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국제 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이 안과 의사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19세 남성들을 대상으로 눈 건강을 검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96.5%에서 근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근시’란 물체의 상이 망막 앞쪽에 맺혀 먼 곳이 잘 안 보이는 굴절 이상을 말한다. 대개 초점 거리에 비해 안구의 앞뒤 길이가 길어져 생긴다. 최근엔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심각한 근시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 특히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급증한 작년부터는 진료 현장에서 체감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어린 환자들이 늘고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서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의 안구 구조는 한번 약화되면 일생 동안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적부터 눈 건강이 나빠지지 않도록 부모가 신경을 쓰는 게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김하경

◇한번 생긴 근시, 평생 고치기 쉽지 않아

근시는 너무 흔한 탓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지만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다. 한번 약화한 안구 구조는 일생 바뀌지 않는다. 시력 교정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고도 근시는 황반변성·망막박리·녹내장 등 주요 안구 질환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아이의 눈에 근시가 안 생기도록, 혹은 생기더라도 가벼운 근시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사람은 처음 태어날 땐 안구의 앞뒤 길이가 짧다. 95% 이상의 아기가 원시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니, 아기들이 처음 마주한 세상은 흐릿하게 보일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초점 책을 보여주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원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상이 흐리게 보이는 만큼 안구가 길어지도록 우리 몸이 바뀌기 때문이다. 원시가 정시로 자리 잡으면 그제야 안구를 길게 하는 우리 몸의 신호도 멈춘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이나 TV 등 아이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영상을 보는 환경에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이러한 섭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사물을 가까이에서 보면 망막에 맺히는 상이 흐려지게 마련인데, 이때 뇌는 원시로 태어난 아기 같은 상황으로 우리 몸을 착각해 안구를 길게 만드는 신호를 생성한다. 근시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 들었던 “TV 가까이 다가가 보지 말라”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TV 모니터는 최대한 멀리

현재 다양한 근시 치료법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이를 둘러싼 환경의 개선 없이 치료만 하면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이 되풀이될 뿐이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눈 건강을 지키는 팁을 소개한다. 각자 상황에 따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를 적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눈이 부시지 않은 한도 내에서 가급적 밝은 집 안 환경을 만들자. 어두운 곳에서 근시가 진행된다는 보고가 많다. 다만 심한 강도의 빛은 눈의 피로를 유발하고 망막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눈부실 정도는 피해야 한다.

가끔씩 시야를 넓혀 멀리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똑같이 책을 읽어도 사방이 막힌 곳에서 읽는 것과 풀밭에 앉아 읽는 것은 다르다. 창이 없는 밀폐된 공간보단 가급적 트인 공간에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책은 최소 30cm 이상, 가능하다면 50cm까지 떼고 보는 게 좋다.

코로나 때문에 화상 수업을 한다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화면을 1m 이상 최대한 멀리 둔다 생각하고 의자와 모니터 위치를 조정해 주는 게 좋다. 또 수업이 끝날 때엔 잠깐이라도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쳐다보는 습관을 가지도록 알려주어야 한다.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 5분 이상 책이나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있도록 알람을 맞춰주는 것도 좋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도 늦출수록 좋다. 이미 손에 익어 버린 아이라면 무작정 못 쓰게 할 경우, 어두운 곳에서 몰래 쓰다 근시가 악화하기 쉽다. 차라리 개방된 공간에서 스마트폰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멀리 두고 이용하도록 제한을 두는 게 낫다. 또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아이들이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흔들리는 환경에서 물체를 응시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코로나와 미세 먼지 탓에 야외 활동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방역 수칙을 지켜 밝은 대낮 야외 활동을 한다면 눈 건강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산책만 하더라도 근시 예방에 보탬이 된다. 기분 전환과 아이와의 이야깃거리가 늘어나는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