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에 더해 조선 시대 배경 드라마에 중국풍을 과도하게 드러내 논란 끝에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제작·출연진들이 줄줄이 사과 입장을 냈다.
박계옥 작가는 27일 입장문을 내고 “사려 깊지 못한 글쓰기로 지난 며칠 동안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작가로서 지난 잘못들을 거울삼아 더 좋은 이야기를 보여드려야 함에도 안일하고 미숙한 판단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분노와 피로감을 드렸다”라며 “조선의 건국 영웅분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한 점에 대해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또 “역사 왜곡은 추호도 의도한 적이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남긴 점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자신의 전작인 ‘철인왕후’에서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전력이 있어 이번 조선구마사 사태에서 제작·출연진 중에서 가장 많은 질타를 받았다.
철인왕후는 방영 전부터 중국 드라마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해 논란이 일었으며,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지칭하는 대사가 방송돼 비판받았다. 조선구마사에서도 중국식 소품과 의상을 사용하는 등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중국풍을 과도하게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 등 실존 인물에 대한 설정이 실제 역사와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역사 왜곡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연출을 책임지는 신경수 PD 역시 이날 사과 입장문을 냈다. 신 PD는 “최근 불거진 여러 문제에 대해 모든 결정과 최종 선택을 담당한 연출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사죄드리고자 한다”며 “드라마의 내용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선택의 책임은 제게 있다”고 밝혔다.
이어 “편향된 역사의식이나 특정 의도를 가지고 연출한 것이 아니다”라며 “문제가 됐던 장면들은 모두 연출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조선구마사에 출연했던 배우 감우성, 장동윤, 박성훈, 이유비는 등도 사과 입장을 냈다. 조선구마사 논란 초반에는 비난이 작가·PD 제작진에게 집중됐지만, 논란이 커지면서 ‘작품 선택 책임’을 이유로 비난의 화살이 출연진에게까지 향했기 때문이다.
감우성은 이날 소속사 WIP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선구마사'의 일원으로서 시청자들을 포함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배우로서 더욱 심도 있게 헤아리지 못해 실망감을 안겨드려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선구마사'가 악령을 매개로 한 허구의 스토리라고 하더라도 실존 인물을 통해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배우로서 시청자분들께 역사 왜곡으로 비춰질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동윤은 이날 오전 소속사 동이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번 작품이 이토록 문제가 될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며 “제가 우매하고 안일했기 때문이며 변명의 여지 없이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박성훈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출연 배우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창작과 왜곡의 경계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했다”고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이유비도 인스타그램에 “드라마 쪽 상황이 정리가 된 이후에 글을 올리려다보니 늦어졌다며” 기존에 하지 않았던 캐릭터를 표현하는 저 자신만을 욕심냈던 것 같고, 역사왜곡 부분에 대해 무지했고 깊게 생각하지 못한 점 반성한다”고 했다.
SBS는 방송 2회 만에 조선구마사 폐지 입장을 전날 밝혔다. 전날 SBS는 “지상파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조선구마사’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SBS는 전체의 80% 촬영을 마친 제작사에 방영권료 대부분을 지급했지만, 시청자들의 거센 퇴출 요구에 이례적으로 백기를 들었다. 수십 회에 달하는 드라마 특성상 시청자 반발로 편성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방송을 폐지한 건 처음이다.
삼성전자·LG생활건강·에이스침대 등 기업들이 광고 철회 의사를 밝힌 것도 폐지 결정의 중요한 이유가 됐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이 드라마가 그동안 축적된 반중(反中) 정서가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조선구마사는 악령을 쫓기 위해 중국 명나라를 통해 서역의 구마사를 조선에 들여온다는 설정을 가진 드라마다. 하지만 지난 22일 첫 회에 방송된 연회 장면에서 월병, 피단, 중국식 만두 등을 식탁에 올렸고, 극중 의상과 군사들이 사용하는 검(劍)까지 중국풍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또 장차 왕이 될 충녕대군(세종대왕)이 병풍처럼 연회장 한쪽에 서서 사신을 맞는 장면도 모욕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