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실시된 영국 지방선거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런던시장에 출마한 주요 정당의 두 후보자 때문이었습니다. 노동당 후보로 나선 사람은 파키스탄계 무슬림인 사디크 칸 현 시장이었고, 보수당에선 자메이카계 흑인 숀 베일리를 내세웠습니다. 무슬림 대(對) 흑인의 대결 구도였던 것이지요. 두 사람 모두 제3 세계 출신의 소수 유색인종 이민 2세라는 점은 누가 당선되느냐를 떠나 그것 자체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이벤트였습니다.

◇ 무슬림 대 흑인

그렇게 보수적이라는 영국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을까요. 더군다나 집권 여당인 보수당이 흑인을 런던 시장 후보로 내세우다니. 선거 결과는 런던이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데다 현 시장이라는 프리미엄까지 갖춘 사디크 칸 시장이 55.2%를 득표해 44.8%를 얻은 베일리 후보를 꺾었습니다.

사디크 칸 영국 런던 시장이 8일(현지시간) 재선이 확정된 뒤 런던 시청에서 연설하고 있다. 지난 6일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 개표 결과 노동당 소속의 칸 현 런던 시장이 55.2%의 지지를 받아 보수당의 숀 베일리 후보(44.8%)를 꺾었다. /연합뉴스

두 사람 모두 전형적인 흙수저입니다. 칸은 1970년 런던 남부 투팅 지역의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7남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시내버스 기사, 어머니는 재봉사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 학기 중엔 신문 배달, 방학 때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고 합니다. 노스런던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인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1994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런던 시장 선거 D-1 유세하는 베일리 영국 보수당 후보. /연합뉴스

숀 베일리도 빈곤층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 그의 가족은 조부모와 고모, 삼촌 등과 함께 공공임대주택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비행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친구들하고 강도짓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집안 살림이 넉넉치 않으니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지요. 축구장 경비원과 공장 청소원, 맥주 배달원 등으로 일을 해서 돈을 모은 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진학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처럼 행복하지 못한 시절을 보내는 청소년들을 위해 2006년 ‘마이제너레이션’이라는 자선단체를 설립했고, 이를 배경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보수당 총선 승리를 이끈 뒤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이 그를 청소년 범죄 담당 보좌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자기가 태어난 모국(母國)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을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 또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최강’ ‘세계의 중심’을 자부했던 영국이기에,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몰려든 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재밌는 건 최근에도 영국으로의 이민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민자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것을 뜻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감행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이민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영국인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엔 배경 설명이 조금 필요합니다.

우선, 영국인들이 갖고 있는 불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교육과 의료, 두 분야에 대해 영국인들이 대단히 불평을 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속살이 드러났는데 영국 보건·의료 분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대단히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영국에선 병원이 모두 무료 입니다. 이 거대한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게 대단히 어렵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부문 종사자들에게 넉넉하게 월급을 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정된 돈으로 운영해야 하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려야 하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처럼 한꺼번에 의료 수요가 폭발하는 경우엔 그게 감당이 안됐던 것이지요.

교육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의 7%를 차지하는 사립학교와 일부 성적이 우수한 학교(예를 들어 그래머 스쿨)를 제외하고, 나머지 일반 공립 학교의 교육 서비스 수준이 아주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학부모들의 불만도 클 수 밖에 없구요.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이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영국이 EU에 내는 돈이 매주 3억5000만 파운드(약 5500억원)에 달한다. 왜 이런 엄청난 돈을 EU에 내야 하느냐. 브렉시트가 되면 이 돈을 영국의 의료와 교육에 쏟아부을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이런 주장도 합니다. “영국에는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온다. 이들이 우리와 똑같이 교육과 의료 혜택을 다 받으니, 우리(영국인)에게 돌아오는 몫이 작아질 수 밖에 없다”고요.

최근 프랑스 북부에서 불법 이주민들의 영국 밀입국 시도로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칼레에서 난민들이 유로터널로 이어지는 길목에 서 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영국은 EU에 어마어마한 돈을 보낸다. 한편, 엄청난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들 때문에 우리 교육과 의료가 엉망이다. 브렉시트를 하면, EU에 돈을 안 보내도 되고, 영국에서 수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인 이민자들을 차단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대단히 파워풀했고, 대영제국에 대한 영국인들의 향수와 맞물리면서 결국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브렉시트 찬성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이런 주장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습니다. 대표적인 거짓이 매주 EU에 보내는 돈이 3억5000만 파운드라는 것입니다. BBC와 뉴욕타임스 등 영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팩트체킹에 나섰는데요. 영국이 EU 회원국으로서 실제로 내는 돈은 1억5000만 파운드(약 2380억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국이 일단 돈을 낸 뒤에 여러가지 보조금 명목으로 다시 돈을 돌려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과 과학, 농업 등 분야에서 다양한 보조금을 EU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뒤 탈퇴파들은 발빼기·잡아떼기 신공을 보여줍니다. 탈퇴파였던 리엄 폭스 전 국방장관은 “투표 전에 얘기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실(fact)’로는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몰려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EU 28국 중에서 유독 영국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특히 폴란드 등 동유럽 사람들이 영국을 행선지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이 아니고 꼭 영국이었을까요. 세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①파운드화(貨) ②치안 ③ 영어와 교육 입니다.

◇ 영어

우선 파운드화. 영국은 다른 EU 회원국과 달리 독자적인 화폐를 유지했습니다. 이 파운드화는 전 세계 모든 화폐 중 가장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월 7일 현재 1파운드는 한국 원화로는 1558.56원(하나은행 기준) 입니다. 미국 달러화로는 1.39달러이고, EU의 유로화로는 1.15 유로 입니다. 따라서 동유럽에서 온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서 번 파운드화를 모국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낸다고 가정할 때, 다른 유럽 나라에서 일해서 보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가족이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파원 근무 때, 저희 가족이 세들어 살던 집 관리인은 불가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고향에 있을 땐 하루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그날 먹고 살았다. 그런데 영국에 오니 하루 벌어서 고향 가족이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고향에 부친은 평생 차 딱 한대를 사서 탔는데, 본인은 벌써 4번째 차를 타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둘째는 안전 입니다. 영국은 다른 유럽 나라보다 치안 사정이 낫습니다. 2015년 이후 유럽에서는 테러가 아주 많이 발생했습니다. 바타클랑 극장 등에서 130명이 사망한 파리 연쇄 테러(2015년 11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에서 18t 트럭이 시민들을 덮쳐 86명이 숨진 니스 트럭 테러(2016년 7월), 연말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공격해 12명이 사망한 베를린 트럭 테러(2016.12), 벨기에 브뤼셀 지하철역과 국제공항에서 연쇄 폭탄 테러로 34명이 숨진 벨기에 브뤼셀 테러(2016년 3월)…. 당시 유럽에선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테러가 터졌습니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발생한 테러는 소총과 폭탄, 대형 트럭 등이 사용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형 사건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영국에서 발생하는 테러는 주로 칼을 이용한 것으로 사상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 영국은 경찰력이 아주 강력하고, 정보기관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대형 테러나 범죄를 미리 막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가족과 함께 살 나라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안전한 나라를 고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인도의 한 다국적기업에서 현지 직원들이 영어 교육을 받고 있다.인도는 힌디어문학이 위협받을 만큼 영어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어입니다. 당시 브렉시트를 취재하면서 이민자들, 특히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영국에 온 사연은 저마다 다양했는데, 특히 자녀를 데리고 온 경우는 빠지지 않고 거론한 것이 영어였습니다. 영국에 가면, 비록 좋은 학교는 아니더라도 학교에 보내서 아이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자녀를 유학보낸다면 미국이나 영국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특히 영국식 영어는 미국과는 좀 다르죠. 다른 것 뿐 아니라, 좀 더 품격있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종주국이라는 자부심도 있고요. 한번은 영국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영국인들이 미국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놓고 농담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고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영국 사람들이 미국식 영어를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는 점을 직접 겪으니 묘한 감정이 일더라구요.

영국에 정착한 앵글로색슨이 중세 때 자신들의 고대 영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알프레드 대왕이 또 등장한다는 얘기는 다음번 마지막 알프레드 이야기 때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