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세계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같은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단언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도 세상은 그 이전으로 결코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의 미래는 무엇이 달라질까. 국내외 석학들이 짚어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7가지 키워드를 본지 인터뷰와 해외 언론 기고 등을 통해서 정리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읽는 7가지 키워드

1. 가족의 재발견 - 더욱 커진 정서적 안전망

국경 봉쇄, 이동 제한, 공공장소 폐쇄 등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서 인간의 오랜 관습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고독과 고립감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고, 오랜 서구식 인사법인 악수의 종말을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마리오 루이스 스몰 하버드대 교수(사회학)는 사이언스 뉴스 기고에서 “팬데믹 이후에도 고독과 고립은 여전히 지속할 것이기에 고독과 맞서 싸우고 고립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전략을 익혀야 한다”면서 “이런 전략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어떻게 회복할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서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는 고백도 많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긍정적 측면으로 아내와 나는 지금 집에서 모든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의 굉장한 혜택”이라고 털어놓았다. 미래학자 솅커는 “향후 개인은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에 의지하기보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방식으로 계획을 짜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2. 빅브러더 - 디지털 전체주의가 지배

“앞으로는 디지털 전체주의가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메커니즘에 의해 어느 때보다 더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21세기에도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슬로베니아 출신 좌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의 말처럼 ‘디지털 파시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는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정부의 감시 체제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셀라 체르네바 유럽외교협회 부회장도 “거대한 위기는 거대한 권력을 만들어낸다”면서 “강한 신념으로 무장한 막강한 지도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유래한 ‘빅 브러더’는 정보 독점을 통해 사회 전체를 감시하는 독재 권력을 의미한다. 미칼리스 니키포로스 레비연구소 연구원은 “위기 대응 능력을 앞세운 권위주의, 나아가 전체주의 국가가 출몰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3. 양극화 - 연령·성별 빈부격차 심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미 경제 위기로 사회적 양극화가 지구촌의 화두로 떠올랐다. 석학들은 코로나 사태로 고령·여성·흑인·외국인 근로자 같은 약자들이 우선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연령·성별·계층에 따른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 위기가 일어나면 불평등이 증가하는 건 알려진 사실”이라며 “코로나가 더 어려운 점은 대면 접촉이 필요한 직장들이 대부분 저임금 직장인데, 그 분야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니키포로스 연구원도 “이번 위기의 가장 큰 희생자는 코로나에 쉽게 노출되고 소득이 끊긴 취약 계층”이라고 말했다. 미국 페미니즘(여성주의)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본지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가 “남성들 틈에서 꿋꿋이 버티며 일해 온 여성의 능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 탈세계화 - 생산방식 자국 중심 재편

코로나 사태는 냉전 종식 이후 가속 페달을 밟던 세계화에 급제동을 걸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걸었던 미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을 통해서 이미 경험한 탈세계화 경향이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에릭 존스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화한 생산 방식에 대한 취약성을 모두 인식하게 됐다”면서 “밸류 체인(가치 사슬)이 자국·지역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자국 우선주의’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을 부추길 공산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불가피하게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정치도 증가할 것”이라고 점쳤다. 다니엘 라칼레 트레시스헤스티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위기는 포퓰리즘과 전체주의 같은 극단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5. 디지털 격차 - 저소득층 정보 소외 우려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 비대면(非對面) 교육의 중요성이 전면에 부각됐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온라인 교육의 확산이 자칫 교육의 질적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직접 강의하고 토론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직접 보고 환자를 만지지 않고는 치료법을 배울 수 없는 의대생 등 일부 학생에게는 더 그렇다”고 말했다. 디지털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중산층 자녀들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의 정보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장하준 교수는 “온라인 교육에 필요한 컴퓨터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이번에 뒤처진 아이들은 안 그래도 힘든데 더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학 구조 조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미래학자 솅커는 “온라인 교육은 비슷한 과목을 가르치려 대학마다 교수를 중복 채용하는 비효율을 없앨 것”이라며 “이 추세가 확산하면 규모가 작은 대학은 존폐 위기에 몰리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6. 재택 - 가정의 영역 확장 지속

역설적으로 코로나는 먹고 잠자는 곳인 줄만 알았던 집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외 석학들은 업무와 생활의 터전, 운동과 취미의 공간이라는 가정의 영역 확장이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재택근무 관련 기술이나 재택근무를 관리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키워드로 주저 없이 ‘재택’을 꼽은 것이다.

집의 확장은 사무실의 축소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는 “어떤 일을 할지 제대로 정하기만 한다면 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됐다”며 “통근 전철을 매일 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세계 주요국에서는 재택근무가 ‘새로운 기준(뉴 노멀)’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데버라 엘름 아시아무역센터 이사는 “원격 근무의 확산은 사무실 건물의 공동화를 불러와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7. 친환경 - 車 멈추니 온실가스 줄어

코로나 타격으로 항공 운항이 멈추고 거리에서는 자동차 통행량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파리와 로스앤젤레스 등 대기 오염으로 악명이 높았던 도시들의 공기가 맑아지는 ‘코로나의 역설’이 일어났다.

석학들은 코로나가 환경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화석 연료 사용과 지구 온난화 등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다. 앤드루 머치 유럽환경운송연합 연구원은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자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시적이지만 크게 감소했다. 코로나로 줄어든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지드 라판 유럽대연구소 교수는 “말로만 일하는 정부가 아니라 (과학적) 전문성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