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30년 차 영화배우가 됐습니다. 부산영화제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어요. 30년이 돼서야 조금 배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 무대에 섰습니다. 그럼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시작해볼까요.”
배우 이병헌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7일 막을 올렸다. 1996년 9월 부산 수영만 야외극장에서 첫걸음을 뗀 BIFF는 한국 영화를 견인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은 이날 오후 8시쯤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막을 올린 개막식은 배우 이병헌의 단독 사회로 진행됐다. 국내외 영화인 4500명이 빈자리 없이 객석을 메웠다.
개막식에 앞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에서는 일본 영화 ‘파이널 피스’의 배우 와타나베 겐, 8년 만에 내한한 ‘레지던트 이블’의 배우 밀라 요보비치가 미소와 함께 입장했다. 올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으로 초청받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양쪽에 아내와 딸의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으며 개막식장에 들어섰다. 영화 ‘히트’의 마이클 만 감독도 아내와 레드카펫을 밟았다. 블랙핑크의 리사가 깜짝 등장해 잠시 객석이 술렁이기도 했다.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은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1회 영화제 때 부산에 와보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며 “감옥에 갇혀있다가 이제야 왔는데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만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계속 나아가야 한다”며 “이 상을 그 싸움의 전선에 있는 모든 독립영화인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올해 개막작인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과 배우진은 개막식 막바지에 무대에 섰다. 이병헌이 박 감독에게 “제가 처음 사회를 해봤는데 어땠나요?”라고 묻자 박 감독이 “계속 연기만 해야겠다”고 답해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박 감독은 “처음 부산영화제를 만든다고 했을 때 한국에서 이게 되겠나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영화제가 되었다”며 “30회 개막작으로 상영되다니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말했다. 배우 손예진은 “정말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올해 BIFF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 영화제로의 변신이다. 아시아 영화를 초청하는 경쟁 부문을 신설해 폐막식에서 ‘부산 어워드’를 시상한다. 대상,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 등 5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가린다. 올해 초청작으로는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여행과 나날’(감독 미야케 쇼, 주연 심은경), 배우 서기의 감독 데뷔작 ‘소녀’ 등 14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장은 나홍진 감독, 심사위원은 홍콩 배우 양가휘, 이란 감독 마르지예 메시키니 등이 맡았다. 칸·베네치아·베를린 등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폐막식에 참석한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선 거장의 최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섹션의 작품이 지난해 17편에서 올해 33편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파나히 감독의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그저 사고였을 뿐’, 올해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넷플릭스 ‘전,란’을 개막작으로 올리며 강조했던 대중성도 살렸다. 누적 시청 수 3억1420만회로 역대 넷플릭스 영화·시리즈 중 최다 기록을 세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싱어롱 상영회가 20일 국내 최초로 열린다. BIFF는 오는 26일까지 열흘간 이어진다. 작년보다 17편 늘어난 64국 241편의 공식 초청작이 영화의전당, 동서대 소향씨어터 등에서 관객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