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지막 날의 해가 저무는 노을을 뒤로 하고 AC096 밴쿠버행 비행기를 탔다. 마침 온도가 훅 낮아지며 서늘하고도 짜릿한 공기가 폐를 찌르던 터였다. 한국을 떠나며 이 글을 쓰는 지금, 태양이 발갛게 저녁 하늘을 수놓는다. 저녁 하늘은 마치 픽셀이 하나하나 보일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코로나로 물든 2020년에 대해 너도나도 감상문을 올리는 ‘인별그램’의 글과 사진을 훑어보니 그 어느 때보다 감상적인 포스트들이 많다. 그 무엇도 쉽지 않았고 정상적이지 않았기에 모두가 지쳤으며 불만스럽고 좌절스러웠다.
많은 연주가 취소되었다. 그중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음악적 기회가 성사 직전 무산된 경우도 있었고, 거대한 스케일의 행사도 있었다. 기다려왔던 연주가 취소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며 나를 조금은 무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전제가 있어서인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한 좌절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나의 ‘진실된 사랑’은 음악이지 연주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세상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음악이 멈춘 적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숙성할 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연주회를 앞두고 하는 연습과 달리, 나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연습은 참 즐거웠다.
어떤 의미에서 코로나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요리에 재미를 들였으며, 책을 평소보다 많이 읽었다. 식물을 기르고, 산책을 했다. 소셜 미디어와 넷플릭스 시청에 지친 이들이 야외 공연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음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음악을 통한 대화를 사랑하던 내가 다른 연주자와 호흡을 맞춰 실내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떤 타인과 소리를 섞는다는 것, 오롯이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찌릿한 감각이 참 그립다. 언제쯤 안심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호흡을 느끼고 움직임을 감지하며 함께 음악을 나눌 수 있을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가 답답하다. 백신을 맞은 뒤에는 매일매일 현악 4중주만 연주하고 싶다.
바야흐로 2021년이다. 올해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오래전 인간이 그저 임의로 정해놓은 숫자일 뿐인데도 ‘연도’가 바뀌면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듯 흥분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치킨을 시키고 케이크를 자르고, 연예 대상을 보며, 보신각 타종 행사를 기다리다가 가족에게 덕담을 건네고 어색한 포옹을 한다. 친한 주변의 인물들에게 메신저로 새해 인사를 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새해가 바뀌는 순간만큼은 견딜 만하다. 희망에 차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몇 주가 지나면 어색하던 관계는 다시 어색해질 것이고 짜증을 내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짜증을 내겠지만 해가 바뀌는 지금 이 순간만큼 우리는 희망의 꿈을 꾼다. 무엇인가 나아지기를. 무엇인가 편안해지기를.
물론 나 역시 ‘희망’이 때로는 겁난다. ‘새로운 것’에 중독되어 있는 이 시대가 내 본업인 ‘고전음악’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만 같아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전음악이 사라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텐데. 그때쯤이면 그냥 이대로 숨만 쉬면서 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걸까. 과연 우리의 세상은, 미래는 나아질까.
2021년에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애쓰려고 한다. 내게 ‘희망’은 감정보다 책임에 가깝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내면에서 끄집어내야 하는 어떤 종류의 힘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형상이자 하루하루의 언행(言行)이다. 희망적인 사람이란, 희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가 되려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비하고 기능하는 이상의 존재가 되기 위해, 아름다움 자체에 투자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조금 더 힘을 내는 것이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 무조건 낙관적이 될 수는 없다. 나라는 개인을 조금씩 바꾸고 가꾸고자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의 희망이 된다.
끙끙 앓으며 위기가 지나가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더욱 단단해지는 나를 보고 싶다. ‘나는 지금 멋있게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고 크게 소리치는 우리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싶다. 내면에서 자라나는 이 강인함이, 그나마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서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지는 이 세상을 좀 견딜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제발 버티자. 그냥 버티자.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평범한 것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어제가 실망스럽고 오늘이 절망스러웠어도. 모든 걸 포기할 것처럼 징징거려도, 아름다움을 위해 버틸 수만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희망을 꿈꿀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누군가 마음이 나약해진 날,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껴지는 날, 강력한 위안이 필요한 날엔 ‘희망’이 되어서 음악을 나누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버틸 수 있는 힘을 내뿜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