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화가'로 세계 화단에 이름을 떨쳤던 현대미술사의 거목 김창열(92) 화백이 5일 별세했다.
김 화백은 영롱한 물방울을 그린 작품을 50년 가까이 선보이며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16세 때 월남해 이쾌대(1913~1965)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김 화백은 전쟁 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화가의 길을 걸었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앵포르멜(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운동을 이끌었으며 세계무대로 눈을 돌려 1961년 파리 비엔날레 등에 출품했다.
대학 은사였던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했다.
김 화백을 대표하는 ‘물방울 회화’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물방울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50년 가까이 이어왔다.
물방울이 글자와 처음 만난 건 1975년.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재료 연구를 하던 김 화백은 다락방에서 묵은 신문 더미를 발견하고 ‘르 피가로’ 1면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렸다.
김 화백은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과 함께 동양의 철학과 정신이 담긴 천자문을 그려왔다. 그는 생전에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김 화백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나 경매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2016년 3월 K옥션 홍콩경매에서 ‘물방울’(195×123cm, 1973년작)은 5억1282만원에 낙찰됐다.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엔 제주시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