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4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그들의 이해관계’(임현), ‘은의 세계’(위수정)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은의 세계’는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이다. 그중 한 편을 뽑아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삼았는데 그 단편의 제목이 ‘은의 세계’다.

‘은의 세계’의 ‘은’은 작중 인물인 명은과 경은 남매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나, 이 단편을 굳이 표제작으로 삼은 까닭을 살펴보건대 ‘은’은 아무래도 은밀하다는 뜻의 ‘은’인 것 같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이 어떤 면에서 보면 모두 은밀한 세계를 다루고 있으므로 ‘은의 세계’는 단일 작품의 제목이면서 충분히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다.

예술에서의 은밀함이란, 무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잘 알 수 없으면서도 여간해서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게 하는 매혹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위수정의 남다른 능력이라면 바로 이와 같은 은밀함의 세계를 독특하고 능숙한 솜씨로 빚어낼 줄 안다는 것이다.

소설가 위수정./문학동네

은밀한 세계를 빚기 위해 위수정이 사용한 주재료는 사랑과 죽음이다. 조르주 바타이가 ‘에로티시즘’에서 이 두 성분을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다루었듯이 ‘은의 세계’에서도 이 알 수 없는 두 궁극인 사랑과 죽음은 매번 샴쌍둥이처럼 등장한다. 단편 ‘은의 세계’에서 넋이 나간 명은을 탓하면서 포용하고, 의심하면서도 보듬는 하나라는 인물의 알 수 없는 속내에는 그녀의 친남매나 다름없었던, 고등학교 때 12층에서 뛰어내려 숨진 명은의 오빠 경은이 자리하고 있어 그들 간의 사랑은 결코 예사로울 수 없는 빛깔을 띤다. 위암으로 죽어가는 남편과의 뒤늦은 해외 신혼여행을 감행하는 ‘무덤이 조금씩’에서도 젊은 나이에 죽은 자신의 아들의 친구와 연인이 된 영국인 아버지를 불쑥 등장시켜 역시 잘 알 수는 없으나 끝끝내 내밀한 사랑의 풍경에 이끌리고 말게 한다. 그런가 하면 ‘마르케스를 잊어서’의 두 인물은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어린 딸을 잃고 이혼한 뒤 아이의 기일에 함께 이유도 목적도 없는 바닷가 여행을 떠난다. 파국 같으면서도 지속되는 미묘한 사랑의 궤적 역시 죽음이라는 원소 없이는 연소가 불가능한 빛이다.

이처럼 노력과 의지로는 도무지 가 닿을 수 없되 불시에 틈입해 문득문득 놀라게 하는 ‘은의 세계’. 위수정의 독특한 필치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끝내 즐기고야 말게 한다.

☞ 위수정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으로 등단했다. ‘은의 세계’는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