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국은 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한 건가요?”

유럽 특파원으로 2년간 영국 런던에 있었다는 말을 하면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입김이 센 유럽연합(EU)에 끌려다니는 게 자존심 상해서? EU에 내는 회원국 분담금이 너무 많고 그 돈이면 문제 투성이인 교육과 의료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기에? 함께 살기 싫은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설명과 해석, 분석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건 20대 여성의 말이었습니다. “향수지요.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 브렉시트 투표 때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의 찬반이 크게 갈렸는데 중장년 세대의 다수가 탈퇴를 찬성한 이유가 쏙 들어오더군요.

엘리자베스 여왕.

국토 면적 24만2500㎢, 한반도 (22만1000㎢)보다 약간 큽니다. 인구 6790만명, 남북한 합친 것보다 적습니다. 그런데도 한 때 전 세계 인구와 영토의 4분의 1을 지배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 바로 영국입니다.

이젠 한물간 제국인 것 같은데 영국은 요즘에도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영국 관련 뉴스는 유난히 눈에 잘 밟히는데 특파원 경험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뭔가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지요.

요즘 영국이 거론되는 단골 이슈는 코로나 팬데믹 관련 입니다. 팬데믹 초기 영국은 코로나 사태에 잘 대응하지 못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의료가 붕괴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어떻게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라는 영국이 저렇게 망가질 수가 있지요?” 이런 말이 참 많았습니다. 코로나 발원지 중국과 유럽의 첫 대규모 확산지 이탈리아에 이어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죠.

영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420만명 정도로 세계에서 다섯째이고, 사망자도 12만명이 넘습니다. 단연 ‘유럽 톱’입니다. 인구(8300만명)가 훨씬 많은 독일의 확진자가 240만여명, 사망자가 7만여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피해가 얼마나 큰지 확실시 알 수 있죠. 인구가 비슷한 프랑스도 확진자 370만여명, 사망자 8만6000여명 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 발생했다면 아마 정권이 크게 흔들렸을 겁니다. 하지만 영국 집권 보수당은 멀쩡합니다. 이런 영국의, 우리에겐 정말 색다르게 보이는 특성은 이 뉴스레터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차례 얘기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악몽이 계속될 것 같더니 새해들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백신 접종과 함께 시작된 놀라운 반전입니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지난 27일 현재 코로나 백신을 한번이라도 맞은 사람은 2000만명이 넘습니다. 전체 인구의 30%에 달합니다. 정말 부러운 수치네요. 세계에서 영국보다 백신을 많이 맞은 나라는 돈 많고 인구는 적은 이스라엘과 UAE 뿐입니다. 같은 유럽 국가인 독일은 4.6%, 프랑스는 4.3%에 불과합니다. 스페인은 4.5%, 이탈리아 4.7% 등입니다. 미국도 이 비율이 14.5%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압도적'이란 단어를 쓸만 합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올 여름까지는 모든 성인이 백신 접종을 마칠 거라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강력한 봉쇄 조치와 함께 백신 접종의 확대는 실제 코로나 환자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6만명이 넘던 하루 확진자는 5000명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요 며칠은 하루에 1000명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감소 추세는 앞으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영국은 이번에(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국가를 이끄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주 발빠르게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백신은 2번 맞아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우선 많은 사람에게 한 번만 맞는 전략을 밀어붙였습니다. 대단히 과감하고 획기적인 한 수였습니다. 일본 등 다른 나라도 이 전략을 따라하려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맷 핸콕 보건장관(왼쪽)과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고 있는 영국 국민./유튜브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포인트가 2가지 있습니다. 영국은 주요 결정을 정말 철저하게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물론 과학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가끔 한계와 단점도 나타납니다) , 그리고 정부가 결정하면 국민은 ‘대단히 놀라울 정도로' 잘 따른다는 점입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이 두 가지 특성이 바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난 것이지요.

백신 접종률은 브렉시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투표를 했고, 51.9% 찬성으로 탈퇴를 결정했죠. 이후 EU와 복잡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작년 1월 영국은 유럽연합(EU)을 탈퇴했고, 1년간 유예기간이 끝남에 따로 올해 1월1일부로 브렉시트는 완성됐습니다.

한가지 재밌는 가정을 해볼까요. 만약 영국이 지금도 EU 회원국으로 남아 있었다면 과연 영국의 코로나 반전은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백신 구입과 접종 시작을 ‘모두 함께 줄맞춰' 하기로 했지요. 어느 나라가 혼자 백신을 더 많이 확보하고, 더 많이 접종하는 건 어렵습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백신도 맘대로 구입하고, 접종 전략도 입맛대로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이쯤되면 영국 사람들에게 브렉시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요즘 묻는다면 “잘했다”는 대답이 훨씬 더 많이 나올거라고 추측하는 건 무리가 아닐 듯 싶습니다.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컨설팅회사인 켁스트CNC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 진행 과정 관련, 영국 응답자의 76%가 만족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독일은 이 수치가 26%에 불과했지요.

이 때문인지 최근 파운드화도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작년 12월 파운드당 1440원대였던 환율이 요즘 1570원대까지 올랐습니다. 그만큼 영국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긍정적이라는 뜻이겠지요.

EU과 결별한 영국은 이제 막 돛을 올리고 망망대해 항해를 나선 배와 같습니다. 영국은 나름 자신만만한 모습입니다만, 누구도 앞일을 장담할 수는 없을겁니다. 영국이 어떻게 제국을 건설했고, 어떻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나가고 있는지, 또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없는지 영국의 이야기 속으로 계속 들어가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