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범 내려온다’ 영상으로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국악 퓨전 밴드 ‘이날치’. 당시 이 성공에는 “생소한 이름”이란 반응도 많았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수궁가’가 그 해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그전까지 이날치가 선 공연 무대도 많지 않았기 때문. 밴드 주축인 장영규 영화음악감독도 당시까지 ‘이날치’ 이름보단 영화 ‘전우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등 OST 작업으로 더 유명했었다.
그런데 ‘범 내려온다’의 정식 발매도 전인 2019년, 국내 음악 축제 최초로 이날치를 주목해 무대에 세운 곳이 있었다. 바로 홍대 앞 터줏대감 음악 축제로 불려온 ‘잔다리 페스타’. 이날치 뿐만이 아니다. ‘잠비나이, 세이수미, 이디오테잎, 갤럭시익스프레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모두 이 축제에 처음 설 땐 묻혀 있던 원석이었지만, 현재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보석들이자 해외에서 호평받는 실력파 밴드들의 이름들이다.
국내 원석만이 거쳐간 것이 아니다. 2012년부터 영국, 프랑스, 헝가리, 대만, 캐나다 등 전 세계 1600여 팀이 이 축제를 거쳐갔다. ‘잔다리’는 ‘홍대’란 이름으로 통칭해 자주 불리는 현재의 마포구 서교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 이 지역에서 한강을 가려면 작은 다리, 즉 ‘잔다리’를 건너야 해서 유래된 이름이었다. 이 축제 개최 의도도 실력은 있지만 해외 진출이 쉽지 않던 신인 밴드들을 해외 유명 공연 관계자들과 연결시켜주기 위한 ‘작은 다리’ 역할이었다. 2018년에는 영국 유명 음악축제 ‘글래스톤베리’ 기획자 ‘마틴 엘본’이 이 축제를 찾아 “아시아 유일무이의 끝내주는 라이브 축제”라며 대 호평했고, 이후 잔다리 페스타 측과 ‘DMZ피스트레인’이란 또 다른 국내 음악축제를 함께 기획했다.
올해로 11주년을 맞은 이 ‘원석 발굴의 축제’가 올 가을 3년 만의 대면 행사를 재개한다. 지난 2020년, 2021년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온라인 공연만 개최했었다. 하지만 오는 9월 2일~4일에는 홍대 곳곳 음악 클럽에서 이 축제의 생생한 라이브 대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공윤영 잔다리 페스타 감독은 특히 “해외 공연기획자들을 사로잡은 우리 축제의 비결은 ‘맥주’에도 있다”며 웃었다. 잔다리 페스타에선 공연 출연자와 초청된 공연기획자들에겐 맥주가 무제한 무료 제공된다. “축제 초창기부터 공연 출연자 중 인지도가 낮아 활동 자금이 넉넉지 않은 신인 밴드가 많았다. 우리 축제에서 맥주 만큼은 공짜로 먹게 해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해외 기획자들 사이 이런 잔다리 페스타의 특성이 “들었어? 한국에 끝내주는 음악과 맥주를 무제한으로 주는 축제가 있대”란 입소문으로 퍼졌다. 매년 맥주 회사 중 음악에 관심이 많은 곳들이 돌아가면서 잔다리 축제의 이 관례를 후원해 왔는데, “올해는 독일 맥주회사인 에딩거 측에서 맥주 4000캔을 무료로 제공해줬다”고 했다.
이 축제의 또 다른 별미는 극히 짧은 객석과 공연 무대 간 거리감. 홍대 곳곳 포진한 음악클럽들이 함께 모여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을 여는데, 단일무대로는 객석 수가 적은 편이라 공연팀의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밀착 라이브 연주를 맛볼 수 있다. 객석에 가만히 착석해 박수만 치는 공연에 질렸다면 이 축제가 더욱 제격일 것. 귀로만 듣는 게 아닌 몸으로 체감하는 ‘진짜 홍대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이 축제를 잘 즐기려면 각 공연이 열리는 클럽별 무대 시간과 동선을 미리 잘 짜는게 중요하다. 우선 올해 축제의 가장 첫날에는 OVDS·noovy·KST 등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대만 밴드들이 홍대 클럽 ‘컨벤트’에서 오후 6시부터 ‘타이완 비츠(Taiwan Beats)’ 공연을 연다. 오후 8시부턴 같은 곳에서 밴드 ‘실리카겔’, 재즈 뮤지션 ‘대런 에덴스(Darren Eedens)’ 등이 ‘웰컴 파티’ 공연을 이어간다.
둘째날에는 왓챠 홀, 클럽FF, 벨로주 홍대에서 첫날 공연팀과 더불어 키라라, 까데호, 효도앤베이스, 무토, 해파 등 홍대에서 떠오르는 신예 밴드들이 대출격한다. 오후 10시 반부턴 GRANDE, The Rodeo, YellosStraps 등 프랑스 출신 밴드들이 ‘프렌치 나이트’ 공연을 이어간다. 축제 마지막날에는 같은 공간들에서 이날치, 갤럭시익스프레스, 세이수미, 봉제인간, 해파리, 글렌체크, 불고기 디스코 등 굵직한 홍대 인디씬 주역들이 공연을 펼친다. (공연 예매 링크: http://bit.ly/3JVnAJQ , 또는 https://m.ticketlink.co.kr/product/39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