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대표작을 고르라면 당연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일 것이다. 그런데 몇권을 더 고르라면 ‘엄마의 말뚝’ 연작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박완서는 1981년 ‘엄마의 말뚝2’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이 두 작품은 비슷한 대목이 많기도 하다. ‘그 많던 싱아...’는 박완서가 고향(박적골)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해 대학생으로 6·25를 맞기까지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엄마의 말뚝’은 이 과정을 엄마의 관점에서 그린 소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겹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꽃으로 소설을 읽는 것, 소설에서 주요 소재 또는 상징으로 나오는 꽃을 찾아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필자의 오랜 관심사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제목부터 싱아가 나오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박완서 문학에서 ‘엄마의 말뚝’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이 소설도 한번 다루어보고 싶어 열심히 소설 속에 나오는 꽃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몇번 읽었지만 마땅한 꽃을 찾지 못했다. 소설 초반에 살구나무, 토종국화 등이 나오긴 하지만 고향 박적골의 상징으로는 몰라도 엄마의 상징은 아니었다.
한참 후에야 ‘엄마의 말뚝’이 아닌 다른 소설에서 엄마를 상징할만한 꽃을 찾았다. 바로 ‘그 많던 싱아...’에서였다. 그 소설에서 6·25 발발 직전, 박완서와 엄마가 오빠가 근무하는 고양중학 사택을 둘러갔을 때 장면이다.
<엄마는 집은 보는 둥 마는 둥 먼저 텃밭으로 들어갔다.
한참이나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았기에 나는 엄마가 거기서 오줌을 누는 줄 알고 일부러 딴 데를 보았다. 한참 있다가 돌아다보았더니 어린애처럼 흙을 주무르고 있었다. 나하고 시선이 마주치자 감자꽃처럼 초라하고 계면쩍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난 하루라도 빨리 여기 살고 싶구나. 땅이 어쩌면 이렇게 거냐? 세상에 이 좋은 땅을 이대로 놀리다니.”>
이 장면 바로 뒤에 6·25가 터지면서 이사를 포기했을 때 ‘나는 불현듯 텃밭 사이에서 감자꽃처럼 웃던 엄마 생각이 나면서 가슴이 깊이 아렸다’는 문장이 있다.
감자꽃은 엄마를 상징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박완서도 엄마의 꽃이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았을까. ‘엄마의 말뚝’에서 보듯, 엄마의 일생은 외아들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것도 아들딸을 가르치기위해 현저동에 ‘말뚝’을 박은 것(‘엄마의 말뚝1’ 주요 내용)이고, 노년에 대퇴골 골절 수술을 받고 후유증으로 정신착란증세를 보였을 때 헛것으로 보인 것도 6·25때 아들을 잃는 장면(‘엄마의 말뚝2’ 주요 내용)이었다.
엄마가 오빠와 함께 고양 사택으로 이사하려고 한 이유 중 하나는 아들이 ‘(좌익 조직으로부터) 전향한 후환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6·25 발발로 이사를 할 수 없었고, 엄마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져 아들은 엄마의 눈 앞에서 인민군 군관에게 총상을 입고 죽는다. 박완서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면이다.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기에 엄마의 웃음은 ‘감자꽃처럼 초라하고 계면쩍’었지 않았을까. 감자꽃은 6월에 흰색 또는 옅은 보라색으로 피는 소박한 꽃이다.
‘엄마의 말뚝1’은 1980년, ‘엄마의 말뚝2’는 1981년 발표한 작품이고, ‘엄마의 장례를 다룬 ‘엄마의 말뚝3’는 1991년 발표한 것이다. 박완서가 10여년을 두고 차례로 발표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하나의 작품으로 쓴 것처럼 잘 이어지면서 엄마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엄마의 말뚝1’에서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라고 썼다.
박완서의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도 담긴 딸의 소설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 많던 싱아…’ 후반부에 그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박완서와 엄마는 소설 내용에 대해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게 불문율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번은 엄마와 같이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자가 엄마에게 딸이 쓰는 소설을 읽은 소감을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심장이 죄어들었다. 비평가한테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다지 기분이 좋아질 줄도 나빠질 줄도 모르는 강심장을 타고난 내가 말이다. 다음 엄마 입에서 떨어진 소리는 싸늘하고도 간략했다.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썼는지.”
나의 죄어들었던 심장이 펴지면서 얼굴이 모닥불을 담아 부은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 후에도 엄마의 그 차가운 평은 문득문득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고 김윤식 서울대 교수는 책 ‘내가 읽은 박완서’에서 “박완서의 문학이란, 그러니까 ‘그 많던 싱아…’로 요약되는 그의 대표작이란 엄마인 기숙 여사와의 대결이라는 것, 말을 바꾸면 ‘그 많던 싱아…’란 ‘엄마의 말뚝4’이니까 이 시리즈와 분리시키면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고 했다. “모녀 대결 의식이야말로 이 작품의 긴장력이자 박완서 문학의 긴장력의 근원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