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시리우스 B 항성계를 잇는 포털이 열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포털을 여는 비용은 시리우스 성인(星人)들이 부담하며, 서울에 거주하는 시리우스인들은 이번 연결 때 모두 고향 행성으로 돌아간다고. 히치하이킹을 하려는 다른 항성계 외계인도 있는 모양이었다. 포털이 열리는 시각은 12월 24일 밤이라고 했고, 내가 소식을 들은 건 그날 오후였다.
나를 비롯해 친(親)외계인파 지구인들은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시리우스인들은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그들은 도시에 조용히 머물며, 연극 관람을 열심히 즐긴다. 개를 무척 사랑하지만 개들이 외계인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기 때문에, 반려견을 키우는 시리우스인은 없다고 들었다.
나는 연극계 지인 소개로 시리우스인을 한 사람 알고 있었다. 신문에서 미담 기사만 찾아 읽을 것 같은 노신사의 모습이다. 대학로 근처에 살면서 매일 한두 편씩 연극을 본다고 했다. 비극을 선호하며 고전은 빼먹지 않는다고. 그에게 따지고 싶었다. 설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떠나는 거예요? 연극 상연이 줄어서? 단물 다 빨아먹었다 이거예요?
저녁에 기대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그가 대뜸 만나자고 하는 바람에 내가 되레 놀랐다. 우리는 운영을 중단한 남산예술센터 앞에서 만났다. 카페에 갈 수 없으니 그냥 걸으며 얘기하자고 했다. 그는 외계 장비로 내 주변 공기를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덕분에 내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지 않았고, 마스크 주변이 축축하게 젖지도 않았다.
남산 산책로를 걸을 줄 알았으나 그는 명동 쪽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며. 제안이 무색하게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1층 유리창에 ‘임대’라고 적힌 종이가 붙은 상가도 많았다. 나는 슬쩍 운을 띄웠다.
“우주적 관점에서는 이것도 별일 아니게 보일 테죠. 특히 지구를 오래 지켜봐 온 외계인들의 눈에는….”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저희가 이 스트레스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습니다. 지구인들은 고통을 평가하는 데 서툴러요. 세상사를 시각적 내러티브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기승전결이 없거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고통을 터무니없이 낮춰 봅니다. 층간 소음 같은 거요. 어떻게들 견디는지 모르겠어요.”
시리우스인은 우리에게 고통을 묘사하는 단어 자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은 공감 능력이 큰 편이기에 그런 언어가 발달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고, 고로 묘사하기 어려운 낯선 고통은 지구에서 과소평가된다는 설명이었다. 안타깝다는 말투였다. 나는 그때서야 물었다.
“왜 이런 식으로 떠나죠? 당신들한테는 발달한 과학기술이 있잖아요. 코로나 치료제를 몰래 지구 대기에 뿌리면 안 되나요? 그리고 포털을 열 돈으로 좋아하는 연극계를 후원하면 되잖아요.”
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하필 명동성당 앞이었고, 그래서 기분이 좀 묘했다. 기독교인들도 같은 질문을 2000년간 던지지 않았던가. 복잡하게 굴지 말고 그냥 우리를 구해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인간을 사랑하신다면서요.
“저희는 실패한 문명이에요. 저희는 무엇이 최선인지 모릅니다. 인류에게는 저희보다 기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놀란 나를 데리고 그는 명동성당 경내로 들어갔다. 과학기술 발달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과학기술 때문에 자멸한 문명도 많다고 그는 설명했다. 감당 못 할 무기를 개발해서 전쟁에서 쓰기도 하고, 생명의 기반이 되는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고….
“당신들은 그 단계는 넘어섰잖아요?”
“충분히 지혜롭지는 못했지요. 저희는 고통과 죽음을 없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완전히 통제되는 사회를 만들었고, 불행에 시달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본성을 조작했습니다.”
이제 시리우스 B 항성계에는 어떤 드라마도 없고, 자신들에게서는 아무것도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곳에서는 삶이 죽음만큼이나 평화롭고 안정적이라고. 생생한 것, 뭉클한 것, 거룩한 것들이 함께 사라졌다고. 그나마 지구인들의 연극을 볼 때 자신들이 잃어버린 비극의 힘을 흐릿하게 겨우 느낄 수 있다고.
아아, 그래서 지구인들이 부러우세요? 슬퍼하고 괴로워할 수 있어서? 아픈 만큼 더 성장할 거다, 그런 얘기예요? 나는 따졌고 그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논쟁 아닌 논쟁을 하는 사이 주변에 빛의 입자들이 생겨나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포털이 열리는 중이었다. 사라지기 직전 그가 말했다. “질병은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중요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실 거예요.” 아니, 난 모르는데요. 그저 치료제를 원한다고요.
명동성당을 빠져나오며 ‘지구 거주 외계인의 친구들’ 단톡방에 내가 맡은 시리우스인은 끝까지 도움이 안 됐다고 보고했다. 그나마 알파 센타우리 녀석들보다는 친절했다고. 망할 외계인 놈들. 고난의 의미? 우린 우리 식으로 최선을 다하련다. 공기가 차가웠다. 흰 성모상 아래 꽃다발이 놓여 있었고, 상설 고해소의 문은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