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상 산업은 자국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82국에서 1위를 달리는 동안에도 인도에선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생들의 경쟁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 ‘코타 팩토리(Kota Factory)’, 배우 겸 여성 정치인의 삶을 그린 영화 ‘탈라이비(Thalaivii)’가 각각 드라마·영화 부문 1위를 달렸다. 그러나 지난 1일 ‘오징어 게임’이 ‘코타 팩토리’를 누르고 드라마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일에는 ‘탈라이비’까지 꺾으며 인도 넷플릭스 전체 1위 콘텐츠로 등극했다. 미국 할리우드에 빗대어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상 산업까지 한국 드라마에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개방할수록 잘나가는 K문화
“넷플릭스의 국제화 전략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이 일을 잘해 나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아주 인상적이며, (내게) 영감을 준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3일 자신의 트위터에 쓴 말이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OTT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을 운영하는 베이조스 입장에선 한국 콘텐츠로 세계적 성과를 거둔 넷플릭스가 교훈과 학습의 모델. 넷플릭스 주가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 드라마는 2000년대 초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별에서 온 그대’(2013), ‘태양의 후예’(2016), ‘사랑의 불시착’(2019) 등 로맨스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넷플릭스 이후 ‘킹덤’(2019), ‘스위트홈’(2020), ‘D.P.’(2021) 같은 참신한 소재와 장르적 재미를 앞세운 작품들로 미국·유럽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2016년 넷플릭스가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한국 드라마 다 죽는다”는 말이 나왔지만, ‘킹덤’ ‘스위트홈’뿐만 아니라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까지 넷플릭스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한국 문화 산업의 놀라운 개방성을 보여주는 사례. ‘카이지’ ‘배틀로얄’ 등 일본 데스 게임 장르물이 ‘오징어게임’을 통해 한국형 스릴러로 변모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저널리스트 마쓰타니 소이치로는 야후 재팬에 “’오징어 게임’은 가벼움이 특징이던 데스 게임을 무겁게 그림으로써 새로운 ‘고전’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도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한국 영화의 정점은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 다 죽인다’며 반대가 드높았던 1999년의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에서 싹을 틔웠다는 평가가 많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팝도 일본 문화 개방 이후 일본 J팝의 근간이던 아이돌 문화가 한국으로 건너와 ‘K팝’으로 진화하며 빌보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 “더 커진 빈부격차가 인기 비결”
영국 BBC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현대사회의 계층 갈등을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며 “이런 서사 구조는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함께 다룬 한국 영화 ‘기생충’과 비슷하다”고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디스토피아(distopia·암울한 미래상)적 히트작”이라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심화된 빈부 격차, 백신 디바이드 등으로 국가 간 격차까지 심화된 상황을 인기의 비결로 꼽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유쾌한 어린 시절의 게임을 어둡게 비틀어 대중문화의 감성을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포천 “전 세계 8200만명 시청”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전 세계 확대에서 주력군 역할을 하고 있다. 초창기 아시아·남미 넷플릭스 이용자들 화면에 주로 노출되던 한국 드라마는 최근 북미·유럽 이용자들의 메인 화면에도 집중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한국에 콘텐츠 전담 자회사를 설립하고 스토리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한국에 투자한 비용은 5500억원으로, 지난 2015~2020년까지 6년간 전체 투자액(7700억원)의 3분의 2를 훌쩍 넘어섰다.
미 경제지 포천은 2일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을 인용, 오징어 게임이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래 이달 중순까지 첫 28일 동안 세계 8200만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미국의 모든 방송 및 케이블쇼 40개의 시청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