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휘태커

비는 없다. 하지만 우산을 들고 있다. 영국 리버풀 출신인 네 명의 앳된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평균 나이 22.75세. 가죽 점퍼 대신 양복을 입고, 장발 대신 바가지 머리를 한 네 청년. 아직 ‘비틀스’라는 이름에 지치기 전이다.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에서 오는 29일까지 전시 중인 이 사진은 비틀스 초기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한 로버트 휘태커(Robert Whitaker·1939~2011)가 1964년 스코틀랜드 퍼스셔에서 촬영했다.

천하의 비틀스도 시키는 대로 하던 신인 시절이 있었다.

“신문사는 그들에게 우산을 쓰게 하고, 찻잔을 들게 하고, 심지어 동물 의상도 입게 했습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게다가 링고 스타는 곰 탈까지 쓰고 촬영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하루를 마무리하더라고요.” (휘태커 과거 인터뷰 中)

휘태커는 1964년 비틀스의 첫 월드 투어를 함께했다.

“사람들이 비틀스를 신처럼 숭배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들 역시 그저 인간일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틀스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휘태커가 찍은 비틀스 사진은 전 세계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 비틀스 초기 언론에서는 네 명이 모두 있는 사진을 원했다. 살바도르 달리를 좋아해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을 찍고 싶어 한 휘태커는 네 명을 그냥 카메라 앞에 앉혀 놓고 셔터만 누르지 않았다. 큰 우산을 들게 하고, 배경을 흘려 꿈속 장면처럼 연출했다. 어린 나이에 얻게 된 인기가 꿈꾸는 듯했을까. 조금은 들뜬 표정이 차라리 몽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