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공부의 나라, 학습의 나라’라는 생각을 저는 종종 합니다. 유치원생부터 80~90대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이 동년배 대비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라고 말이죠.
◇10대부터 90대까지...‘공부하는 대한민국’
한국에서 공부는 일시적인 열풍이 아니라 강력한 ‘문화’로 자리잡는 양상이예요. 10~20대는 물론이고 직장인과 공무원, 대·중소기업 오너, 임원, CEO, 군대의 장교와 병사, 그리고 60~80대 은퇴자들까지도 ‘공부’ 물결에 점점 많이 합류하고 있지요.
‘샐러던트’(saladent·샐러리맨과 스튜던트의 합성어), ‘오피던트’(offident·군대의 장교인 오피서와 스튜던트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이런 분위기를 증명하죠.
독서모임과 공부 커뮤니티도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어요. 2015년 출범해 자리 잡은 독서클럽 ‘트레바리’ 외에 여러 출판사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부하는 독서 클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죠.
그런 온라인 플랫폼만 줄잡아 100개가 넘고, 출판계에서는 ‘공부(법)’를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몰이 중이예요. 예를 들어 한동일 전(前) 로마 바티칸 공소원(로타 로마나)변호사가 쓴 《라틴어 수업》은 30만부 넘게 팔렸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도 5만여부의 판매고를 올렸어요.
국방대학교 총장을 지낸 임관빈 장군이 2010년 낸 《성공하고 싶다면 오피던트가 되라》는 올해 3월 개정판이 나왔고, 이웃 일본에 일본어로 출간됐어요.
◇‘세븐일레븐 공부’의 신(神)...한동일 변호사
‘책 안 읽는 한국인’이라는 얘기가 가끔씩 나오지만, 주위에 진지하게 공부하는 어른들이 늘어난 건 분명해 보여요. 유소년부터 노년까지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앞으로 한국 사회의 지적(知的) 토양이 깊고 풍성해짐을 알리는 ‘청신호’이겠죠.
먼저 주목되는 것은 동양인 최초의 로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52)씨의 공부법이예요. 그는 라틴어로 진행되는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마친 후 합격률 5~6%에 불과한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른바 ‘공부의 신(神)’이예요.
한 변호사는 아침 7시에 책상에 앉아 밤 11시가 되도록 공부하는, ‘세븐일레븐 공부’를 했어요. 그는 30년간 스스로를 가두어 ‘인이 박이게’ 공부하는 삶 속에서 “공부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마음 수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는 2020년에 낸 저서 《한동일의 공부법》과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공부 철학을 밝혔어요. 그의 말입니다.
“공부라는 건 100을 준비해서 20을 발휘하는 것이예요. 봄이면 노란 송홧가루가 많이 날리지요. 저 작은 가루가 어디에 떨어져서 생명의 씨앗을 만들어 낼지 알 수 없지만 그것 하나를 위해 사방을 뒤엎는 거예요. 아스팔트, 돌길 위 할 것 없이...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요? 하나를 해서 하나의 결과를 내려 한다면 도둑놈 심보 아닐까요? 공부란 무작위로 뿌려서 그게 나의 어디에서 포텐(잠재력)이 터질지 알 수 없는 기회를 기다리며 하는 거예요.”
그는 “낮과 밤의 공부법을 달리 한다”고 했어요.
“낮동안에는 ‘나는 천재니까 이 정도는 깜도 아니야’라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업다운’ 방식으로 공부해요. 법학이건 의학이건 시험공부양이 어마어마해 ‘그 많은 걸 언제 다 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위축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밤에는 낮은 자세로 하루를 반성해야 해요.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난 몇 시간 공부했고 무엇이 잘되고 부족했는지를 냉철하게 돌아봅니다.”
◇최재천 교수...“끌리지 말고 끌고 가는 공부를”
지난달 출간된 《최재천의 공부-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에도 흥미롭고 번득이는 내용들이 많아요. 저에게 인상적인 것은 세 부분이었어요. 최재천(68)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책에서 쓴 글을 인용해 봅니다.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빡세게 하는 겁니다.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그늘에 가서 편안하게 보는 건 시간 낭비이고 눈만 나빠집니다. (중략) 우리는 기획서를 작성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 합니다.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나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수월하게 넘나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144~146쪽)
‘취미 독서’ 대신 씨름하는 ‘일’로써의 정면승부형 ‘독서’를 그는 권면하고 있어요.
두번째는 ‘공부에 끌려다니지 않고 공부를 끌고 가기 위해 시간관리’를 해야 한다는 당부예요. 그는 “일에 휘둘리지 않고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리 한다’를 습관화하라”고 강조해요. 하버드대 유학 시절 1주일 전에 리포트를 끝내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도 따라했다고 합니다.
“35여 년 전 하버드대 기숙사 사감 시절 학생과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나는 (각종 글과 논문, 리포트 등을) 1주일 전에 끝내 놓고 1주일 내내 100번쯤 고칩니다.” (103쪽)
마지막은 최 교수가 “공부의 한 축(軸)은 학습량(學習量)”이라며 한 말이예요.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중국은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이웃 나라입니다.삼성이 자랑하는 ‘초격차’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중략) 그렇다면 성실과 지식을 채울 수 있도록 양적으로라도, 공부를 많이 시키는 틀을 갖춰야죠. 적어도 많이 하는 분위기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130쪽)
◇‘어떻게’에서 ‘왜’로...공부의 업그레이드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께서도 최근 ‘공부법’을 소재로 한 칼럼을 쓰셨어요. 올해 6월 4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어떻게’로 성공한 늦깎이 한국, 이제 ‘왜’로 방향 틀 때>라는 제목의 [강천석 칼럼]에서예요. 칼럼의 한 부분입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공부해야 우등생이 된다고 한다. 우등생을 만드는 ‘어떻게’ 공부법의 한계는 원천 기술을 낳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천 기술은 ‘왜’라는 물음에서 탄생한다. ‘어떻게’는 던져진 문제를 푸는 능력을, ‘왜’는 숨겨진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을 키운다. ‘왜’라고 묻는 공부법은 성공률이 낮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법 공장이다. 그렇게 키운 우등생들이 한국을 이만큼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 여기가 한계다.”
한국인들이 ‘왜’라는 원천적인 질문은 제쳐놓고, ‘어떻게’라는 생존 문제에 집중해 선진국 문턱까지 왔다는 진단이예요. 그러면서 강 고문은 한국이 변방(邊方)에서 세계 중심으로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어떻게’에서 ‘왜’로 옮겨가는 공부법의 점프가 절실하다면서 이렇게 칼럼을 맺어요.
“일본은 1990년대부터 ‘어떻게’에서 ‘왜’로 탈바꿈하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주저앉았다. 지금 일본이 부딪힌 절벽 중 하나다. (중략) 상상력도 마찬가지다. 칸(Cannes)에서 한국 영화는 변방에서 오래 키운 나이테의 힘을 보여줬다. 변방의 서러움을 도약(跳躍)의 디딤돌로 바꿔보자.”
이는 창조 자본주의로 한국을 탈바꿈해야 한다는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주장과 일맥상통해요. 김 교수는 “창조적 발상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창조형 인재를 키워 선진국을 뒤쫓아가는(fast-follower) 모방형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앞장서는(first-mover) 창조형 자본주의로 진화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죠.
◇一流 국민의 공부...’고유한 자기자신 찾기’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양적(量的)으로는 충만한 공부 열기가 이제는 질적(質的)으로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좋은 학교, 취업, 승진, 여유시간 보내기 같은 목적성 공부를 졸업하고, ‘진짜 어른의 공부’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얘기이지요.
‘추격의 시대’에는 ‘공부 방법’과 ‘공부 기술’ 같은 담론 중심이었다면, 선진국 시대에선 공부의 ‘가치 추구’와 ‘목표’부터 먼저 탐색하고 집중해야겠지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저자인 최진석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은 이달 초 저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류(一流)국가, 전략(戰略)국가, 선진(先進)국가 국민의 공부는 그 전과 달라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어요.
“중진국까지는 ‘어떻게’에 잘 대답하는 걸로 충분하지만 선진국 단계에선 ‘왜’라고 질문하는 공부가 핵심이다. 그러려면 고유한 자기자신이 돼야 한다. 일류국가, 전략국가의 공부는 더 자유롭고, 더 창의적이며, 더 독립적인 역량 발휘에 초점을 맞춘 공부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려 하는가, 나의 소명(召命)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끊임없이 대답하려 애쓰고 분투하는 공부이다.”
무엇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를 넘어 ‘철학으로서의 공부’로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는 지적이지요.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공부·학습 열기’가, 아직도 일부 이류적(二流的)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시선(視線)과 사고(思考)의 높이’를 끌어올려 선진 대한민국이 앞당겨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