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나의 새해는 복수로 시작했다. 새해 첫 칼럼이라는 건 좋은 생각으로 시작해야 한다. 지난해의 나쁜 일은 모두 잊읍시다. 나쁜 사람은 모두 용서합시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합시다. 이런 글을 써야 한다. 아마도 많은 일간지의 많은 칼럼이 평소와는 다르게 뾰족한 마음과 날카로운 풍자를 다소 줄인 덕담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이 어디 그런가? 2023년은 계묘년이다. 검은 토끼의 해다. 검은 토끼는 장생과 지혜를 의미한다지만 내가 떠올린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칼럼의 출발을 알린 걸그룹 뉴진스다. 그들의 신년 새 앨범 커버는 검은 토끼다. 뉴진스에 대해서는 또 칼럼을 쓰게 될 테니 여기서는 깡충깡충 건너뛰기로 하자. 다른 하나는 ‘흑화된’ 토끼다. 검은색은 세련된 색이기도 하지만 음험한 색이기도 하다. 나는 토끼띠다. 토끼는 약한 동물이다. 약한 동물도 밟으면 반격한다. 흑화한다.

나의 신년 첫 키워드가 복수가 된 건 넷플릭스 새 드라마 ‘더 글로리’ 탓이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로 유명한 작가 김은숙의 신작이다. 나는 별 기대가 없었다. 이미 김은숙의 패턴은 잘 안다고 생각했다. 기대는 어긋났다. 1화를 보는 순간 침도 삼키지 못하고 8화까지 봤다. 학교 폭력 희생자(송혜교)가 성인이 되어 가해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 복수를 꿈꾼다. 독자들도 마음속으로 복수를 꿈꾸는 대상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거창한 복수는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될 수는 없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 가방 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었던 놈에 대한 복수를 아직도 꿈꾼다. 누군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걸 극화한다면 ‘올드보이’식 복수가 될 것이다. 가해자는 너무 소소해서 잊어버렸지만 피해자는 절대 잊지 않는 복수 말이다.

그래도 신년이니 ‘복수를 합시다’라고 이 글을 끝낼 수는 없다. ‘더 글로리’에는 주인공의 조력자가 있다. 염혜란이 연기하는 강현남이다. 그는 폭력적인 남편을 죽이기 위해 주인공과 손을 잡는다.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희생자의 연대다. 그는 매사 심각한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매 맞고 살지만 저는 명랑한 년이에요”. 나는 감탄했다. 캐릭터를 단순한 피해자로 캐리커처화하는 대신 다층적인 인간으로 빚어내는 김은숙의 솜씨는 ‘더 글로리’를 막장 드라마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었다.

따져보면 우리 인생은 웰메이드 드라마가 아니다.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삶의 매 순간이 막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사는 건 지나치게 힘이 든다. 대신 우리는 막장 드라마 속의 웰메이드 캐릭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새해가 왔다고 꼭 모든 걸 용서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의 분노는 올해 계속 이어가도 괜찮다. 대신 명랑한 사람이 됩시다. 이것이 올해 나의 첫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