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을 불과 나흘 앞둔 2014년 12월 27일, 지인의 소개로 아내와 처음 만났다. 우리는 알콩달콩 연애 끝에 2016년 여름 결혼했다. 해외 영업을 하는 나와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아내는 행복한 날들이었지만 1년 정도 지나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빈 감정들이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눈 끝에 아기를 갖자고 결심했다. 2018년 새해 첫날, 한 해 목표를 ‘크리스마스를 아기와 함께’로 정했다. 당시 나는 마흔셋, 아내는 서른여섯이었다.
◇시험관 3차 만에 찾아온 쌍둥이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기에 걱정도 됐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주말엔 부부가 함께 요가와 태보 수업을 다녔다. 웬만한 거리는 다 운동 삼아 걸었다. 육아 관련 서적도 틈틈이 미리 읽었다.
하지만 두 해가 지나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평소 우리 부부 모두 건강하다고 자신했었기에 좌절감도 컸다. 고민 끝에 2020년 초 난임 병원을 함께 찾아 시험관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병원을 찾아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했다. 시간 맞춰 약도 먹어야 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는 진료일마다 매번 연차 휴가를 쓰는 게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 8시에 진료를 받고 병원에서 지하철역까지, 또 직장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출근했다.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고 출근하는 아내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시험관 1차에서 바로 아기가 생길 줄 알았지만 2차가 지나도록 소식은 없었다. ‘영영 아기를 못 갖는 건 아닌지’ 초조한 날들이 이어졌다. 의사는 조금 휴식기를 갖고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아기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3차 시술을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하나도 아닌 두 명의 아기 천사들이 찾아왔다. 아내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태명은 ‘애플’, ‘망고’로 지었다. 사과와 망고라는 각자의 이름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애플망고라는 과일이 있는 것처럼, 두 아이들도 각자의 삶을 잘 사는 동시에 서로에게 조화로운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서른아홉 살 아내는 자연분만
지난달 5일 자정, 17시간 진통 끝에 두 아이는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고생한 아내 얼굴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또 이렇게 힘들게 나를 낳았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아기들과 함께한 지난 한 달간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매일 아이들 사진을 부모님께 보내면서, 함께 웃고 있다. 새벽 세시에 아기 우는 소리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면서도 짜증 한번 나지 않고 웃음이 나왔다.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마흔여섯이 되서야 깨닫게 되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서 더 감사하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결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 그리고 나아가서 한 집안의 부족한 웃음과 활력,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것이더라.
조카 경인이가 올해 열 살이다. 지난 십년 동안 온 가족이 경인이의 얼굴과 재롱을 보면서 함께 웃었다. 이제는 십년 동안 웃음을 준 조카의 자리를 우리 쌍둥이 준호, 준성이가 채워줄 시간 같다. 우리 가족에게 큰 웃음을 주는 이 아이들이 자라서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건강 관리도 잘해 이 아이들이 대학 갈 때, 이후 장가를 가고 또 그들의 아이를 낳고 또 키우는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난임병원을 다니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아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시험관 시술만 열 번 넘게 시도하고 있는 부부들이 있다. 그들의 앞날에도 꼭 예쁜 아기가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