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주기로 특정 시기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연초 그 해를 상징하는 띠 동물, 경칩 무렵에는 개구리가, 무더위가 절정을 치솟을 때는 얼음덩이를 품고 헐떡이고 있는 북극곰이 뉴스에 등장하지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11월 넷째 주에 국제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새, 칠면조입니다. 미국 추수감사절 식탁에 칠면조 통구이가 오르기 전,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이 전미칠면조연맹에서 선물한 두 마리를 도축하지 않고 살리겠다며 “네 죄를 사하겠노라”고 발표하는, 이른바 사면식의 주인공들이죠.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전 마지막으로 백악관 칠면조 사면식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사면대상 칠면조에게 "너를 사면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 사면식을 볼 때마다 인간의 종 우월주의에 대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태어난게 죄란 말입니까. 축생(畜生)이 죄라니, 기독교 일파인 청교도 신앙과 동양의 윤회 사상이 묘한 접점을 이룹니다. 그 접점에 있는 기이한 생김새의 새, 칠면조(七面鳥)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일곱빛깔 얼굴을 한 새라는 이름에 걸맞게 7문 7답으로 풀어보겠습니다.

1.칠면조와 나라 터키는 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알려진대로 칠면조는 영어로 터키(turkey)라고 부릅니다. 한국과 형제국으로 불리는 그 나라, 터키(Turkey)와 철자가 같습니다. 깊은 연관이 있으니 감히 새 이름에 나라 이름을 갖다썼겠지요. 영어 이름 칠면조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얘기가 있는데, ‘뿔닭기원설'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뿔닭이 칠면조와 무슨 관계일까요. 월트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온킹의 첫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사바나 동물들이 갓 태어난 새끼사자 심바를 알현하러 가는 길, 지축을 울리는 코끼리들의 발걸음 앞에 꼬꼬댁거리며 뛰어가다 밟혀죽을뻔했던 그 새입니다.

칠면조가 미국에서 '터키'로 불리게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뿔닭. /메릴랜드 동물원 홈페이지

중세에 뿔닭은 유럽에서 고기용 가금류와 귀족들의 관상조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를 유통한 것은 터키 출신 상인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인들은 뿔닭을 ‘터키 닭’으로도 부르게 됩니다. 영국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건너 미 북동부에 도착해 야생 칠면조들을 봤을 때 그들의 눈에는 ‘터키 닭’이었던 모양입니다. 검은 색깔에 화려한 머리깃털을 보면 혼동할만도 합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칠면조는 터키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2.무척 강하고 사납게 생겼다. 실제도 그런가?

칠면조 사육 농가에선 “생긴 대로다. 그렇게 터프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칠면조 무리는 권력 투쟁을 통해 서열이 매기고 질서를 확립합니다. 투쟁을 통해 1인자가 등극과 퇴진을 거듭하고, 이에 따라 통치와 번식 체계가 구축됩니다. 이 세력다툼이 얼마나 치열하냐면, 그저 날갯짓만으로도 사람이 중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칠면조 농장 ‘터키 스토리’의 허찬 대표는 “칠면조를 볼 때마다 무에타이 선수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경기도 용인의 칠면조 사육농장인 '터키스토리'에서 기르고 있는 칠면조들이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터키스토리 제공

일단 싸움이 끝나고 서열이 가려지면 언제 그랬냐는듯 유순해지는 시원시원한 모습도 칠면조의 특징입니다. 화끈하되 뒤끝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름이 조(鳥)로 끝나는 대표적인 새가 ‘타조(駝鳥)’, ‘화식조(火食鳥) , ‘칠면조’인데 공통점이 날 수 없거나 잘 날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우람한 덩치와 전투력을 갖고 있어 잘못 건드렸다간 뼈도 못추리게 되는 파이터들이라는 점입니다. 각각 낙타새, 불을 먹는 새, 일곱빛깔 얼굴을 한 새라는 뜻이니 이름부터 아우라가 남다르지 않습니까.

3.칠면조는 어떻게 잡나?

칠면조는 기본적으로 먹기 위해 키우는 가금입니다. 다만 닭이나 오리, 메추리 등 다른 가금류에 비교해 월등하게 몸집이 크고 힘도 장사입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대규모로 소비되는 곳에서는 돼지나 소를 잡을 때처럼 공장식 도축이 활성화돼있습니다. 두 다리를 쇠고랑으로 묶고 거꾸로 매단 뒤 전기가 흐르는 물에 담가 의식을 잃게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해체합니다. 해체 과정에서는 먹이주머니를 잘 제거해서 가장 중요한 부위인 가슴살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게 관건입니다. 먹이주머니는 대개 버리지만, 독특한 식감 때문에 일부러 찾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닷새 앞둔 지난 21일 미시간주의 한 육가공공장에서 직원들이 도축한 칠면조 고기를 다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요즘은 동물복지의 개념이 도축까지 확장되는 추세여서, 칠면조가 의식이 있을 때 도축되는 등의 문제점이 동물보호단체로부터 간혹 제기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향후 칠면조 수요가 확대될 경우에 대비해 체계화된 동물복지법에 따른 도축 시스템을 미리 마련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4.어렵게 마련한 칠면조 고기, 어떻게 먹나?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여섯개의 상징이 있습니다. 햄버거·콜라·청바지·미식축구·컨트리음악·칠면조고기. 앞의 세 가지가 세계화에 성공했다면, 뒤의 세 가지는 아직은 미국 것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칠면조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고단백·저열량 음식이고 심신안정·노화방지·항암·면역력 증진 등의 효능이 있어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을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사육농가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칠면조 고기로 만든 ''칠면조 스팸'. /홈멜 홈페이지

추수감사절 통구이가 제일 유명하고 샌드위치로도 먹을 수 있지만, 칠면조고기의 쓰임새는 의외로 다양합니다. 우선 스팸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칠면조 스팸이 있습니다. 제조사 홈멜 푸드에서 내놓은 17종의 스팸 중에 유일하게 원료가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아닌 스팸입니다. 여러 육가공 업체에서 칠면조 베이컨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스팸과 베이컨이 한국 가정의 밥반찬으로 안착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언젠가 칠면조가 김치, 국, 나물과 함께 저녁식탁에 오르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5. 고기 말고 알도 먹나?

물론입니다. 달걀만큼 식용이 활성화돼있지 않지만, 메추리알처럼 달걀의 대안으로 손색없다는 말이 적지 않습니다. 유정란의 경우 달걀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는 편이라서 별미로 꼽힌다고 합니다. 다만, 덩치도 크고 껍질도 두꺼운만큼, 달걀을 깨뜨릴때보다 힘껏 힘을 줘서 두 번은 부딪쳐야 합니다. 칠면조 알의 경우 저칼로리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유망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은 칠면조알 프라이. 여느 달걀부침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터키스토리 제공

여담으로 장조림에 빠져선 안될 메추리알, 그리고 조금 낯설긴 하지만 꿩알도 식용으로 이용됩니다. 칠면조를 비롯해 이들 새들은 모두 꿩과에 속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동물사육장의 터줏대감이었던 공작, 금계, 은계, 백한 등도 모두 꿩과입니다. 전세계 조류 중에서 유독 꿩과 새들이 여러모로 사람과 인연이 깊은 족속들입니다.

6.한국에선 얼마나 키우나?

1945년 광복 무렵부터 보급되기 시작해 1974년도에는 1만1799마리까지 키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은 사육두수가 많이 줄어들어 수천마리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야생화된 칠면조가 황소개구리처럼 엄청나게 숫자를 불려서 생태계를 교란시켰다는 얘기가 지금껏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사육농가에서 통제를 잘했거나, 한국 기후와 생태계에 완벽하게 적응을 못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칠면조의 대중화가 쉽지 않은 건 사육환경이 좀 깐깐한 측면도 있습니다. 우선 사료량부터 닭의 다섯배가 들어갑니다.

어린 칠면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닭, 병아리와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다. /터키스토리 제공

마리당 사육면적도 닭의 4~5배에 달합니다. 부화해서 알을 생산할 수 있는 성체가 될 때까지의 기간도 닭의 두 배입니다. 한꺼번에 먹인다고 해서 살이 빨리 찌는 체질도 아닙니다. 하지만, 관상용이든 사육용이든 칠면조를 개인적으로 기르는 수요는 꾸준한데 재미있게도 대부분 사회에서 은퇴한 60대 이상 남성들이 많다고 합니다. 팔팔한 칠면조를 보면서 혈기왕성했던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7.그렇게 많이 잡아먹는데 혹시 멸종위기에 처한 건 아닐까?

사람이 고기맛을 알게 되면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짐승들이 한 두종이 아니기에 그런 걱정을 할 법도 하지만, 당장은 기우입니다. 오히려 너무 번성해서 걱정이라는군요. 미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은 지금 폭발적으로 번식한 야생칠면조들이 주택가와 관공서에 출몰하면서 크고 작은 말썽이 일고 있다고 과학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최근 보도했습니다. 주민들은 “나 어릴때 도통 칠면조를 본적이 없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이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네요. 메사추세츠주 프랭클린이란 도시에서는 추수감사절 며칠 칠면조 한 마리가 경찰서 문앞까지 기웃거리자 경찰이 이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린 뒤 “미안하다. 톰(수컷 칠면조를 이르는 명칭), 경찰서로 난입한다고 해서 네 목숨을 구해줄수는 없단다”는 재치있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닷새 앞둔 지난 21일 메사추세츠주 프랭클린시 경찰서 앞에 출현한 야생 칠면조. 경찰은 이 사진을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리면서 "경찰서에 난입한다고 네 목숨을 구해줄 수는 없단다"라는 재치있는 글을 남겼다.

이들 지역에서는 1970년대를 전후해 남획과 남북전쟁 등으로 씨가 말랐던 야생 칠면조 복원을 위해 개체들을 방사한 것이 칠면조의 과잉번식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1975년 생물학자 테드 왈스키도 뉴햄프셔의 수렵낚시구역에 임의로 칠면조 25마리를 풀어줬습니다. 45년이 지난 지금 칠면조는 무려 4만마리로 늘어놨습니다. 왈스키는 최근 내셔널지오그래픽에 “고작 몇 천마리 정도가 될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재 미국 전역에 서식하는 야생 칠면조가 대략 600만마리니 당분간 절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주 동안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