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나 소극장, 백화점 매장 같은 느낌의 도서관이 있다면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까. 적어도 발걸음을 끄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얼마나 더 읽느냐는 그다음 문제. 최근 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간 혁신이 많아졌다. 스마트폰과 게임 등 우리의 주의력을 빼앗는 첨단 기기들과의 분투가 도서관에서 시작되고 있다.
서울 중랑구 송곡여고 도서관은 명품 숍으로 통한다. 도서관 입구는 작은 구멍이 송송 뚫린 타공판 벽면을 설치해 간접 조명이 새나오게 했고, 윤기 나는 에폭시 소재 바닥은 실제 백화점 명품 매장처럼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학교 이덕주 사서선생님은 “도서관을 단순히 책 읽는 곳이 아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학생들 의견을 토대로 설계했다”며 “도서관에서 하는 수업까지 포함하면 전교생 660명 중 약 200~300명이 매일 도서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교실 5개 크기인 도서관 한 중앙엔 진짜 명품 매장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프랑스 패션 기업 ‘크리스챤 디올’의 청담동 매장에 쓰인 특수 콘크리트(FRC) 소재를 활용해 학생들이 기댈 수 있는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었다. 도서관 곳곳에 등을 기댈 수 있는 푹신한 소재의 빈백 소파를 두어 ‘스터디카페’처럼 꾸민 것도 여학생들 발걸음을 모으는 요소. 점심시간엔 쉬러 오는 학생들, 방과 후엔 교과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별도 예산 책정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공간을 바꿨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 ‘공간혁신사업’ 공모에 선정돼 예산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10대 학생들의 연평균 독서량은 13.1권(통계청 사회조사). 스마트폰 사용량이 늘면서 2011년 22.2권이었던 독서량은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책과 멀어진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공간의 힘’을 활용하는 학교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거의 모든 전국의 광역지자체 교육청에선 매년 학교를 선정해 도서관 업그레이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삼정중학교 도서관은 ‘소극장’으로 통한다. 3개 층 높이 교실 5.5개 크기인 이곳은 2020년 교내 체육관을 통째로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경우다. 높은 층고를 활용해 공간 중앙엔 우뚝 솟은 계단식 무대 공간을 설치했고, 그 주변으로 책장을 펜스처럼 둘렀다. 마치 작은 소극장에 온 것 같다. 실제로 이 무대에 작품이 올라오기도 한다. 한 해에 두 번, 학교 이름을 딴 ‘삼정문학상’ 행사가 열리는 것. 전교생 300여 명을 대상으로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선정, 저자를 직접 도서관으로 초대해 북 토크를 나눈다. 올해엔 소설 ‘1분’을 쓴 최은영 작가의 작품 중 하나를 선정해 짧은 연극으로 올렸다. 이 학교 이은정 사서는 “도서관이 넓고 쾌적하다 보니 쉬는 시간마다 놀러 오는 학생들만 하루에 50~60명”이라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고 한두 권씩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설문조사와 간담회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도서관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머리를 맞댄 결과 현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3~12세 어린 학생들이 이용하는 서울 서초구 덜위치국제학교 도서관은 교실 3개 규모 크기에 복층으로 구성됐다. 마치 놀이터처럼 해먹으로 만든 대형 그물망을 서가 한쪽 벽면을 따라 배치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술래잡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이 아니다. 원래는 책상과 책장으로만 이뤄진 공간이었지만, 작년 리모델링을 통해 도서관 곳곳에 토끼굴처럼 숨을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아이들이 놀 수 있게 했다. 이 학교의 제인 스미스 유·초등부 교장은 리모델링 이후 ‘재미’를 느낀 지원자들이 급증해, 원래 3명밖에 없던 학생 사서 숫자가 대기자를 포함해 45명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도서관을 설계한 존홍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간의 다양성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탐험’을 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창의성을 길러준다”며 “도서관이 독특하면서도 편한 공간이 되어야 학생들의 독서량과 독서 효율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