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최근 가요계에선 이 숫자가 중요한 흥행 공식이다. 15초 내외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쇼트폼 플랫폼 ‘틱톡’이 음원 소비 주요 통로로 떠오르면서 이에 최적화된 형태로 국내 가요의 길이, 안무, 발매 방식까지 변하고 있다.
지난 3일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는 자사 대표 걸그룹 르세라핌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 수록곡 전곡의 샘플 영상을 틱톡에 최적화된 15초 길이로 제작해 선보였다. 르세라핌은 지난 10일에는 아예 틱톡에서 새 앨범 전곡의 선공개 음원과 포인트 안무 영상을 일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보다 먼저 올렸다.
이 같은 르세라핌의 행보는 요즘 가요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K팝 그룹들은 신곡을 발매할 때 TV 음악 방송이나 뮤직비디오보다 ‘틱톡 안무 챌린지 이벤트’를 먼저 선보인다. 그룹명을 담은 해시태그와 함께 신곡의 안무를 따라 추는 쇼트폼 영상을 팬들이 릴레이 도전처럼 틱톡에 올릴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틱톡’이 음원 유통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틱톡은 지난 6월 기준 세계 이용자 수 17억1900만명을 넘어섰고, 사용자 중 63%가 10~20대로 추정된다. 지난해 틱톡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틱톡에서 유행한 175곡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KBS·SBS 등 틱톡에서 얻은 영상 조회 수를 ‘소셜미디어 점수’로 음악 방송 차트 집계에 반영하는 방송국들도 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차트 성적에 민감한 아이돌 그룹들의 곡 길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5초 안에 곡의 주요 부분이 귀에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전주, 후렴구 등을 짧게 배치하면서 곡 전체 길이도 과거 3~4분대에서 2분대로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 음반 유통사 관계자는 “통상 8~10곡이 담기는 정규 앨범은 과거 전곡 재생 시간이 40분 이상인 경우가 보통이었지만, 최근 아이돌 앨범은 전곡 재생에 30분도 안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안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BTS처럼 멤버 전원이 동작을 칼같이 맞춰 추는 ‘칼군무’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 2~3년간 아이돌 무대는 따라 추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한 군무가 늘고 있다. 하지만 유독 포인트 안무는 따라 추기 쉽거나, ‘사랑(LOVE)’ 등 가사를 손으로 형상화한 귀여운 춤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틱톡에서 아이돌 곡을 따라 추는 영상이 늘수록 곡의 흥행이 좋아진다”며 “기획사별로 격렬하지 않고 따라 추기 쉬운 틱톡용 안무를 만드는 전담 부서까지 따로 두고 있다”고 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최근 아이돌 앨범에서 ‘타이틀곡’의 의미가 무색해진 것도 틱톡 음원 인기와 무관치 않다”며 “자신의 일상 공유 배경음악(BGM)으로 음악을 소비하다 보니 소속사가 안 미는 곡이 갑자기 뜨기도 한다. 과거 타이틀곡에만 붙이던 안무를 요즘은 곡마다 다 붙이는 이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