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태양, 눈부신 지중해, 뜨거운 정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사람으로 형상화시키면 아마 이 남자로 귀결될 것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46). 기하학적이면서도 유선형 디자인에, 해학과 유머를 담은 그의 작품 세계는 각종 해외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충분했다. ‘전형적’이란 관형사의 파괴. 그는 알고봐야 ‘정체’를 알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동물 조각인 줄 알았는데 흔들의자이거나 피에로 조형물 인가했더니 화병인 식이다.
‘디자인 정복자’라고 규정한 프랑스 일간 르 푸앵을 비롯해 ’21세기 가우디' ‘소재의 연금술사’ ‘지중해의 디지털 바로크주의자’ 등 그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수식어가 만들어졌다. 미국 타임지(2014)는 ‘가장 창의적인 아이콘’으로 그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와 파리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프리츠 한센 등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를 비롯해 다양한 제조사와 협업을 하며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존에 본 적이 없는 공간”이자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하는 작품이 있다. 지난 11월 경기도 남양주 현대백화점 프리미엄 아웃렛 스페이스원에 위치한 모카 가든(MOKA·Hyundai Museum of Kids’ Books and Art)이다. 1653㎡(약 500평) 규모로 지난해 9월부터 본격 진행해 1년여 만에 문을 열었다. 원숭이·라마·강아지·사람 등 7개의 커다란 조각상이 있는 ‘하이메 아욘 가든’과 놀이시설인 ‘모카 플레이’, 그림책 등을 전시하는 도서관형 미술관 ‘모카 라이브러리’ 등으로, 한 달 만에 12만여명이 다녀가며 인기 장소가 됐다.
최근 온라인으로 만난 아욘은 “상상 속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구현되고, 전부 다른 비율로 구성된 조각상들을 내 방식대로 설치할 수 있다니, 내 인생에 찾아온 멋진 기회였다”면서 “코로나 위기 속에서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는 것 역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아욘은 지난해 12월 현장을 방문해 전체적인 디자인을 구상하긴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이후엔 영상 대화 등으로 진행했다. 그가 스페인에서 미니 조각을 완성해 한국으로 보내면, 이를 바탕으로 사이즈를 확대해 대형 조각으로 제작하는 식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도착지를 모른 채 달려가는 도전에서 나옵니다. 결과를 예상하고 디자인을 시작하면 결코 창의적인 작업이 나올 수 없죠. 도전 의식이 없다면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도전으로 미쳐야 하고,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창의력의 원천은 ‘아이처럼 생각하기'. 아욘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는 법을 배워야 창의력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저는 무슨 작업을 하든, 매일 아침 일어나서 ‘0에서 시작한다’고 되뇝니다. 어렵다고요? 아이가 되어보세요.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의 열린 사고는 상상력의 보고(寶庫)니까요.”
진행 과정을 온라인으로 확인해야 했던 터에 훨씬 더 민감하게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작업 방식을 바꿔야 한 코로나 위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Re-think) 기회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는 ‘그동안 제대로 살아온 걸까’ 하는 느낌표와 물음표를 던진 사건입니다. 가족, 내 나라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죠. 소홀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모든 것이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아욘은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실험하는 나의 성향과 비슷한 한국 사회를 통해 반사된 내 모습이 보인다”면서 “유럽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연구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한국 사람 특유의 세련된 삶의 방식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연구자 성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상상력의 공간인 모카 가든이 한국인 특유의 세련된 호기심 덕분에 더 환영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