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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삶은 치열하면서도 역설적입니다. 계곡과 강, 폭포와 대양을 오가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목적이 바로 죽기 위해서거든요. 마법과 같은 지각능력으로 자신들이 손톱만한 치어로 태어났던 계곡줄기에 돌아와 온힘을 쏟으며 짝을 짓고 알을 낳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핏빛 혼인색으로 물들었던 몸뚱아리, 날카롭게 휘어졌던 턱, 부리부리한 눈알이 빠지고, 힘차게 작동하던 내장이 뜯겨나가고 뼈대만 남은채 힘겹게 버둥거리며 죽어가는 연어의 최후의 모습은 그래서 징그럽다기보다는 숙연하고 장엄합니다. 이 젊은 연어도 훌륭한 혼인색을 띈 어른이 돼서 자신의 유전자를 만방에 퍼뜨리고 기력이 쇠한 상황에서 장엄한 죽음을 맞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사조차 뜻대로 될리 없는데 연어의 일상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폭포를 뛰어오르던 연어가 곰과 딱 마주친 사진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National Parks Service instagram

거친 계곡 물살을 힘차게 뛰어오르던 연어가 급류를 이겨내고 점프하는 순간 맞닥뜨린 것은 그만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있는 곰의 아가리였습니다. 그 순간이 카메라 렌즈에 그대로 포착돼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인스타그램에 소개됐어요. 찰나의 순간에 의해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운명이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온몸을 다해 점프했을 때 부라리던 곰의 눈과 마주친 이 연어의 눈빛에 수많은 말풍선이 함축돼있습니다. 생사 여부를 초지일관한 낙관주의자 연어라면 ‘헐’했겠죠. 좀 더 적극적 삶의 태도를 가진 연어였으면 이랬을 겁니다. “빌어먹을~” “제기랄”. 입담이 거친 연어였다면 아마 특정 신체부위를 동원한 쌍욕을 동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진을 게시한 NPS는 한류드라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마무리를 보는 이의 상상에 맡겨둔 ‘열린 결말’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Katmai National Park instagram 알래스카 카트마이 국립공원에서 곰이 사냥한 연어를 먹어치우고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촬영된 알래스카주 카트마이 국립공원 연동 계정으로 가면 대충 연어가 어떤 결말을 맞았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곧 시작될 겨울잠을 앞두고 곰들은 최대한 많이 먹어서 몸을 불려야 합니다. 영양분 비축시기와 연어의 귀향시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립니다. 신의 섭리이면서 위대한 대자연의 시계이죠. 눈빛으로 “이런 제기랄”을 외쳤을 연어는 날카롭게 벼린 듯한 송곳니가 달린 곰의 입으로 직행했을 공산이 큽니다. 만회할 수 없는 자책골이죠. 횡재한 곰은 연어의 몸뚱이를 물고 동족들이 달려들지 못할만큼의 거리를 확보한 뒤 우선 버둥거리는 연어의 비늘부터 벗겨내서 허겁지겁 먹었을 것입니다.

/Katmai National Parks 알래스카에서 회색곰이 귀향중인 연어를 잡아 포식하고 있다.

기름기가 끈적하게 넘치는 비늘은 지방질 보충이 급한 곰의 최애부위입니다.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육질보다도 더 말이죠. 이 연어가 암컷이라면 몸속 가득 품고 있던 수만개의 알이 앵두처럼 후두두둑 털어질겁니다. 수컷이라면 헤아릴수 없이 많은 정자를 품고 있던 정소가 산산이 조각나서 눈송이처럼 흩어졌겠죠. 곰이 필요한 부분만 섭취한뒤 내던진 연어가 여전히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모습은 잔인하지만,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생태계의 단면입니다. 알래스카주 브룩스 폴스에서 곰이 연어를 먹어치우는 장면을 생생하게 포착한 동영상(RJSVids 유튜브 계정)입니다.

버둥거리는 연어의 대가리를 앞발로 고정한 뒤 비늘부터 벗겨먹더니 급기야 새빨간 살덩이와 뼈까지 먹어치웁니다. 멀쩡한 물고기 한마리가 채 1분도 안되는 시간에 감쪽같이 곰의 뱃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대가리도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놈의 몫이 됩니다. 버리는 것 없이 100% 활용된 셈이네요. 오늘 사진 속 주인공인 다만 이 운없는 연어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채 곰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2차 성징에 해당하는 몸의 변화가 보이지 않거든요. 북미 지역에만 일곱종의 연어가 서식하는데 이 연어는 그 중 하나인 붉은연어(Sockeye Salmon)입니다. 연어는 총 여덟 종이 있는데 이 놈은 그중에서도 맛이 좋아서 사람과 곰에게 모두 인기 만점인 연어입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소크아이를 비롯해 다수의 연어들은 평생 한번인 짝짓기철을 맞아 붉은 혼인색을 띄게 된다.

이 종의 특징은 다른 연어들처럼 계곡물에서 부화해 강을 통해 먼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평생 호수나 강에서 사는 부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같은 종인데도 민물에서만 살수 있게 특화된 부류를 ‘육봉형’이라고 하는데요. 곰에게 잡힌 연어는 아마도 어른이 되지 않은 육봉형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토종 물고기 산천어도 사실은 송어의 육봉형입니다. 연어와는 한집안이죠.

/John R. McMillan. NOAA/NWSFC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질병에 걸리지 않고 오롯하게 한살이를 마친 연어가 2세 번식을 한 뒤 숨을 거둔 직후의 모습.

대다수의 연어들처럼 붉은연어 역시 번식철이 되면 몸에 핏빛 혼인색이 돌고 입은 갈고리처럼 구부러지면, 특히 수컷은 등에 낙타를 연상시키는 혹이 나거든요. 아마도 이 연어 역시 비늘과 눈알 등 지방질이 차 있는 부분만 뜯겨먹은 채 아가미를 펄럭이는 체로 길바닥에 내팽겨졌을 공산이 큽니다. 그렇다고 이 죽음을 헛되다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남은 신체부윈은 새와 벌레들이 성찬을 즐기고 겨우내 살아갈 에너지를 비축했을테니까요. 허술하고 제멋대로인듯해도 알고보면 대자연만큼 촘촘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없습니다. 흙바닥에 내던져진 연어의 뼈와 살은 그 자체가 토지를 비옥한 천연비료이고, 새와 벌레들의 소중한 양식이 됩니다. 태곳적 건강함을 유지해주는 숲을 흐르는 계곡물에서 연어의 한살이는 생명의 바퀴를 묵직하게 움직여주는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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