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책을 읽다가 “어 이거 정말 궁금한데…” 하면서도 오랫동안 해답을 찾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책 내용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웨식스의 왕) 에드가는 973년 마침내 바스에서 통일된 잉글랜드 왕으로 대관했다. 이때의 대관식이 오늘날까지 영국 왕 대관식의 본이 되어왔다.”
이 대목에 유독 눈길이 간 이유는 ‘영국 또는 영국인은 바로 이런 존재구나’하고 벼락맞은 듯 머리 쭈뼛하게 깨닫게 된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왕의 대관식 중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잊지 않고 머리 한 구석에 넣어놓고 있으면 언젠가 해답을 만나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특징을 꼽으라면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도통 옛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 점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영국 주택가엔 아직도 100년 넘는 집들이 수두룩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진짜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풍스럽고 멋있습니다. 하지만 내부까지 매력적이진 않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실내까지 만족감을 주는 집은 내부를 확 뜯어고친 경우입니다.
런던에 특파원으로 발령이 난 후 처음 살았던 집은 겨울에 집안이 하도 추워 실내에서도 입김이 나왔습니다. 하루 3번 보일러 돌리는 시간을 제외하곤, 나머지 시간엔 거실에서도 두툼한 겨울 파카를 입고 지냈습니다. 한국 만큼 따뜻하게 살려면 난방비가 감당이 안되었구요. 그런 집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도 영국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된 집에 다들 잘살고 있습니다. 집 뿐만이 아닙니다. 옛것을 더욱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사회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왜 이런 특성을 갖게 됐는지 원인과 이유, 배경, 맥락을 파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거기까진 가지 않고, 영국과 영국인이 이런 특성을 가진 존재구나 하고 일단 인정한 뒤 바라보면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영국 역사로 잠깐 돌아가보겠습니다.
에드가는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입니다. 5세기 중엽부터 유럽의 덴마크 반도와 라인강 하구 일대에 살던 앵글로색슨족이 영국에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이 잉글랜드 땅에 세운 7개의 나라를 ‘7왕국’이라 합니다. (참고로 한동안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드 ‘왕좌의 게임’에도 7왕국이 등장해 더욱 관심이 갔던 기억이 납니다.)
알프레드는 그 중 하나인 웨식스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바이킹 침입으로 완전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앵글로색슨의 왕국을 지켜냅니다. 알프레드 덕분에 영국이 앵글로색슨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이 때문에 알프레드는 영국의 모든 왕 중에서 유일하게 ‘대왕(the Great)’으로 불립니다.
알프레드 이후 왕위는 에드워드➜애설스턴➜에드먼드➜에드가로 이어집니다. 에드가 시대에 이르러 웨식스는 잉글랜드 땅의 최고 지배자로 등극하고, 책에 나온대로 그는 ‘통일된 잉글랜드’의 왕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에드가 평화왕(Edgar the Peaceful)’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핵심 포인트는 당시 대관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1-973=1048′ 입니다. 무려 1048년 전 있었던 의식이 지금도 실행되는 곳, 이런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미드 ‘왕좌의 게임’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용의 어머니인 여주인공 대너리스 타가리옌이 남주인공 존 스노우를 드디어 만납니다. 대너리스의 통역관이자 서기인 미산데이가 대너리스를 소개합니다.
“①폭풍우가 낳은 ②타가리옌 가문의 대너리스 ③안달족과 ④퍼스트맨의 여왕 ⑤철왕좌의 적법한 계승자 ⑥7왕국의 수호자 ⑦용들의 어머니 ⑧대초원의 칼리시 ⑨불타지 않는 자 ⑩족쇄의 해방자.”
정말 대단한 타이틀의 소유자 입니다. 여기에는 못미치지만 영국 왕족들도 화려한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맏손자이면서 최근 여왕보다 인기가 더 좋은 윌리엄 왕세손은 ‘케임브리지 공작(잉글랜드)’ ‘스트라선 백작(스코틀랜드)’ ‘캐릭퍼거스 남작(북아일랜드)’ 작위를 갖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그는 ‘케임브리지 공작’으로 불립니다. 케임브리지 공작은 1660년 당시 왕 찰스 2세가 조카에게 처음 부여한 작위입니다.
얼마전 부인 메건 마클과 함께 오프라 윈프리 인터뷰에 출연해 미국과 영국에서 핵폭탄급 화제를 일으킨 해리 왕손. 그는 ‘서식스 공작’이라고 불리는데 이외에도 ‘엄버턴 백작’, ‘카일킬 남작’ 작위도 있습니다. 서식스 공작이란 작위가 처음 만들어진 건 1801년 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이어 다음 왕이 될 찰스 왕세자는 영국에서 ‘웨일즈공(Prince of Wales)’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연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의 영국, 즉 United Kingdom의 정식 이름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입니다. 지역적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를 포괄합니다. 초기 앵글로색슨족은 앵글랜드 지역에 나라를 세웠고, 이후 다른 지역을 정복해 지금의 영국을 만들게 됩니다.
1272년 왕이 된 에드워드 1세의 공적 중 하나는 웨일즈 정복입니다. 그는 정복한 웨인즈 땅을 통제하기 위해 곳곳에 성을 쌓았습니다. 그 중 하나인 카나번 성에서 태어난 아들 에드워드 왕자(나중에 에드워드 2세)가 1301년 ‘웨일즈공’에 서임됐고 이후 이 명칭은 왕세자에게 부여되는 것으로 정착합니다. 왕세자를 웨일즈공이라고 부르게 된지가 벌써 720년이 된 것입니다.
매년 3월 초 영국 재무장관이 관저인 다우닝가 11번지를 나올 때 문 앞에 잠깐 서서 빨간 가방을 얼굴 높이로 들어보이는 장면은 신성한 의식을 연상케 합니다. 이때 기자들의 사진기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집니다. 이 가방에는 재무장관이 그날 의회에서 발표할 예산안이 담겨 있습니다.
재무장관의 빨간 가방이 등장한 건 1860년이고, 이 가방을 높이 들어 보이는 전통은 1868년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조지 와트가 의회에서 그 빨간 가방을 열었는데, 안에 있어야 할 서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때 이후로 재무장관은 “예산안을 이 가방에 잘 넣고 나왔다”는 의미로 가방을 들어보인다고 합니다.
영국 왕은 매년 의회 개원 때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가서 연설을 합니다. 왕은 백마 여섯 마리가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의사당으로 가는데 이때 왕실 근위대는 램프를 들고 의사당 지하를 수색합니다. 또, 여왕이 의사당에 가 있는 동안 하원 의원 중 한 사람은 ‘인질’ 신분으로 궁에 잡혀 있어야 합니다. 의사당 왕좌에 앉은 왕은 블랙로드(Black Rod)를 시켜 의원들을 불러오라고 명하는데, 블랙로드가 하원 회의실에 도착할 때 그의 눈 앞에서 문이 쾅 닫힙니다. 블랙로드가 지팡이로 세 번 문을 두드리면 그때서야 문을 열어줍니다.
이 하나하나 행동과 절차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고,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1605년 제임스 1세 때 왕과 의원들을 암살하려 했던 ‘화약음모사건’, 청교도 혁명으로 1649년 참수형을 당한 찰스 1세 때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과 에피소드, 교훈 등을 반영한 것입니다. 영국에서 이런 케이스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차고도 넘칩니다.’ 영국인들은 이런 역사와 전통, 관행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과거와 역사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지나간 옛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와 함께 공존하는 삶의 일부라고 봅니다. 그런 의식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 같습니다. 사람들이 “영국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곳”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이런 나라에서 해리·메건 인터뷰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일각에선 영국 왕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영국 민심은 오히려 해리·메건에게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입니다.
해리와 메건 인터뷰 이후 미국과 영국의 반응이 완전 갈렸습니다. 여론조사기관인 유고브 조사 결과, 미국에선 응답자의 44%가 “두 사람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적절하다”고 답했습니다.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은 20%였습니다. 반면, 영국에선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47%, “적절하다”가 21%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다시 유고브가 영국인 465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36%가 영국 왕실에 더 공감을 한다고 했고, 해리·메건 부부에 공감한다는 답은 22%였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기전부터 영국 왕실쪽 편을 드는 영국인들이 더 많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왕실은 찬란했던 대영제국을 이끌고 지탱해온 정신적 지주입니다. 지금도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영국인들의 지지율은 70%를 넘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그런 왕실에 대해, 그것도 여왕의 손자인 왕손이 왕실의 치부를 들추는 내용으로 방송에 나와 비난 인터뷰를 한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해리와 마클이 영국인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영어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I don’t think so(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