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신곡 ‘Pink Venom’ 뮤직비디오 속 지수의 네일(왼쪽), 신곡 ‘열이 올라요’ 활동을 위해 발목까지 오렌지색 인조 머리를 길게 이어 붙인 ‘라푼젤 헤어’ 스타일의 선미/유튜브 캡쳐, 선미 인스타그램

‘길수록 핫(hot)하다.’

최근 국내외 여(女)가수 사이에선 이 유행 공식이 화제다. 허리 밑까지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 손가락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긴 손톱’을 선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이런 요소들을 자신들의 음악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 인기의 걸 그룹 블랙핑크도 신곡 ‘핑크 베놈(Pink Venom)’ 뮤직비디오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멤버 지수의 긴 손톱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손가락 한 마디 이상 길이의 인조 손톱에 한국식 자개 무늬를 장식했다. 이번 신곡은 이들의 발매곡 중 처음으로 국악기 연주를 더한 것.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멤버 제니는 허리 밑까지 오는 치렁치렁한 인조 머리카락을 이어붙인 뒤 양갈래로 묶은 머리 스타일로 이목을 끌었다. 신곡 안무를 출 때마다 머리카락이 덩어리째로 출렁여 “마치 머리카락과 함께 춤추는 듯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 6월 가수 선미는 신곡 ‘열이 올라요’ 활동 때 발목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 장발을 선보여 ‘라푼젤 헤어’란 별칭을 얻었다. 이 밖에도 트와이스, 에스파, 있지(ITZY), 소녀시대 태연 등 수많은 여자 아이돌 사이에선 ‘긴 손톱’을 강조한 신곡 홍보 사진이 유행이다. 주로 얼굴 부근에 양 손가락을 쫙 펼쳐서 갖다대고, 개성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긴 손톱을 돋보이게 하는 사진들이다.

긴 인조손톱에 몽환적인 그림을 그려 넣은 소녀시대 태연의 손톱. /태연 인스타그램

해외에선 더 앞서 코로나 팬데믹 시기 직후부터 도자캣, 리조, 니키 미나즈 등 여가수들이 아찔할 만큼 긴 머리와 손톱을 선보여 인기를 끌어 왔다. 공통점이 있다면 주로 ‘세고 개성 넘치는 언니’ 이미지를 강조한 강렬한 힙합 음악을 선보여 왔고, 10대 이용자가 많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끈 가수들이란 것.

평론가들은 특히 ‘지나치게 긴 손톱·머리카락’이 과거 남성들이 싫어하는 패션의 대명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주로 ‘마녀’ 역할을 연출할 때 가장 먼저 쓰이던 것도 긴 손톱과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 여가수에 대한 기대가 ‘섹시함’과 ‘청순함’이었다면, 최근에는 ‘당당함’과 ‘개성’이 추가됐다”며 “젊은 음악 팬들을 중심으로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며 개성을 강조한 세기말(Y2K) 패션 등 ‘나다움’이 화두로 떠오르며 이어진 결과”라고 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본디 적당한 길이의 손톱과 머리카락은 여성성의 상징이었고, 한 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여기에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한 길이를 더해 ‘개성’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변모 시킨 것”이라며 “튈 수록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연예계 특성에도 잘 맞아떨어지는 홍보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