원작 만화까지도 애니메이션 인기 덕에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가게 된다. 현재까지 총 판매량 2억2000만 부. 단행본이 총 23권으로 완결됐으니 권당 1000만 부 가깝게 팔려나간 셈이다. 일본에서 이보다 총 판매량이 더 높은 만화는 〈원피스〉나 〈드래곤볼〉 등 대여섯 편 더 있지만, 권당 판매량으로는 〈귀멸의 칼날〉이 단연 1위다. 이렇게 〈귀멸의 칼날〉이라는 IP 하나로 출판계도, 방송계도, 영화계도, 이 밖에 각종 팬시 산업계도 모두 큰 대목을 맞이하고 혜택을 나누어 갖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수혜자’
이 정도 현상적 호응을 얻어내는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으레 그 인기 요인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귀멸의 칼날〉 역시 첫 극장판 영화가 개봉됐던 2020년부터 지난 5년 내내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성공 요인 분석이 언론미디어를 통해 쏟아졌다.
개중에는 근래 국제 정세나 가히 문명사(文明史)적 해석에까지 이르는 거대 담론도 적지 않았다. 〈귀멸의 칼날〉 속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왜 지금 반향(反響)을 끌어냈는지부터 미국과 중국의 신(新)냉전 양상이 낳은 국제적 불안과 공포가 반영됐다는 논리까지 끝도 없었다.
물론 이런 거대 담론이 실제로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콘텐츠도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단 한 편의 콘텐츠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쏟아진 일련의 콘텐츠에서 유사한 경향들을 포착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흥행을 거둔 콘텐츠라도 그에 대한 개별적 인상 비평을 통해 거대 담론을 끌어내려는 태도는 여러모로 난센스다. 나아가 〈귀멸의 칼날〉은 사실 그 흥행 요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무지막지한 거대 담론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다.
〈귀멸의 칼날〉은 여러모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수혜자’라는 견해가 일본 현지 대중문화 잡지나 5채널 등 집단 게시판 사이트의 만화 팬들이 동의하는 공통된 입장이다. 단순히 ‘타이밍’이 좋아서라는, 어딘지 맥 빠지는 해석이긴 해도 생각 외로 그쪽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 부문 전반에 걸쳐 2020~2023년 사이 일어난 특이한 현상들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중의 옥외 활동이 제한된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여가’로서 미디어 콘텐츠 소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폭증했다. 이 시기 등장한 갖가지 미디어 콘텐츠 상당수가 소위 ‘깜냥에 비해 과분한 인기를 누렸다’는 것이다.
〈귀멸의 칼날〉은 그중에서도 그 타이밍이 가장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로 꼽힌다. 2019년 TV용 애니메이션이 얻어낸 주목도가 곧바로 팬데믹을 만나 평소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딱히 즐기지 않던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는 호재를 맞았다. 또 타이밍 좋게 극장판 영화가 2020년 10월 등장해 팬데믹 충격으로 몸도 마음도 지친 대중에게 시선을 돌릴 만한 화젯거리로서 소개됐고, 여기서부터 ‘〈귀멸의 칼날〉 신화’가 쓰인 흐름. 당연히 〈귀멸의 칼날〉만 이런 것도 아니고, 현대 대중문화 콘텐츠의 주요 성공 비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타이밍의 문제 또는 이른바 대진운(對陣運)의 문제다.
‘우익 논란’
그럼 이제 가장 주요한 성공 요인인 타이밍의 문제를 제외하고 다른 부수적 요인들을 살펴보자. 언급했듯 지난 5년 동안 숱한 거대 담론들이 쓸고 간 자리지만, 잘 다뤄지지 않은 부분들도 존재한다. 특이하게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귀멸의 칼날〉에 대한 비판 요소로 거론되던 부분들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비판 요소는 역으로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는 특이한 속성을 간과(看過)한 탓에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먼저 한국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비판 지점인 ‘우익(右翼) 논란’을 짚을 필요가 있다. 반일(反日) 성향이 강한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불이 지펴져 언론미디어로까지 옮아 붙은 논란인데, 이 탓에 독도 관련 활동으로 잘 알려진 시민단체 반크(VANK)에선 〈귀멸의 칼날〉을 서비스하고 있는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 “전범국(戰犯國) 일본의 역사를 똑바로 알리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주인공 탄지로의 욱일(旭日) 문양 귀걸이 디자인이라든가 자경단(自警團) 귀살대 설정이 일제(日帝) 학도병을 떠올리게 해 일본 군국주의(軍國主義)를 미화한다는 등의 비판은 사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아니다.
‘다이쇼 로망’
한국 측 비판 요소와 성공 비결이 한 몸에 담기는 지점은 바로 〈귀멸의 칼날〉 시대 배경이 다이쇼 시대라는 점이다. 한국에선 해당 시기가 정확히 일제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이기에 해당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 것 자체에 민감한 편인데, 특히 근래 들어 ‘다이쇼 로망’이라는 풍조가 유행이어서 더 그렇다.
‘다이쇼 로망’은 다이쇼 시대의 낭만주의 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대중문화계에선 대략 20여 년 전부터 이 ‘다이쇼 로망’을 새로운 상업적 코드로 받아들여 특히 10여 년 전부터는 꽤 빈번하게 다이쇼 시대 설정 콘텐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이쇼 시대는 사회·문화적으로 ‘화양절충(和洋折衷)’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시작된 서양 문물의 본격적 도입이 일본 전통문화와 혼합돼 독특한 문화 양식을 낳았다. 예컨대 의상 면에선 기모노 위에 하카마를 걸친 뒤 부츠나 구두를 신는 ‘하이칼라’ 스타일이 크게 유행했다. 음식 메뉴로도 카레라이스, 돈가스, 크로켓 등 양식 절충 메뉴들이 이 시기 등장해 아직까지도 일본의 대표적 메뉴들로 각광받고 있다. 음악 측면에서 역시 서양의 폭스트롯과 일본 민요 양식이 혼합(混合)된 엔카(演歌)가 완성된 시기로 알려진다.
사회적으로도 다이쇼 시대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잘 알려진 시대다. 다이쇼 시대에 일어난 민주주의, 자유주의 풍조를 가리킨다. 이 시기 좌파 세력이 득세해 각종 노동운동과 무정부주의 운동 등이 횡행(橫行)한 근대화의 진통기(陣痛期) 인상이 강하다.
이렇듯 서양의 것과 일본 전통의 것, 전근대와 근대의 교착점(交着點)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매력을 끌어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대표적 상업적 코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 〈다이쇼 야구 소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따라온 〈다이쇼 소녀 전래동화〉, 영화 버전이 특히 대성공한 소설 〈나의 행복한 결혼〉 등이 잘 알려졌고, 근래 성황리에 내한 공연을 마친 일본 그룹 요아소비는 2021년 아예 ‘다이쇼 로망(大正浪漫)’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이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 2007~2008년부터 시작된 소위 ‘경성 시대’ 문화 코드 유행이다. 정확히 다이쇼 시대 배경은 아니고 쇼와(昭和·1926~1989년) 시대 초기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2007년 KBS2 드라마 〈경성스캔들〉, 2008년 영화 〈모던 보이〉 등부터 2016년 영화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일본 ‘다이쇼 로망’ 콘텐츠가 보여준 저 ‘화양절충’의 독특한 패션 센스 등 문화 양상과 독특한 사회 분위기를 차용(借用)한 인상이 강하다. 한국에서 다이쇼 로망 비판이 시작된 것도 대략 〈아가씨〉의 개봉 즈음으로 여겨진다. 유럽의 ‘벨 에포크(Belle Epoque)’처럼 식민지에 대한 수탈로 이룬 번영의 모습인데 그 피해를 입은 한국에서 왜 그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느냐는 비판이 주류다.
근대와 전근대의 교착점
이 다이쇼 로망이 일본에서 이토록 오래 인기를 끄는 이유가 있다. 이 독특한 사회·문화 교착점으로서의 매력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이기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만 동시에 전근대이기도 해 음양사(陰陽師)가 주술(呪術)을 펼치기도 하고, 전형적인 전래 요괴(妖怪)의 입에서 자본주의 사회 비판과 무정부주의적 비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귀멸의 칼날〉 역시 이 시대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콘텐츠로서 저 다이쇼 로망 노선의 최대 수혜자라 볼 수 있다. 독특한 배경 설정이 주는 특색이 해외 문화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해 나름 글로벌 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 일본인들에게 다이쇼 시대 자체가 번영과 풍요의 시대로서 미화되는 경향도 강하다. 한국에선 1980년대 버블 시대를 일본 최고 번영기처럼 여기지만, 정작 일본에선 오히려 살기 어려웠던 시대로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빙하기 세대’ 저술가로 알려진 하야미즈 겐로(速水健朗)도 《부인공론》 기사를 통해 “버블 시대를 살아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지만, 당시 일반 서민은 호경기에 오히려 분개하고 있었다”며 “돈을 버는 건 주식이나 토지를 가진 자뿐 서민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물론 다이쇼 시대도 실제론 사회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지만, 어찌 됐든 해당 시대를 살아본 이들은 사라지고, 저 독특한 문화 양식과 어딘지 들썩거리는 흥분된 사회 분위기만 상상하게 되니 ‘살기 좋았던 시대’로 여겨진 셈. 이렇게 동경 심리가 부풀어 올라 해당 시대를 다룬 콘텐츠에도 열렬하게 반응했다는 순서다. 한국에서는 비판받지만, 사실은 일본에서나 해외 각국에서나 성공 비결에 속하는 〈귀멸의 칼날〉의 독특한 지점이다.
《소년점프》의 성공 공식 그대로 따라
한편, 일본에서의 〈귀멸의 칼날〉 비판은 보다 근본적인 부분, 즉 ‘이런 신드롬이 일어날 만한 콘텐츠가 애초 아니었다’는 점에 집중돼 있다. 그중에서도 ‘빤한 《소년점프》식 왕도(王道)물’이라는 비판이 다수다. 여기서 《소년점프》는 〈귀멸의 칼날〉이 연재된 일본 최대 발행 부수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를 가리키고, ‘왕도물’이란 그 《주간 소년점프》에서 대략 1980~90년대부터 주도하고 있는 나름의 성공 공식을 따르는 만화를 가리킨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는 있다. 《중앙일보》 2025년 8월 25일자 기사 〈역대급 흥행속도 ‘귀멸의 칼날’… 의지와 연민의 휴머니즘 통했다〉를 보자.
〈‘귀멸의 칼날’은 ‘소년 점프’ 성공작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노력과 우정, 승리라는 키워드다. 힘든 훈련으로 재능을 꽃피우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전우가 돼서 슬픔과 고통을 겪지만, 결국 승리한다.〉
우정, 동료, 노력, 성장 신화, 새로 나타난 적과 연속적으로 대결하는 배틀물 형식, 그리고 승리…. 과거 《주간 소년점프》 히트작들인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 〈바람의 검심〉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이 모두 거친 공식이다.
그런데 〈귀멸의 칼날〉의 경우 국내 상당수 언론미디어 해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붙는다. 왕도물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지만 이외에 다른 요소들이 결정적 역할을 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식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들과 똑같은 공식을 따랐을 뿐이라면 왜 〈귀멸의 칼날〉만 그중 툭 튀어 올라 현상적 인기를 누렸는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귀멸의 칼날〉은 여러 측면에서 이 왕도 공식을 그대로 따랐기에 성공한 콘텐츠라 봐야 한다. 지금은 이 왕도 공식이 포화에 이르렀다는 판단하에 그를 의도적으로 따르지 않으려는 ‘사도(邪道)’물의 전성시대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격의 거인〉 〈체인소맨〉 〈도쿄구울〉 등 어둡고 비관적인 세계관에 특별히 우정도 승리도 없는 우울한 ‘다크 판타지’가 득세하는 시대다. 성장 신화 측면에서도 근래는 아무 노력 없이 어느 순간 어떤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뛰어난 능력이 주어진다는 식의 설정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지메와 히키코모리의 시대’
그렇기에, 다소 잔혹한 묘사를 제외하자면, 오히려 ‘왕도물’ 정석을 보여주는 〈귀멸의 칼날〉이 돋보일 수 있었다는 의견이다. ‘빤한 공식임에도’가 아니라 ‘빤한 공식이기에’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소년점프》식 왕도’는 사실상 1980~90년대 유소년~청년층이 겪던 현실에 일종의 문화적 보상으로서 구성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는 일본 젊은 층에 있어 ‘이지메와 히키코모리의 시대’로 이해된다. 한국에선 ‘집단 따돌림’과 ‘은둔형 외톨이’가 이에 해당한다.
이지메 문제는 일본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해 1985년에는 공적 개념에서 처음 조사가 이뤄지고, 1986년 도쿄도 나카노구에서 일어난 ‘나카노후지미 중학교 이지메 자살 사건’을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때 상처를 입고 방으로 숨어든 이들이 버블 붕괴 이후 1990년대 히키코모리 문제로 이어져 지금은 40~50대 중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우정도 동료도 일상에서 기대하기 힘들어진 시대, 특히 버블 붕괴 이후 개개인이 자폐(自斃)화되는 사회 흐름에서 탄생한 게 이 ‘《소년점프》식 왕도’라는 것이다.
이런 성공 공식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일본 청년들뿐 아니라 세계 각지 청년 세대에 문화적 보상으로서 역할하리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외로운 청년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당장 일본만 해도 2023년 일본 최대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지금이야말로 기업이 마주해야 할 청년의 외로움〉 보고서를 내놓고 비단 히키코모리 문제만이 아닌 평범한 20~30대 직장인 청년들의 극단적 고립 상황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나아가 지금은 전 세계가 이런 분위기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 초연결 시대에 격리된 우리들》에서 2020년대에 직면한 각종 ‘혐오의 시대’ 양상을 두고, 소셜미디어 등의 초연결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의 ‘가짜 연결’에 의존하느라 오히려 고립돼 버린 현대인들이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에 찬 메시지를 퍼 나르는 행동에 보상을 주는 동시에 혐오 공동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해석한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도 저서 《리퀴드 러브: 사랑하지 않을 권리》에서 ‘유동하는 현대인’의 고립과 고독, 또 관계에 대한 열망과 그 실패를 놓고 사실상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 지적한다.
‘왕도’는 여전히 먹힌다
이러니 이 ‘《소년점프》식 왕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고, 이를 유행에 뒤떨어진다고 폐기 처분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귀멸의 칼날〉이 이토록 현상적인 인기를 누린다고 볼 수도 있다. 앞선 비관적 다크 판타지 유행은 오히려 대중의 변덕 내지 다양한 선택지를 요구하는 흐름에서 나온 부수적 현상이었을 뿐, 여전히 왕도는 먹히고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요구된다는 얘기다.
이처럼 〈귀멸의 칼날〉 성공 해석은 파고 들어갈수록 허탈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저 ‘타이밍’과 ‘운’이 좋아서, 또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이어서’ ‘지난 20여 년 이어져 온 배경 설정 유행에 적극 편승해서’라는 식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이 한꺼번에 만나 동시 클릭되며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귀멸의 칼날〉이 유난히 돋보일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 허탈한 해석 와중에도 잘 살펴보면 발신 국가의 독특한 면면과 의식 세계, 현대사회가 맞닥뜨린 현실 등이 아스라하게 엿보이기도 한다. 인간 삶의 작은 편린(片鱗)들이 흩뿌려진 광경 말이다. 문화란 결국 이런 편린들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지점이라는 게 본질이다. 이를 찾아보는 과정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