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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李長鎬·78) 감독은 1970~80년대 한국 영화 전성시대를 일군 주인공입니다. 28세에 데뷔작으로 만든 ‘별들의 고향’으로 그는 1974년 대종상(大鐘賞)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1980년엔 ‘바람불어 좋은 날’로 최연소(最年少)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1985년 영화 ‘어우동’으로 48만명 관객을 동원해 가장 잘 나가는 스타 감독이 됐습니다. 관객 5만명이면 대히트작으로 부르던 시절입니다.

이장호 감독이 2023년 8월 2일 서울 북아현동 사무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 큐시트 참고자료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홍익대학교 중퇴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배우다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했다./송의달 기자

◇‘박정희 반대’에서 ‘이승만·박정희’ 지지로

그는 1980년대 문화 운동 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결성 당시 민족영화분과위원장을 맡았고 스크린쿼터(screen quota·한국 영화 의무 상영 일수) 폐지 반대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逝去)한 다음날 새벽에 아버지가 ‘만세 만세’를 외칠 정도로 집안 전체가 박정희 대통령에 한(恨)이 맺힌 게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이 감독은 지금 확실한 ‘우파 문화·예술 전사(戰士)’입니다. 그는 2011년 시작된 북한인권국제영화제의 공동조직위원장과 2022년 및 2023년 락스퍼(Larkspur)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연이어 맡았습니다. “인권(人權)은 어떤 정치적 이념보다 상위에 있습니다. 인권에는 좌우(左右)가 존재할 수 없지요. 영화제에 출품된 북한 인권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감독의 말입니다.

이장호 감독이 2022년 락스퍼국제영화제 포스터 앞에 서 있다. 그는 2022년과 2023년 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연이어 맡았다. 락스퍼꽃은 ‘자유’와 ‘정의’를 상징한다. 자유·정의·인권을 캐치프레이즈로 한 락스퍼영화제는 2021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송의달 기자

그는 요즘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 제작 준비로 바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애국가(愛國歌) 가사의 후렴(後斂)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에서 따 왔습니다. 절대자(絶對者)인 하느님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이 숱한 위기를 넘기고 오늘의 성취를 이뤘다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기자는 이달 2일 낮 서울 북아현동 사무실에서 이 감독을 만났습니다.

- ‘하보우만의 약속’ 영화를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다가 그것만으로는 속이 안 찼어요. 탄핵의 부당성 등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 의한 건국(建國)부터 대한민국 역사 전체를 다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영화의 끝부분은 윤석열 정부 출범입니다.”

◇“내년 봄 상영...건국부터 윤석열 정부 출범까지”

- 지금 어느 정도 제작하고 있습니까?

“시나리오 역할을 하는 큐시트(cue sheet·방송이나 공연 따위의 연출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놓은 일정표) 자료를 정리하고 있어요. 제작 경비는 독지가를 중심으로 거의 마련됐고 흥행과 홍보 등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의 하나로 영화 티켓을 미리 판매할 작정입니다. 내년 봄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1948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 중앙청 광장에서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사회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 기념식. 이 자리에서 이승만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가 넘치는 새나라 건설'을 다짐했다./국가기록원 제공

-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주 대상은 누구입니까?

“미래의 대한민국 주역, 즉 지금 중고교·대학생과 청년들이 많이 볼 수 있게 만들려 해요. 문재인 정권 관련 부분은 삽화와 시사만화 등을 많이 활용해 약간 난센스 코미디(nonsense comedy)처럼 제작하려 합니다. 20~30대를 실무자로 많이 쓰고 컴퓨터그래픽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영화적 감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 영화 제목에 종교적 색채가 납니다. 원래 기독교 신자입니까?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 개봉 무렵부터 성경 공부를 시작해 크리스천이 됐어요. 그 영화를 개봉상영한 명보극장의 주인인 신영균 선배님이 장로로서 모임을 주관한 ‘신우회(信友會)’에 저도 가입했지요.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느낌으로 다가 왔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지갑 속에 부적(符籍)을 넣고 있던 사실을 고백하고 불태웠죠. 그래도 영화 흥행은 잘 되었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복귀작인 '바람불어 좋은 날'의 포스터. 이 감독은 1970년대 후반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3~4년 동안 영화 제작 일에서 배제됐었다.

그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그후 허병섭 목사라는 분이 저를 보고 싶다 해서 만났더니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 달라. 목회자들이 하는 역할을 당신이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영화를 인기나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분 말씀에 감동받았어요. 이후에 ‘어둠의 자식들’ 같은 현실을 고발하는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었어요.”

◇“대한민국은 하느님이 일으켜 세워주신 나라”

- ‘하보우만의 약속’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저는 하느님과 대한민국의 ‘약속’이라는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한민국은 하느님이 일으켜 세워주신 나라다,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朴正熙) 두 분 대통령은 하느님이 선택했다고 믿어요. 성경(聖經)의 구약을 보면 모세(Moses)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埃及·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잖아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모세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봐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인간이 못하는 걸 하느님이 해주신다고 생각해요.”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Wikipedia-필리프 드 샹파뉴 그림
1920년 12월 중국 상하이에 도착한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환영 모임에 참석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화환을 두른 이가 이승만, 그 왼쪽은 이동휘 국무총리, 오른쪽은 안창호 노동국 총판/조선일보DB

이 감독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저도 한때 두 분 대통령을 독재자(獨裁者)라며 미워하고 원망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오해를 많이 했구나’하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6.25 직전 해방 공간에 박헌영이 남로당 세력을 확대할 때 같다’는 불안과 위기감이 커졌어요. 그때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해졌죠. ‘하보우만의 약속’ 영화에선 저처럼 속아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변한 얘기를 많이 담으려 합니다.”

- 지금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존경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내면(內面) 깊숙이 받아들인 분입니다. 소년 시절에 ‘이순신 장군처럼 살아보고 싶다’라는 의지(意志)를 가졌고, 초등학교 선생님에 이어 군인·국가 경영자가 되고서는 그게 더욱 강해져 자기 목숨을 건 사명(使命)으로 삼았어요. 이승만 대통령도 똑같은 게 청소년 때 왕권(王權) 정치에 강한 회의(懷疑)를 느꼈어요. 그래서 역적이 돼 감옥살이를 하며 수난당하고 기독교와 영어를 터득해 평생을 조국 독립과 건국에 바쳤지요. 두 분은 초심(初心)대로 인생을 끝까지 마친 진짜 위인(偉人)이예요. 지금 정치인들에겐 없거나 부족한 부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께 불손하게 생각한 것 사과드려”

- 두 분 대통령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요?

“그렇습니다. 대항할 만한 철학도 없으면서 그 사실을 빨리 고백하지 못하고 삐뚤게 살아온데 대한 후회가 많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처럼 올바른 국가의식과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분이예요. 제가 박 대통령께 불손(不遜)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정말 잘못했습니다. 사과(謝過·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드립니다.”

1966년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 탄신일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이 충남 아산 현충사 본전 앞에서 기념(紀念) 나무를 심고 있다./뉴시스
조선시대 숙종이 써서 하사한 현충사 현판(위)과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직접 쓴 현충사 현판(아래)/조선일보DB
1968년 4월 27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에 박정희 대통령(왼쪽에서 세번째)과 육영수 여사가 참석해 지켜보고 있다. 김종필(왼쪽에서 두번째) 당시 민주공화당 의장이 박 대통령 옆에 있다./조선일보DB

- 하지만 아직 두 분을 비난하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숭앙(崇仰)하고 숭모(崇慕)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이 점점 불길이 돼 퍼지고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습니까?

“1980년대 후반 김대중 후보가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연설할 때 김 모 여자배우를 데리고 가 지원한 게 유일했어요. 그 후 작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尹錫悅) 후보를 처음 지지했어요.”

-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지난 대선에선 누가 야당 후보가 됐더라도 그를 지지했을 거예요. 사람 보다 정권 교체가 훨씬 중요했지요. 윤 대통령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진 않았어요. 그러나 추미애, 조국 등에 맞서는데서 강한 이미지를 받았어요. 그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적절한 시기에 나온 尹 대통령...종북세력 정리해야”

-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딱 ‘적절한 시기’에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 하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이을 수 있다는 조짐이 보여요. 김영삼 이후 대통령들은 자유에 대한 확신이나 북한에 대한 단호함이 없었어요. 정치적 테크닉(technique)만 습득한 이들과 윤 대통령은 크게 달라요.”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중앙시장을 찾아 어퍼컷 세리모니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대통령 인수위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 문화예술계와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화예술에 대한 건 바라지도 않아요. 아주 순수하게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 길’만 제대로 열어줘도 이 시기에 꼭 필요한, 하나님이 선택한 대통령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습니다.”

- ‘그 길’이 무엇입니까?

“최근 수년 동안 종북(從北) 세력이 어둡게 해놓은 것을 걷어내고 바로세우는 일이지요. 대한민국 건국부터 역사와 역사관을 똑바로 해야지요. 종북 세력이 뒤집어 씌우는 게 많으니까 옆에서 보면 불안할 때가 한 둘이 아닙니다. 종북 세력에 맞서 제대로 확실히 정리하기만 해도 ‘큰 일’을 하는 거라고 봐요.”

영화 '기생충' 포스터.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만든 7번째 장편 영화이다. 2019년 5월 30일 개봉된 블랙코미디 가족 영화로 지금까지 10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조선일보DB

-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으로 한국 영화가 잘 나가는데 무슨 비결이 있는가요?

“저희 또래만 해도 문학을 통해 영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은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에 친숙해지고 공부를 한 영화(映畫) 세대입니다. 과거 B급 영화로 간주되던 판타지와 폭력 영화가 스피드를 접목해 지금은 A급이 됐는데, 봉준호 감독 등이 이를 잘 활용해 세계적 감독이 된 거죠.”

그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좀 만들 수 있게 된 게 유년 시절 아버지가 미 군정청(軍政廳) 공보부 소속 영화 검열관(檢閱官)이셔서 아버지와 같이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이예요. 제목, 배우, 스토리도 모르는 채 많은 영화 화면들이 머릿속에 입력된 거죠. 어렸을 때 경험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 영화인 '별들의 고향' 포스터. 소설가 최인호가 1972년 9월 5일자부터 조선일보 지면(紙面)에 연재한 소설 '별들의 고향'을 원작으로 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관객 46만명을 돌파해 한국 영화 신기록을 세웠다. 이장호 감독은 최인호 작가의 서울 덕수초·서울중·서울고 동기동창생이다./조선일보DB
‘청년문화의 우상’으로 주목받은 젊은 작가 최인호의 소설‘별들의 고향’의 연재를 예고한 1972년 8월 26일 조선일보 사고(社告). 최인호는 당시 27세였다./조선일보DB

◇“한글 조형미 바탕...한국 문화 더 滿開할 것”

- 앞으로도 한국 영화가 계속 잘 될까요?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인 최인호가 1974년 4월 24일자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청년문화 선언’을 했어요. 우리는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로서 한글 전용과 미국식(式) 민주주의 교육을 처음 받아 일본적 잔재(殘滓)와 단절한 세대예요. 이장희, 송창식 등의 청바지·통기타·생맥주가 상징하죠. 그런데 이런 ‘청년문화’가 점점 이어져 발전하다가 BTS까지 왔어요. 저는 여기에 한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 무슨 말씀인가요?

“한글을 보면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고 아래위[上下] 옆으로 다 조합이 돼 있어요. 이게 하나의 조형(造形)입니다. 한글 조형을 어렸을 때부터 다루면서 예술에서 가장 기초인 조형 감각이 발달하게 돼요. 저는 이 한글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화가, 지금 꽃 피기 시작하는데 반드시 만개(滿開)할 거라고 생각해요. 조형 감각이 기초가 돼 그게 움직이면 댄싱(dancing·춤)이 되고, 멋진 동영상으로 이어지니까요.”

2002년1월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출범한‘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30인 위원회’기자회견에서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스크린쿼터 축소 음모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조선일보DB

- 예전 ‘스크린 쿼터 폐지 반대 시위’에 참여했습니다만, 2008년 광우병 시위와 2016년 촛불 시위때는 여러 배우와 가수·코메디언 등이 나왔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한일(韓日) 회담 반대 시위 등에 참여 않고 남의 일처럼 여겼어요. 문화예술인들이 군중(群衆) 앞에 나오는 것은 일종의 스타의식과 처세술 때문인 것 같아요. ‘머리가 텅 빈 사람 아니다’는 걸 보이려는 의도도 있구요. 하지만 스타의 참여는 파장이 매우 커요. 사회주의 체제는 그래선지 문화연예인들을 대중선동의 도구(道具)로 사용하죠. 문화예술인들이 자기 확신이 없다면 경거망동(輕擧妄動)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이슈에서는 예술인들이 조용한 것 같습니다.

“원전 오염 처리수가 인체에 문제없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이 증명했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요. 문화예술인들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한 쪽 주장을 잘못 편들었다가는 망신당하기 딱 좋아요.”

라파엘 그로시(왼쪽)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2023년 7월 4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처리수의 해양 방류 계획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4년 2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 나오는 북한 지하 교회 교인들이 촛불을 들고 서 있는 모습. 당시 전국 221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한 ‘신이 보낸 사람’은 그해 2월 14~16일 좌석 점유율 49%를 기록하며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조선일보DB

◇“북한 인권의 ‘인’조차 관심없는 한국 야당”

- 북한인권 국제영화제나 락스퍼 국제영화제 등에 적극 참여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돈이나 대중적 인기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북한 인권은 정부, 기업인, 국민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신경 안 쓰는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 햇볕정책을 폈지만 실수요자인 북한 주민들에겐 연결되지 못했어요. 동포(同胞)인 한국 국민들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생각으로 매달리고 있어요.”

이 감독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좌파 정권 때는 북한 인권 영화제를 정부가 나서서 막았어요. 김대중 정권 시절 그의 추종자들은 북한과의 교류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겼어요. 지금 야당인 민주당은 북한 인권의 인(人)자 조차 관심 없어요. 그들은 권력 획득이나 영달(榮達)에 도움될 때만 북한을 잠깐 활용하려 할 뿐입니다. 참 안타까워요.”

<독립정신>은 이승만이 1904년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쓴 책이다. 당시 29세의 이승만은 고종황제 폐위 음모 가담 혐의로 1904년 8월 7일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된 상태였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국가의 흥망 원리, 개인의 자유·자주·자율·인권, 비굴하고 피동적인 조선 민중의 노예적 습성 등을 지적했다./비봉출판사 제공

-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 각별하게 생각하는 게 있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그 분이 한성(漢城)감옥에 옥살이하던 1904년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만에 쓴 <독립정신>이란 책이 있습니다. 29세 청년이 쓴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리 민족과 국제정세를 명쾌하게 분석한 책입니다. 저는 <독립정신>을 읽고 이승만 대통령을 새롭게 봤어요. 벅차고 감동되는 부분이 많아요.”

이 감독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국민교육헌장’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헌장을 몇 번 읽었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라는 구절구절마다 박 대통령의 얼과 성격이 배여 있고 하나하나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명문(名文)이예요. 사무실에서 국민교육헌장 전문(全文)을 펴 놓고 가끔 읽곤 합니다.”

국민교육헌장 전문

◇“6.25때 일본행 거부한 이승만...中으로 도망간 김일성”

- 이번달 15일이면 대한민국 정부 출범 75주년을 맞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나라 제헌(制憲)국회 첫 회의는 목사(牧師)인 이윤영 의원의 감사 기도(祈禱)로 시작했어요. 기독교를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때 먼저 도망갔느니 수도를 버렸다고 얘기하는데 진실이 아니예요. 6.25 전쟁 초기에 한국 군이 밀려 이승만 대통령이 경남 진해(鎭海)에 도착하자, 미국은 이 대통령에게 일본으로 임시수도를 옮기라고 권했어요.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진해에서 죽겠다’며 이를 거부했어요. 반대로 인천 상륙작전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北進)하자, 김일성은 중국으로 도망갔어요. 그런 걸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참 대단한 애국자예요.”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 기념 연설에 앞서 제헌국회 의장 자격으로 한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공화정 이념을 기초로 한 제헌 헌법에 서명하고 있다./조선일보DB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첫 회의에서 이승만 임시의장의 요청으로 국회 개원 감사 기도(祈禱)를 주도한 이윤영(李允榮·1890~1975년) 의원. 평북 영변군에서 태어난 그는 숭실학교 사범과와 감리교협성신학교 졸업후 교육자, 목사로 활동하다가 평양형무소에서 약 1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46년 2월 월남해 제헌의원 선거에서 서울시 종로 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Wikipedia

- 이번 다큐영화 제작에 대한 영화계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얘기하는지 잘 몰라요. 영화계에서 신경 써서 나를 도와줄 수도, 반대로 해코지 할 수도 없어요. 사무실에 자료들이 많은데 전부 밖에서 보내준 것들입니다. 자발적으로 자료를 만들어 보내주는 게 다 응원입니다. 영화를 기대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 그만큼 많아요.”

-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대중 흥행 영화가 아니라 기독교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하보우만의 약속’과는 별개로 하고 싶어요. 신의 포엠(poem·詩)이랄까, 에세이(essay)랄까. 다큐멘터리에 배우를 써서 새로운 형태로 극장용 영화를 제가 할 수 있는데까지 만들어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작정입니다.”

이 감독은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딱 20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스무번째 작품이 ‘시선’이라는 기독교 영화였어요. 그런데 개봉일인 2014년 4월 17일에 세월호 참사가 터져 제 영화도 희생됐어요. 하느님은 관객들 많이 들어와서 돈 버는데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더 큰 뜻을 갖고 계신다는 걸 그 뒤 깨달았어요. 제가 살면서 겪은 우여곡절은 항상 성장을 위한 고난과 시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모이고 힘이 돼서 ‘하보우만의 약속’이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살 생각입니다.”

이장호 감독이 자신의 통산 20번째 작품으로 제작한 영화 '시선'의 포스터. 2014년 4월 개봉됐다.
이장호 감독이 서울 북아현동 사무실에서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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