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UTIQUE 편집장 레터

고백하자면, 샤넬을 좋아했다. 인조 진주에 진짜를 넘어서는 가치를 부여한 예술가로든,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키며 바지를 입혔든 굳이 먼저 따지지 않았다. 샤넬 창업자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패션사 뿐만 아니라 럭셔리 마케팅 업계에 남긴 수많은 업적에 대해 낱낱이 공부해 ‘역시’라며 스스로를 다시 납득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녀의 작품이 좋았다. 의미 부여는 그 이후였다. 재킷인 듯 카디건인 듯 여유로우면서도 격식 있어 보이는 트위드 재킷에서부터 단순해서 더 상징적인 퀼팅 가방, 까멜리아 장식 등에 ‘미술 작품’마냥 진열장에 걸어둔 진주 목걸이까지, 그저 좋아 보였다. 이유?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10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파리와 이탈리아 출장을 갔다가 ‘큰 맘 먹고’ 샤넬 매장에 들렀다. 그날은 그야말로 ‘대란’이었다. 며칠 뒤면 전 세계 가격을 10% 이상 올릴 것이라는 걸 먼저 알게 된 기존 고객들부터 말마따나 매장을 ‘털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그 행렬에 꼈다. 인기있는 2.55 등 블랙 가죽 가방은 모두 다 팔린 상태였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 당시 가격으로 300만원대. 월급을 헌납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아니면 언제 가져볼까’하는 심정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면세로 일부 돌려받으면 국내서 세관 신고를 한다고 해도, 국내 판매가격이 해외와 100만원 넘게 차이가 나던 시절이어서 ‘사는 게 남는 것’이라고 자기 최면까지 걸고 있었다. 게다가 곧 가격까지 오른다니,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면 매대가 곧 텅 빌 지경이라, 홀로 남은 베이지색 가방에 급하게 손을 뻗었다.

2일 샤넬 클래식 플랩 백 맥시 사이즈 모델이 993만원에서 1014만원으로 2.1% 인상됐다. /샤넬

샤넬로 재테크한다는 ‘샤+테크’가 인기를 끈 시기였다. 샤넬 가방 가격이 해가 다르게 오르고, 원하는 이도 많다 보니 중고 시세가 꽤나 높게 형성돼 쏠쏠하다는 얘기였다. 인기를 끌다 보니 진품 가품 구분법도 스스로 터득해 갔다. 인증서와 내부 마크 같은 공식 정보뿐만 아니라 2.55 가방 퀼팅 한 칸마다 8땀(스티치)으로 돼 있다는 등 각자의 기준으로 ‘찾아낸’ 여러 가지의 ‘증거’를 꿰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 당시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루머. “샤넬이 머지않아 1000만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사람들의 귀띔이었다. 현지에서도, 한국서도 마찬가지로 ‘품절 대란’이 일어났을 때도, 그 이후에도 1000만원설(說)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드디어 얼마 전 1000만원을 돌파했다. 물가도 올랐고, 그 덕에 ‘서민 음식’이라던 냉면 값도 10년 전에 비해 30% 넘게 훌쩍 올라 1만 4000원을 웃돌기도 한다. 하지만 물가와 비례 연동한다면 럭셔리 업계가 추구하는 가격 정책이 아닐테다. 지금 월급으로 따지면 모으고 모아야 제품 하나 마련하는 지경이다.

‘왜 이렇게 올리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과거 스타일 그대로인 듯한 디자인의 제품을 보면 더욱 그렇다. ‘수공예’를 꺼리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한 땀 한 땀’ 수놓는 장인들의 숫자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어 제품 생산에 어려움이 많다는 설명도 들리고,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원재료 수급에 어려움이 크다는 이야기도 있다. 럭셔리의 본분인 ‘희소성 원칙'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가장 강력한 항의라면 ‘안 사면 될 것’이다. 공산품이 아니고, 말마따나 필수품도 아닌 ‘사치품’이기에 없어도 삶에 전혀 지장 없는 제품들 아닌가. 하지만 결국 어떻게 해서든 살 사람은 살 것이고, 그러한 속성을 알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도 매출은 나온다는 외신 분석도 나온다. 특히 문 열기 전부터 뛰어가 줄 서며 제품을 구매하려는 ‘오픈 런’ 덕에 가격 올리기 전에 ‘매진’ 사태도 빚으니 누가 손해를 보는 건지도 잠시 헷갈리기도 한다.

10년 전 그 가방? 그 당시 매대에서 고운 자태를 과시했던 그 모습 그대로다. 위치만 유럽에서 내 방 선반 위로 바뀌었을 뿐. 한두 번 들고 나갔다가 짙은 색 옷감에 이염(물감이 다른 데 배어드는 것)되면서 가죽 일부가 거뭇거뭇해진 게 아닌가. 이염된 부분을 재염색하면 가치가 뚝 떨어져 중고로도 제대로 팔 수 없단다. 더스트백 속에 고이 모셔둘 뿐, 들고 다니지도 않으니 ‘헛돈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저건 1000만원짜리야’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