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늘 교수 연구실 복도에 버려진 책과 물건이 한가득 쌓인다. 매 학기 은퇴하는 교수 연구실을 비우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풍경. 그 버려진 쓰레기 중 보직과 이름이 새겨진 검은색 자개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버려진 박스에는 돌덩이 같은 것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뭔가 살펴보니 수많은 감사패였다. 이런 것까지 버리나 처음에 낯설었다. 저 수많은 이름 새겨진 흔적의 잔여물들을 왜 버려야 했을까.

그 은퇴자의 말을 옮겨본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 대부분이 더 빠르고 쉽고 정확하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욕심만 내려놓으면 내가 소유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제 창의적 사고로 무언가를 채워야 할 때다. 그러려면 나부터 비워야 한다. 오히려 미리 정리하고 비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과거에는 추억을 간직하며 떠나는 것이 은퇴였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간 것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것과의 과감한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 은퇴란 설명이었다. 그의 말에선 자신의 공간을 비우고 사고의 공간을 비우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수많은 공간이 있지만 그중에서 많은 공간이 ‘잠금’ 상태로 비어 있는 곳이 대학이다. 그런데 공간 부족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 또한 대학이다.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하다.

기업을 보자. 특정한 직급을 갖게 되면 칸막이가 생기고 분리된 공간을 부여한다. 더 높은 직급을 갖게 되면 그 소유하는 공간이 더 넓어진다. 그리고 방이라는 공간으로 들어가 소통을 고민한다. 애초 조직의 리더나 전문가에게 방을 준 것은 그 공간을 창의적으로 사유화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 자리 잡은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두고 있는지 묻고 싶다. 채우면 벽이 생기고 문을 만들어야 하고 잠가야 한다. 반대로 잠금을 풀면 문이 열리고 벽도 허물 수 있다. 매년 끊임없이 논쟁이 되는 공공기관의 공간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독립된 공간에 있는 리더라면 상대적으로 은퇴 또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미래와 혁신을 논하기 전에 지금 당신이 자리한 공간, 내 것이 아닌 공간을 한번 재해석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