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에라도 깨물고 싶은 상큼한 사과, 알고 봤더니 사과가 아니다. 오동통 노른자가 터질 듯한 날계란, 다시 봤더니 계란이 아니다.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극사실주의(하이퍼 리얼리즘) 그림의 주인공은 화가 마르첼로 바렌기. 그가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자신의 작품을 그리는 과정을 촬영해 올리는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263만명에 달한다. 바렌기는 지난 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제12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우리 곁의 사물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업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달 22일까지 서울 용산구 대원뮤지엄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그는 “하이퍼 리얼리즘 작품은 어떤 것이든 소재로 삼을 수 있어 영역의 제한이 없다”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순간을 즐기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한다”고 밝혔다.
바렌기는 이날 ALC의 ‘미디어로 소통하는 예술하이퍼 리얼리즘’ 세션에 연사로 나와 “제 작품을 보고 ‘익숙한 사물에서 상상도 못 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며 놀라는 분이 많다”며 “이전까지 몰랐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영감을 주는 것이 작가로서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정확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바렌기는 이탈리아 밀라노 명문대학인 밀라노폴리테크니크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2013년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접한 뒤 자신의 채널을 개설하고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계란, 가방, 사과,가위, 그가 기르는 고양이, 그가 받은 유튜브 골드 버튼 등 무엇이든 소재가 된다. 1편 완성에 6~8시간쯤 걸린다.
그는 유튜브를 통한 소통에 대해 “모든 사람이 제 작품을 볼 수 있고 알릴 수 있어 큰 장점”이라면서도 “구독자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 상호간 소통보다 일방적인 전달이 된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예술계 변화에 대해서는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돼온 디지털화의 영향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디지털은 저처럼 붓과 물감을 들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리는 사람도 수백만 명에게 작품을 보여줄 기회를 열어준다”고 평가했다.
바렌기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유명해졌으나 “평소 관심사는 오래된 고서적이나 고미술품에서 나오는 광채”라며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또 관능적인 로봇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그래픽 디자이너인 소라야마 하지메의 영향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엔 고독에 관심이 많다”며 “아주 단순한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계속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