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동생 잘 데리고 놀아라. 이슬이는 오빠들 손 꼭 붙잡고 댕기고. 알았재?”

큰오빠와 작은오빠 손을 양쪽에 꼭 잡고 집을 나서는 이슬이의 등 뒤로 할머니가 말했어요.

꺾어지는 골목에서 이슬이 몰래 오빠들끼리 알 수 없는 눈짓을 교환했어요. 오빠들은 이슬이의 양손을 동시에 확 놓아버렸죠. 그리고 이슬이가 ‘오빠’ 하고 부를 새도 없이 골목 끝으로 달음박질친 거예요.

“오빠!”

이슬이가 간절하게 소리쳤어요. 저만치 멀어진 큰오빠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어요.

“이슬아. 집에 가 있어. 오빠들 공 차고 금방 갈게. 온 대로 그대로 돌아가면 돼. 알았지.”

옆에 있던 작은오빠는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고요.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된 이슬이도 따라 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빠들은 이미 골목 끝에서 사라져 보이지도 않네요. 골목 끝에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어요. 이슬이는 어디로 갈지 몰라 제자리에서 발만 굴렀답니다. 조그만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어요. 뱃속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눈물로 흘러내렸어요. 이슬이는 입으로 흘러들어온 눈물을 맛보았어요. 무지 짰죠. 오빠들이 사라진 골목에 대고 이슬이가 크게 소리쳤어요.

“씨. 할머니한테 다 이를 거야!”

골목에는 빈 의자와 화분, 낡은 옷장, 쓰레기 같은 것만 놓여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너무 조용했죠. 해 그림자가 생겨 골목은 조금 어두웠어요. 담벼락마다 그린 지 오래되어 보이는 벽화가 골목을 따라 죽 이어져 있었지요.

이슬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이런 골목이 없었어요. 집을 나가면 몇 걸음 걷지 않아 넓은 길과 놀이터, 운동 시설이 있는 공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할머니 집은 미로 같은 골목길 중간에 있는 오래된 기와집이었죠. 골목은 직선으로 반듯하고 탁 트인 길에 비하면 너무 좁았고 복잡해 보였어요. 게다가 서로 비슷해서 길을 찾기도 힘들었지요.

식당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 아빠는 방학이면 오빠들을 할머니 집에 보냈어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이슬이도 첫 여름방학을 할머니 집에서 보내게 되었고요. 이슬이는 오빠들과 그림을 그리고, 나뭇잎이나 꽃잎, 돌멩이, 나뭇가지를 주워 소꿉놀이도 하고 싶었어요. 오빠들과 함께 놀 생각에 한껏 들떠있던 이슬이였답니다.

이슬이는 담벼락에 기대 쪼그려 앉았어요. 손끝에 닿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땅바닥에 대고 선을 그렸어요. 그 위에 대고 선을 여러 번 겹쳐 그렸고요. 이번엔 선을 둘러싼 동그라미를 그렸지요. 동그라미 윗부분에 끝이 아래로 기울어진 작은 선을 양쪽에 그렸죠. 바닥에 시무룩한 표정의 이모티콘처럼 생긴 얼굴이 생겨났어요. 이슬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심심해.”

“나도 심심해.”

갑자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온 거예요. 깜짝 놀란 이슬이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골목길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슬이는 잘못 들었나 싶어 오른손 약지로 귀를 후벼 팠어요. 손끝에 귀지가 조금 묻어 나왔죠. 귀지를 왼손바닥에 떨어놓은 다음 입 가까이 대고 ‘후’ 하고 불었어요. 귀지가 나비처럼 나풀거리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지요.

“심심하다니까.”

말소리가 또 들려온 거예요.

“누구야?”

이슬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큰오빠에게 조금 배운 태권도 자세도 취했지요.

“여기. 너 뒤에.”

이슬이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담벼락만 보였어요.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속, 노란 눈동자의 강아지가 이슬이를 올려다보고 있었죠. 이슬이가 물었어요.

“혹시 지금 네가 말한 거야?”

“응. 나야. 나.”

강아지가 몸을 부르르 흔들며 대답했어요.

“근데 오빠란 애들은 원래 그런 거니? 난 형제가 없어서 잘 모르거든.”

“음. 아까 다 봤구나. 오빠들은 나랑 잘 안 놀아줘. 지금도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공터에 갔을걸. 나도 거기 정말 가고 싶었는데…….”

“공터?”

“응. 골목 끝 산 앞에 있는 건데, 공 차기 아주 좋은 곳이래. 오빠들 아지트라고 그랬어.”

“아지트. 그게 뭔데?”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엄청 멋진 말 같아.”

그때였어요. 어디서 공 하나가 날아와 담벼락을 ‘퍽’ 하고 들이받은 거예요. 이슬이는 자기도 모르게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지요. 그런데 공이 그대로 벽화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죠. 그 바람에 이슬이도 따라 들어갔답니다. 공은 작은 들꽃들이 피어난 풀밭 벽화 속에서 데굴데굴 빠르게 굴러갔어요. 강아지가 신이 나 공을 쫓아 달렸어요. 이슬이도 그에 질세라 힘껏 달렸지요. 저 멀리 소나무가 그려진 벽화에 있던 까치 두 마리가 날아와 부리로 공을 쪼아대려고 했어요.

“안 돼!”

강아지와 이슬이 둘 다 동시에 외쳤어요. 아슬아슬하게 이슬이가 공을 발로 ‘뻥’ 하고 차올렸어요. 공은 포물선을 크게 그리며 날아올랐지요.

“우와. 너 공 잘 찬다.”

강아지가 공이 날아가는 대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어요.

“신기해. 공이 내 발에 딱 붙는 느낌이었어.”

이슬이는 자기가 이렇게 공 차기를 잘하는지 몰랐어요. 공 차기는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오빠들이나 하는 놀이라고 생각했죠.

날아가던 공은 벽화에서 튀어나와 골목 맞은편 숲속 풍경이 펼쳐진 벽화 속으로 들어갔어요. 이슬이와 강아지 그리고 까치들도 공을 따라갔고요. 공은 이슬이 허리만큼 길게 자란 숲속 덤불 쪽으로 굴러갔어요. 여기저기 조그마한 산딸기도 열려 있었죠. 그런데 덤불 속으로 굴러간 공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이슬이는 공을 찾아 덤불 속을 뒤적거렸어요. 갑자기 이슬이가 ‘꺅’ 하고 비명을 질렀죠. 강아지가 얼른 이슬이 곁으로 다가왔어요. 이슬이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어요. 이슬이 앞으로 분홍 뱀이 스르르 지나갔답니다. 분홍 뱀이 구시렁거렸어요.

“어휴. 뭐야. 자다가 깜짝 놀랐네.”

“뱀이었구나. 괜찮아. 그냥 뱀이야.”

강아지가 말했어요.

“하지만 난 뱀이 제일 무서워. 뱀이 사라지면 말해줄래?”

이슬이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말했어요.

모두 이슬이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 주었지요. 이윽고 분홍 뱀의 꼬리가 덤불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어요. 강아지가 말했어요.

“이제 갔어. 눈 떠도 돼.”

“정말?”

이슬이는 한쪽 눈을 살짝 치켜떴어요. 뱀이 사라진 자리에 공이 보였지요. 강아지가 꼬리를 크게 흔들며 말했어요.

“아까처럼 공 한 번 더 차봐.”

까치들도 말했어요.

“그래. 그래.”

이슬이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다음, 오른발을 뒤로 멀리 보냈다 공을 향해 힘껏 날렸어요. 그런데 그만 공 대신 허공을 차고 말았죠. 이슬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어요.

“아야!”

“괜찮아?”

강아지가 이슬이 얼굴을 혀로 핥으며 말했어요.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슬이를 쳐다보았지요.

“응. 괜찮아.”

이슬이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벌떡 일어났어요.

“나 다시 한 번 해볼게.”

이슬이는 공에 오른발 끝을 대고서 좀 전에 공이 발에 딱 붙었던 느낌을 기억해봤어요. 오른발을 바닥에서 뒤로 떼었다가 가볍게 공에 댄 다음 그대로 오른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올렸죠. 공은 아까보다 더 큰 반원을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아갔답니다.

“우와. 엄청나.”

모두 입을 짝 벌려 환호성을 질렀어요. 이슬이는 공을 따라 달려갔지요.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어요. 공은 하늘을 날아 벽화에서 또, 튀어나왔어요. 이번에는 장미 넝쿨이 터널을 이룬 골목길이었죠.

이슬이를 따라 모두 벽화 밖 골목길에 서 있네요. 그런데 골목길이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이슬이가 말했어요.

“너무 어두워.”

이슬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아지의 노란 눈동자에서 환한 빛이 비쳐 나왔어요. 손전등처럼 어두운 골목길을 여기저기 비추었지요. 저만치 골목 끝에 하얀 공이 보였어요. 그런데 누군가 볼멘소리를 내는 거예요.

“앗! 눈부셔.”

골목 한쪽 벽에 그려진 검은 고양이였어요. 검은 고양이는 온몸의 털을 세운 채 귀를 뒤로 바싹 젖혔어요. 눈이 부신 듯 한쪽 눈을 찡그렸지요. 강아지가 얼른 고개를 돌려 바닥을 비추며 말했어요.

“이런. 미안해.”

“이젠 괜찮아. 그런데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검은 고양이가 앞발을 앞으로 모아 곧게 뻗으며 말했어요. 이슬이가 대답했지요.

“우리 공놀이하고 있어.”

“재밌겠다. 난 혼자라 심심한데.”

“그럼 너도 같이할래?”

“응. 좋아.”

검은 고양이는 벽화에서 폴짝 뛰어 골목으로 나왔어요.

강아지가 검은 고양이에게 공을 던져주자 번쩍 뛰어올라 앞발로 공을 받았어요. 까치들은 머리로 공을 받아 쳤고요. 모두 공을 서로 주고받으며 뛰기 시작했어요. 골목은 점점 가파른 언덕길로 이어져 이슬이 이마와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요. 골목은 생각보다 길었죠.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달렸을 때쯤 골목길이 점점 밝아졌어요. 골목 바깥으로 파란 하늘과 산봉우리도 보였죠. 이슬이가 양손을 무릎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말했어요.

“여기가 골목 끝인가 봐.”

“그러면 저기 아지트가 있는 거야?”

강아지가 골목 끝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슬이는 공에 발을 얹은 채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어요. 가슴이 벅차올라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지요. 강아지가 혀를 길게 내밀고 헉헉거렸어요.

“우린 이제 더는 갈 수 없어. 공터까진 너 혼자 갈 수 있지?”

이슬이가 씩씩하게 대답했어요.

“응.”

공터는 산 아래 무성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아늑해 보였어요. 산봉우리 위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양털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요. 양들이 풀을 뜯어 먹기 위해 산 위에 내려온 것만 같았어요. 오빠들 아지트는 이슬이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답니다.

이슬이는 공을 안고 공터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슬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지요. 가다 멈춘 이슬이가 뒤를 돌아보았어요. 벽화 속 동물들 모두 골목 끝에 나와 이슬이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죠. 이슬이도 따라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큰 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다음에 또 놀자!”

그리고 그대로 등을 돌려 공터로 달음박질쳤죠. 이슬이의 짧은 단발머리와 하얀 원피스가 바람에 휘날렸어요. 저만치 나무들 사이로 오빠들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이슬이가 크게 소리쳤답니다.

“오빠!”

오빠들이 깜짝 놀라며 이슬이 쪽으로 뛰어왔어요. 큰오빠가 말했어요.

“이슬아! 너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나, 이 공 따라왔는데.”

“어, 이거 우리가 차던 공이잖아. 갑자기 사라져버려 놀지도 못하고 여태 찾고 있었는데.”

“그래? 오빠. 나 이제 공 잘 찬다. 한번 볼래?”

이슬이가 턱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말했어요. 이슬이는 공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오른발을 가볍게 떼었다 ‘뻥’ 하고 차올렸어요. 공은 파란 하늘을 가르며 공터 끝으로 날아갔지요. 오빠들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다물지도 못했어요. 서로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죠. 이슬이가 먼저 달려 나가며 말했어요.

“공 먼저 잡는 사람이 오늘 일등이다!”

오빠들도 이슬이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어요.

아주 더운 여름 오후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