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박진영의 추석 연휴 반납’.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달 9일, 대중음악계에선 미국으로 출국한 가수 박진영에게 이목이 쏠렸다. JYP엔터테인먼트 수장인 그가 미국으로 향한 건 애틀랜타를 비롯, 시카고, 뉴욕, 댈러스, LA 등 미국 주요 5개 도시에서 지난달 25일까지 개최된 글로벌 오디션 ‘A2K(아메리카 투 코리아)’ 참석을 위한 것. 이 오디션은 올해 7월부터 JYP가 미국 내 가장 큰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와 손잡고 진행했다.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현지 멤버들로 채워진 K팝 걸그룹을 함께 만드는 게 목표. 두 회사가 함께 뽑은 멤버들은 먼저 JYP가 축적한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치고, 이후 이들의 북미 현지 활동은 리퍼블릭 레코드가 주도한다. JYP는 이를 위해 2013년 북미 시장에서 철수했던 현지 법인(JYP USA)도 올해 3월 다시 세웠다.
◇K팝 3.0… 현지인 그룹 만드는 기획사들
K팝 한류가 진화하고 있다. 최근 가요계에서는 특히 ‘K팝 3.0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과거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국내 제작 K팝 그룹의 해외 진출이 1.0 시대였고, 2.0 시대는 한일 다국적 그룹 트와이스, 태국인이 포함된 블랙핑크 등 다양한 국적의 해외 멤버 영입이 늘었지만 여전히 현지 회사와는 해외 음반 유통만 협업하는 그룹이 많았다.
반면 최근 3.0 시대에는 국내 기획사들이 멤버 전원을 해외 현지 출신으로 채우거나, 아예 멤버 선정과 그룹 기획 단계부터 현지 회사를 참여시킨다. 칼군무, 음악 등은 K팝 스타일을 따르지만 가사는 주로 현지 언어나 영어로 노래하는 그룹을 기획한다. JYP는 2020년에도 멤버 전원이 일본인인 걸그룹 ‘니쥬’를 선보였고, SM은 현재 미국 대형 제작사 MGM과 함께 미국 현지 보이그룹 ‘NCT할리우드’를 준비 중이다.
BTS 소속사 하이브는 지난달 일본 현지 합작 법인 하이브 재팬을 통해 니혼TV·훌루 인 재팬 등과 손잡고 일본 9인조 현지 그룹을 뽑는 방송 ‘앤 오디션’을 일본에서 방영했다. 최종 선발 멤버 중 한국인과 대만인 각 1명을 제외한 7명이 전원 일본인. 과거에는 한국 활동에 주력하는 K팝 그룹 데뷔를 위해 해외 멤버가 한국 오디션을 봤다면, 이제는 한국인이 일본 현지 활동에 주력하는 K팝 그룹 데뷔를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다.
대형 기획사만의 행보가 아니다. 중소기획사 쇼비티가 2018년 한국식 아이돌 교육을 거쳐 데뷔시킨 필리핀 국적 5인조 보이밴드 SB19는 지난해 4월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올라 화제가 됐다. 동남아 그룹의 후보 선정은 처음이었고,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옷차림 등이 영락없는 K팝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K팝 시스템 유출? 시장 확대로 윈-윈
일각에선 이 같은 현지 합작 그룹의 등장을 두고 ‘K팝 시스템의 유출’이란 우려도 제기한다. K팝 패션과 노래를 장착했지만 멤버 중 한국인이 없는 그룹들을 K팝 그룹으로 부를 수 있냐는 반박도 나온다.
하지만 가요계 전문가들은 K팝 시스템의 수출이 오히려 국내 기획사와 현지 회사 양쪽 모두에 윈윈이라고 말한다. 김영대 평론가는 “세계 음악 시장 규모에서 북미, 일본 등이 여전히 우리보다 배는 더 크다. 합작 과정에서 해외 기획사는 K팝 작업 노하우를 얻고, 그들과의 연결고리가 결국 국내 그룹에는 또 다른 진출 경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특히 “과거 태권도가 해외로 진출하며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던 사례를 생각해보라”고 덧붙였다. K팝 시스템이 현지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자연히 K팝과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