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심사를 해왔으니, 너무 오래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매달 스무 권이 넘는 후보작을 읽기가 너무 힘들다, 후배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싶다.”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아온 김화영(78)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연말에 퇴임한다. 김 교수는 지난 2000년 동인문학상이 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삼던 관행에서 벗어나 단행본 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키로 개편되면서 새로 구성된 종신심사위원회에 참여해왔다. 역대 심사위원 중 소설가 이청준·박완서는 작고했고, 평론가 유종호, 소설가 김주영·이문열·신경숙은 일신상의 이유로 중도 사퇴했다. 현재 심사위원회는 초기부터 참여한 평론가 정과리를 비롯해 그 사이에 합류한 평론가 김인환, 역대 수상 작가 오정희·구효서·이승우·김인숙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화영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매달 독회와 시상식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골방에 들어앉아 치열하게 작품을 쓰는 소설가 못지않게 평론가로서 치열하게 읽으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소설이 급류처럼 내 몸을 관통한 느낌이다. 매달 한 권의 소설을 두세 번 읽고 노트를 했다. 독회에서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대화를 나눈 과정이 즐거웠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독회가 최종심을 빼곤 비대면으로 진행된 채 심사평을 써서 담당자에게 보내다 보니, 독회의 재미도 없어져서 아쉬웠다.”

김 교수는 “리얼리즘에 익숙한 구세대의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 읽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재미는 있는데, 어휘와 서사 방식이 달라진 것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며 “나이가 들면서 소설책만 읽고 지낼 수는 없고, 다른 책도 읽을 게 쌓이니까, 이젠 ‘의무’가 아닌 독서를 즐기고 싶다”고 사퇴 이유를 덧붙였다.

김 교수는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카뮈를 비롯해 프랑스 현대 문학의 대표작을 유려한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1970년대 중반부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에 앞서 그는 지난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한 시인이기도 하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이다. 그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으로서 견지해온 ‘좋은 소설의 기준’에 대해 “두세 번 읽어야 하거나, 두세 번 읽고 싶은 소설이어야 하고, 반드시 필기 도구를 갖고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며 “뭔지 알 것 같은데 끝내 아귀가 잘 맞지 않는 퍼즐 같은 소설, 답이 아닌 질문을 남기는 소설, 미완의 글쓰기 같은 소설, 소설의 근본적 반성이 들어있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평론보다는 프랑스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싶다”며 “알베르 카뮈의 ‘반항적 인간’을 새로 번역했고, 파트릭 모디아노의 신작 소설 번역도 곧 나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