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이 19일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 행사를 하고 있다. '액터스 하우스'는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동시대 대표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관해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뉴시스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을 고르는 비결이요? ‘에라 모르겠다’죠.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잖아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병헌의 글로벌 히트작 선택 비결은 “인생, 뭐 있어”였다. 이병헌은 19일 오후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린 ‘액터스 하우스’ 대담에서 “작품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긴 시간 심사숙고하지만 마지막엔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 같이 답했다. 후회를 남기느니 미련 없이 자신을 던져버리는 쪽을 고른다는 답변이었다.

이날 부산 동서대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그는 2000년대 초반 일화를 들려줬다. 그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지. 아이. 조’,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두고 고심하던 때였다. 선택을 못해 고민하던 그는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박 감독은 해보라고 했고, 김 감독은 하지 말라고 했다. 조언을 구하기 전보다 더 미궁에 빠졌다. 결국 다하는 걸로 결정했다. 이병헌은 “세 작품을 하느라 그 무렵이 제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며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다.

이날 대담은 일본에서 건너온 팬들과 취재진으로 객석 1000석이 빈 자리 없이 들이찼다. 오후 7시로 예정된 토크에 5분쯤 늦은 이병헌은 “차가 너무 막혀서 화장실도 못 갈뻔 했는데 여러분 보려고 달려왔다”며 가쁜 숨을 골랐다. 곧바로 객석에서는 걱정말라는 듯 큰 박수가 나왔다.

배우 이병헌이 1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 행사에 참석해 관객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뉴스1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지만 무대에 설 때는 여전히 떨린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설 때와는 달리 무대에서 ‘안녕하세요, 이병헌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발가벗은 느낌이 든다”며 “공황 상태가 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에게 무대 공포증을 탈출한 신통한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대배우 알 파치노였다. “전에 아카데미 시상자로 나가기 전에 LA에서 알 파치노와 식사를 했는데 ‘다른 캐릭터로 나선다고 생각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아카데미 무대에서 ‘헬로우, 이병헌입니다’ 애기하는 순간 이병헌이 되면서 캐릭터가 해제됐어요.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틀 했죠” 이병헌이 말한 아카데미 시상식은 2016년 제 88회 시상식이다. 당시 그는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자로 선정돼 미국 배우 소피아 베르가라와 함께 외국어영화상을 시상했다. 실제로는 매우 능숙하게 영어로 인사하고 상을 건네 박수를 받았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의 목소리 연기로도 명성을 쌓았지만 한때 자신의 목소리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웃는 얼굴 역시 어릴 때는 보기 싫은 부분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제 별명이 고릴라였다”며 “입술이 두껍고 입도 커서 웃는게 약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제 목소리를 사람들이 칭찬해서 처음엔 장난인줄 알았다”며 “자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한게 굉장히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후배들에게 얘기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목소리가 제 장점인데 왜 ‘오징어 게임’이나 ‘케데헌’에서 변조시켜 내보냈을까요”라고 농담을 던져 객석에 웃음이 터졌다.

이날 관객 질문 중에는 배우 지망생의 고민이 많았다. 한 지망생이 “연기에 몰입이 안 될 때 돌파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병헌은 “너무 보여주려고 하지 말라”며 “뭔가를 너무 과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관객이 불편할 수 있다”고 했다. “긴장하고 있으면 자기 실력에 반도 안 나와요. 자기를 릴렉스시켜놓고 자기가 입어야 되는 감정만을 생각하면 순수하게 표현하기가 쉬울 거에요.”

1시간 가량의 관객 대화는 내내 열띤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이병헌은 마무리 소감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말을 기다리고 계셨다니 배우로서 흐뭇하다”며 “1시간 지나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지려는데 끝나니 아쉽지만, 뜻깊은 시간에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