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 미아'.

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클래식과 영화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해드리는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이 사랑방에서 취재 뒷이야기와 비장의 걸작 리스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늘은 ‘비대면' 설날 연휴를 앞두고 혼자 봐도 함께 봐도 좋은 가족에 관한 영화들의 리스트를 이태훈 기자가 보내드립니다.


[시네마 클래식] 가족, 만나면 ‘웬수’같고 못 보니 외로워라 -<가족>

늘 거기 있는 줄만 알았으니, 친구처럼 애인처럼 마음 써본 적도 없다. 말 하지 않아도 이해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힘들 때 안아줄 거라 믿어버렸다. 만나면 좋다가도 또 ‘웬수’같고, 못 만난다니 그립고 또 외로워지는 이름, 가족. 가족도 주소지가 다른 5명 이상은 못 모이게 하는 세상, 함께 모여 떡국 먹던 시끌벅적한 풍경은 언감생심이다. 그리운 그 마음 어떻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겠나.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를 만들었다.

너무 착해서 손발 오그라드는 비현실적 판타지나, 가족 불화를 소재로 한 스릴러나 호러는 일단 제외. 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가 만나 빚어낸 ‘작품’을 골랐다. 평론가나 관객 평가는 요즘 가장 보편적인 영화 메타 리뷰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기자 평점 ‘토마토 지수’와 관객 평점 ‘팝콘 지수’, 왓챠 관객 평균 별점을 참고하시길. 무척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지극히 사적이며 사소한 영화들의 플레이리스트, ‘가족’ 편.


“어쩔 수 없었어, 누구의 탓도 아니야”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2015)

평론가 ‘토마토’ 지수 [94%] vs. 관객 ‘팝콘’ 지수 [83%] / 왓챠 평균 별점 ★3.8 (14만명)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아야세 하루카, 나가사와 마사미, 히로세 스즈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2015)

대책없이 아름답고 동화처럼 따뜻한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대표 명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5년 칸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아빠는 안타까운 처지의 여자만 보면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 가정을 깨고 나가서 새 살림을 차렸다. 엄마까지 ‘내 삶을 살겠다’며 세 딸을 두고 집을 나간 뒤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한 큰 딸(아야세 하루카)은 꿋꿋하고 마음 넓은 여자로 자랐지만, 병든 아내를 버리지 못하는 동료와 비밀 연애 중이다. 어린 남자에게 돈 빌려주며 사귀다 헤어지기 일쑤인 둘째, 좀 산만하지만 큰 욕심없이 행복한 셋째…. 세 자매는 갑작스런 아빠의 부고를 받고 난생 처음 듣는 시골 마을로 상을 치르러 간다. 그곳에서 배다른 자매이자,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잃고 천애고아가 된 막냇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난다. 병든 아빠의 말년 병간호를 도맡았던 말수 적고 속 깊은 소녀. “우리 집으로 올래? 언니 셋 다 돈 버니까 너 하나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 가족다운 가족을 이뤄본 적이 없던 네 자매가 진짜 가족으로 뭉치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아련하다. 세상 기특하고 어여쁜 네 자매, 넓은 마당과 목조 주택 같은 일본 시골 마을의 목가적 풍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겉으론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 많은 가족이 무언가 결핍을 겪기 마련. 그럼에도 서로 의지하고 버티며 이 신산한 삶을 살아낸다. 막내 스즈는 가장 어리지만 큰 딸의 성격을 쏙 빼 닮았다. 견디고 이겨내야 할 일을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인있는 남자를 사랑하다니.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언니들에게 미안해하는 막내를 큰 딸이 위로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누구의 탓도 아니야.”

그래,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었던 거다. 이번 설에는 서로를 탓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가족이길.


최선을 다한 당신을 위한 댄스 파티

■맘마 미아(Mamma Mia!·2008)

감독 : 필리다 로이드

주연 : 메릴 스트립(도나), 피어스 브로스넌(샘), 콜린 퍼스(해리), 스텔란 스카스가드(빌), 아만다 사이프리드(소피)

[55%] vs. [66%] / ★3.8 (61만명)

맘마 미아(Mamma Mia!·2008)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을 위한 후회없는 선택. 흥겨운 노래와 춤, 살짝 가미한 막장 드라마 분위기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엄마가 운영하는 그리스 작은 섬의 모텔에서 행복한 결혼식을 꿈꾸는 소피. 식장에는 아빠 팔짱을 끼고 입장하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에 대해 도통 얘길 하지 않았다. 먼지 풀풀 나는 다락방에서 발견한 엄마의 옛 일기장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소피는 아빠일지도 모르는 세 남자를 한꺼번에 결혼식에 초대하고, 좌충우돌 대소동이 시작된다. 함께 결혼행진곡에 맞춰 행진할 진짜 아빠를 찾을 수 있을까.

도입부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스웨덴 혼성 보컬 그룹 ‘아바’의 노래들이 가득하다. 신나는 디스코 리듬의 댄스곡들과 뮤지컬 무대처럼 펼쳐지는 배우들의 합창과 군무는 이 영화의 독보적 매력 포인트. ‘도나’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샘’을 향해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부르는 장면은 노래 가사와 극의 줄거리가 아교처럼 녹아들며 접착되는 최고의 장면이다.

머리에 꽃을 꽂고 함께 춤추면 곧 세계평화가 올 걸로 믿었던 낭만의 시대도 있었다. 이 영화는 불가능한 꿈을 꾸던 젊은 시절을 저 뒤 어딘가에 남겨두고, 세상의 일부가 돼 끝내 살아남은 어른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자, 이제 노래하고 춤 출 시간이다.


“남들이 뭐라든, 너 좋아하는 일을 해”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2008)

감독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주연 : 스티브 카렐(프랭크), 그렉 키니어(리처드), 폴 다노(드웨인), 아비게일 브레스린(올리브)

[91%] vs. [91%] /★3.9 (12만명)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2008)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토마토 지수와 관객의 팝콘 지수 모두 91%를 기록 중이다. 평단과 관객이 동시에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영화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통통하고 귀여운 7살 소녀 올리브의 꿈은 미인대회 수상. 그런데 이 집안, 발랄하고 거침없는 올리브를 제외하면 ‘정상인’이 한 명도 없다. 성공 법칙을 강의하는 올리브의 아빠는 사실 파산 직전이고, 그 아빠를 경멸하는 엄마는 식사로 닭날개 튀김만 내놓는다.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는 15살 오빠, 양로원에서 못된 짓을 벌이다 쫓겨난 색골 외할아버지까지 모여 사는 집에, 프루스트 학자였지만 실연으로 마음의 병을 얻어 습관적 자살을 시도하는 외삼촌 프랭크가 들어온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것 같은 이 가족, 올리브가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어린이 미인 대회 ‘리틀 미스 선샤인’에 출전하게 되면서 고물 미니버스에 함께 타고 뜻밖의 여행을 떠난다.

‘콩가루 집안’인 줄만 알았는데, 모두가 오직 올리브를 위해 힘을 합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간다. 시동이 안 걸리는 버스를 밀어서 뛰어 오르고, 헤어진 옛 애인을 주유소에서 만나 허세를 부리는 장면들은 폭소 포인트. 1박 2일간의 대소동 뒤에, 마치 이 세상의 축소판처럼 상품화되고 규격화된 어린이 미인대회장에서 이들은 마침내 한 가족으로 똘똘 뭉쳐 맞서 싸운다. “삼촌 그거 알아요? 빌어먹을 미인대회. 인생 자체가 저 망할 미인대회의 연속인 거잖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직장. 빌어먹을.” 훌쩍 커버린 조카를 삼촌이 위로하며 말한다. “공군사관학교 안 가도 돼. 날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남들이 뭐라든, 너 좋아하는 걸 하면 돼.”

풍자와 과장이 섞인 블랙 코미디 설정에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우화처럼 녹여내는 각본이 놀랍다. 오스카 각본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조연상 수상자는 할아버지역 앨런 아킨. 원제는 ‘리틀 미스 선샤인’인데 왜 한국 제목은 ‘미스 리틀 선샤인’인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도록 놔줘야 할 순간이 왔다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1988)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리버 피닉스(아들 대니), 저드 허시(아버지 아서)

[85%] vs. [68%] /★4.1 (1만명)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1988)

젊고 아름다웠던 리버 피닉스가 여기 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영화도 끝내준다. ’12명의 분노한 사람들'(1957)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화려하게 데뷔해, 은행털이범이 된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1975)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시드니 루멧 감독작.

쫓기듯 살아간다고들 말하지만, 이 가족은 정말로 쫓긴다. 1960년대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 투신한 급진파였던 부부는 청소부 한 사람이 퇴근하지 않은 걸 모르고 한 빌딩을 폭파해버렸고, 이후 줄곧 수사기관에 쫓기며 살아간다. 한 마을에 자리 잡았다가 추적이 느껴지면 모든 걸 버리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삶. 하지만 엄마의 재능을 이어받은 아들 대니는 종이 건반 위에서 연습한 것 만으로 피아노에 놀라운 재능을 드러내고, 그 재능을 알아본 음악교사의 도움으로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가족과 이별해야만 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가족의 시스템을 지키려 하고, 어머니는 자신이 잃어버린 삶을 아들에게는 되돌려주고 싶어한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정해지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지켜야 할 때와 헤어져야 할 때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아들은 언제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걸어나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개짓을 시작하는가.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리버 피닉스는 열여덟살이었다. 23세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요절하기 불과 5년 전. 아직 스물에도 이르지 못한 이 소년은 존재 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드라마의 흐름을 제 뜻대로 조종한다. 산들바람에 금발 머리카락이 춤출 때, 푸른 눈동자에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을 가득 담을 때, 이 배우는 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전설이 되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또 증명한다. 이 영화로 리버는 역대 6번째 최연소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가 됐다.


번외편

로얄 테넌바움. 단지 세상의 끝. 수상한 그녀.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열 테넌바움’(The Royal Tenenbaums·2001)은 취향 많이 타지만, 한 번 꽂히면 헤어나오기 힘든 마성의 영화. 10대 초반에 이미 천재였던 테넌바움 집안의 아이들이 어른이 된 20년 뒤, 무책임했던 아버지 로열이 “시한부 인생”이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래 곪았던 가족 관계의 상처를 찢고 새 살이 돋기 시작한다.

‘로열 테넌바움’

‘칸의 황태자’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2016)은 형용하기 어려운 에너지로 가득하다. 이 영화 안에는 가족에 관한 드라마에 관객이 흔히 기대하는 정서는 털끝 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무대처럼 좁은 집 안에서 오가는 대화와 플래시백을 통해, 회복 불능이 된 가족 관계를 피투성이 격투기 같은 긴장감으로 그려내는 독특한 영화다. 이런 가족도 있구나 생각하면, 내 가족은 더 이뻐 보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거의 명절마다 찾아오는 TV 단골이 됐지만, 가족이 함께 보기엔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2014)만한 영화도 없다. 성질 괴퍅한 할매가 마법처럼 스무살 꽃처녀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세월 그거, 못 지고 갈 만큼 무거운 것도, 얕잡아 볼 만큼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과거였느냐 혹은 지금이냐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한 때는 꽃같던 시절이 있었음을 받아들이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도 조금은 수월해질지 모른다.

사적이며 사소한 리스트니까, 부디 널리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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