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코로나 백신에서 성공한 이유는 자본주의(capitalism)와 탐욕(greed) 때문입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의 한마디가 최근 유럽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존슨 총리가 ‘농담’이라고 둘러댔지만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많은 과학자와 공공 보건 전문가들에게 이 발언은 “불편하지만 사실 아니냐'는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 성공(Success)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런던 세인트 토머스 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받은 뒤 두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이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을 재확인한 이후 존슨 총리와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 등이 이날 AZ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연합뉴스

최근 전 세계 코로나 상황을 보면 존슨 총리 말이 근거 없는 것도, 과장도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듯 합니다. 영국이 성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정도로 좋은 상태인 건 사실입니다. 영국은 1회 이상 백신을 맞은 사람이 3000만명을 넘었습니다. 18세 이상 접종 대상자만 보면 전체 인구의 60%에 육박합니다. 그에 따라 확진자도 다른 유럽국에 비해 현저하게 적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최근 7일 평균 하루 확진자는 4만명 수준인데, 영국은 5200여명에 불과합니다.

유럽 대륙에선 이 발언에 열받는 사람들이 꽤 많을 듯 합니다. 남들은 아직 비참하고 희망이 안보이는 상황인데 대놓고 ‘자랑질’ 하는 게 얄밉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상처에 굵은 소금 팍팍 뿌리는 것처럼 말이죠. 더군다나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최근 백신 공급을 놓고 꽤 거칠게 맞서고 있습니다. 영국은 원하는 만큼 백신을 받아 순조롭게 접종을 진행하는데, EU 국가들은 백신이 모자라 아우성입니다.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EU에 당초 계약만큼 백신을 제때 공급하기 어렵다고 한 상황이어서 EU측은 말그대로 폭발 직전입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과 스웨덴 회사가 합병해 만든 제약사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함께 백신을 만들었지요. 이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등과 함께 현재 서구 진영에서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주요 제품입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이 백신을 맞고 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생산 공장이 영국에 두 곳, 유럽에 두 곳 있습니다.

EU측은 영국과 달리 EU엔 백신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느냐며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EU 지역에서 생산된 백신 7700만회분 중 2100만회분이 영국으로 넘어갔다는 통계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생산된 백신이 유럽으로 오지는 않는다면서요.

EU 내 강경파들은 EU 역내에서 생산된 백신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을 주장했지요. 이 방안은 최근 열린 EU 정상 회의 때 통과되진 않았습니다만, 최근 유럽의 살벌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 드골

1944년 8월 파리가 나치 치하에서 해방되자 개선문을 통해 입성하는 샤를 드골(가운데).

최근 영국과 EU 갈등을 보면 얼마전까지 한 지붕에 있었던 친구 맞나 싶습니다. 이렇게 으르렁거리는 사이인데 어떻게 47년이나 한 집에서 살았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마찰이 낯선 광경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영국과 유럽 대륙의 관계를 애증(愛憎)이라고 표현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증(憎)쪽이 약간 더 무게가 쏠린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가지 않고 우선 윈스턴 처칠 총리의 말을 들어보시죠. 1953년 5월 11일 하원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우린 우리만의 꿈과 과업이 있습니다(We have our own dream and own task). 우린 유럽과 함께 하지만 그들의 일부는 아닙니다(We are with Europe, but not of it) … 만약 영국이 유럽과 열린 바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린 언제나 열린 바다를 선택해야 합니다(If Britain must choose between Europe and the open sea, she must always choose the open sea).”

처칠은 너무도 명쾌하게 영국과 유럽 대륙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국이 유럽의 한 일원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 오히려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지금의 EU)에 가입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조성된 글로벌 정세 속에서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2차 대전 때 함께 피를 흘리면 싸운 전우들이 드러낸 관계라고는 믿기 어렵지요.

영국은 1963년과 1967년 등 두 차례나 EEC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습니다. 드골은 영국에 대해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영국은 언제나 미국의 편에 설 것”이라며 영국을 받아들인다면 틀림없이 미국의 영향력을 끌어들이는 ‘트로이 목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독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다른 회원국 설득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EEC 가입은 드골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야 성사됩니다.

# 정복왕 윌리엄과 백년전쟁

'타임라인' - 14세기 백년전쟁 속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좀 더 깊이 파고들다보면 정복왕 윌리엄(윌리엄1세·1028~1087)를 만나게 됩니다.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인들이 10세기에 영국과 마주보는 지금의 프랑스 북서부 지역에 ‘노르만인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습니다. 영국에서 알프레드 대왕 후손의 대가 끊기자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정당성을 인정받기엔 쑥스러운’ 혈통을 내세우며 자신이 왕위계승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066년 영국 남동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결국 영국 왕에 오릅니다. 그가 창업한 노르만 왕조는 영국은 물론 프랑스에도 엄청난 땅을 보유한 강국으로 성장합니다. 그의 외증손자 헨리 2세때는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아퀴텐, 가스코뉴 등 유럽 대륙에 있는 영토가 프랑스 왕의 땅 만큼이나 컸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헨리 2세의 아들 존 왕이 프랑스와 무모한 전쟁을 벌인 끝에 이 땅의 대부분을 잃게 됩니다. 존 왕은 세계사에서 너무나 유명한 대헌장을 탄생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잇따른 전쟁과 가혹한 세금 징수에 분개한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존 왕으로 하여금 대헌장에 서명하게 만들었지요. 존 왕 시대에 영국 왕의 프랑스 땅은 칼레와 아퀴텐 일부로 줄어들고 맙니다.

그로부터 약 1세기가 흐른 뒤, 오매불망 프랑스 땅을 못잊는 영국 왕들은 프랑스와 ‘백년전쟁(1337~1453)’을 벌입니다. 전세는 여러차례 엎치락뒤치락 했는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혜성같이 나타난 잔다르크의 눈부신 활약으로 프랑스는 결정적 승기를 잡게 됩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아퀴텐 마저 프랑스에 넘겨주고, 손바닥만한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전 지역에서 쫓겨납니다. 현재의 영국과 프랑스의 영토 골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이후 유럽 대륙에 대한 영국의 전략은 “그들끼리 싸우고 견제하게 만들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일종의 영국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 하겠습니다. 너무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래서 혹시 영국이 공격받을 수도 있다면, 주변국을 부추기고 도와줘서 견제하게 만드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생존 경쟁이 치열한 국제 사회에서 영국의 진정한 우방, 친구는 누구일까요.

# 앵글로색슨

지난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통화한 뒤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중국과 그들(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대해 얘기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세계 전역의 도움이 필요한 공동체들을 돕는,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도출된 (일대일로와 비슷한) 이니셔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영국 등 서구 국가들이 협력해 ‘일대일로’처럼 저개발국의 인프라 건설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존슨 총리에게 했다는 뜻입니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집권 직후인 2013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 프로젝트입니다. 중국이 저개발국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해 주고 무역과 상호 교류를 확대해 ‘신(新)실크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일대일로에 따라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등 전 세계 100여개 개발도상국에 중국 자본과 기업이 뛰어들어 도로와 철도, 항만, 통신 등 각종 인프라 건설 공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작년 현재 일대일로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2600여개에 달하고, 투입된 돈은 3조7000억달러(약 4200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 등 서구 사회는 중국의 거침없는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이를 억제하려고 하는데, 이 일에 발동을 걸면서 미국이 가장 먼저 상의한 나라가 영국인 것입니다. 두 나라는 뭘 하든 가장 먼저 상의하고, 어떤 순간에도 함께 하는 형제 또는 동맹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 더욱 자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함께 눈여겨 볼 국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국가들입니다. 파이브 아이스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국으로 구성된 정보협력체입니다. 재밌는 건 이들 국가가 모두 앵글로색슨의 나라라는 점입니다. 캐나다는 지난번 편지에서 다뤘듯이 7년전쟁(1756~1763)을 통해 영국이 프랑스를 쫓아냈지요. 호주는 1788년 죄수를 태운 영국 선단이 도착하면서 영국 식민지가 됩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뿌리내리고 작동하는 곳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요즘처럼 이념과 철학, 가치에 기반한 각 세력이 강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먼저 손을 잡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국제 뉴스를 볼 때, 이 앵글로색슨족 국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