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오는 ‘왓챠에서 바로보기’를 클릭하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왓챠’로 이동합니다. 바로보기 클릭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작동합니다. 조선일보에서 로그인을 하면 2~4주간 왓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입사 초반에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누가 이런 말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지만, 15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면서 여기에 동의한 적은 한번도 없다. 나를 도와주거나 힘들게 한 사람 중엔 남자도, 여자도 모두 있었다. (오히려 험담을 하거나 헛소문을 지어내는 남자를 더 많이 경험했다.) 신입사원에게 세상의 냉혹함이나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면, ‘여적여’가 아니라 차라리 ‘사적사’, ‘사람의 적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줬어야 한다. ‘여적여’라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여성 인권을 50년 퇴보시켰다고 두고두고 욕을 먹는 필리스 슐래플리. 알고보면 반(反)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는 게 함정. 50세가 넘어서 변호사 자격증 따겠다고 로스쿨을 다니고 평생 정계진출을 호시탐탐 노렸다.

‘미세스 아메리카’를 보라고 주변에 추천했을 때 ‘여적여’를 또 들었다. “페미니스트 여성과 반(反)페미니스트 여성의 대결을 그린 미드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를 보고도 “'여적여'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 같아서 싫다”고 몸서리를 치는 경우도 봤다. (“거봐라, 페미니즘은 여자가 더 싫어한다”는 남자가 있을까봐서란다. 좀 모자란 인간이라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도.) 오히려 ‘여적여’와 같은 흑백 논리로 그 시대와 페미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간편하고 쉬울까. 페미니즘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모든 여성에겐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인생이 있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처럼 한 두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싸움은 모든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의 투쟁에 가깝다. 올해가 아직 세 달이나 남았는데 ‘미세스 아메리카’를 감히 2020년 최고작으로 꼽는 건 50년 전의 대결이 새로운 시대의 문화 전쟁의 시작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란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스 아메리카' 왓챠에서 바로보기

70년대 들어 미국에선 진보나 보수나 할 것 없이 성평등 헌법수정안(ERA)을 추진하게 된다. ERA는 당시 보수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고 닉슨이 페미니스트였다는 건 아니고, 여성 유권자를 신경써야 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국방·안보 전문가인 필리스 슐래플리는 정계에 진출해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싶지만 지지 기반이 없어 선거에 나갈 때마다 떨어진다. 동네 친구 앨리스가 ERA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걸 들은 그녀는 보수적인 주부층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자 한다. 그는 ERA가 비준될 경우 여자들도 군대를 가야하고 남편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여자를 만날 것이며, 이혼하면 양육비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에게 동조하는 세력을 모은다. 근거 없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슐래플리는 마치 4년 전 대선에서 거짓 뉴스를 천연덕스레 얘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슐래플리가 죽기 전까지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단 게 우연의 일치일까.

'미세스 아메리카'에 등장한 실존 인물과 배우. 왼쪽부터 케이트 블란쳇, 필리스 슐래플리, 로즈 번, 글로리아 스타이넘. 슐래플리와 스타이넘은 각각 반ERA와 찬ERA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마지막 두 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각 에피소드는 여성 등장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달고 있다. 슐래플리의 친구 앨리스를 빼곤 실존인물이다. 누군가는 흑인이고, 누군가는 공화당원이며, 누군가는 레즈비언이다. 앞서 말했듯이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로 나눌 수 없는 문제들이 각 에피소드마다 인물을 빌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3화에서 첫 흑인 연방 하원의원(뉴욕)이 된 셜리 치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성과 인종, 정치가 단지 선악이나 흑백처럼 생각할 문제가 아니란 걸 얘기한다. 반ERA, 반페미니스트를 악마화하지 않고, 당대의 스타나 다름 없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영웅화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 드라마가 얼마나 사려깊고 신중한지를 보여준다.

슐래플리는 ERA를 반대하는 가정 주부 사이에서 아이돌 같은 존재다.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에 완벽한 가정, 지략과 카리스마까지 갖춘 인물로 그려지는데, 단지 그 때문에 반ERA의 지지 세력을 모은 건 아니다. ERA진영에서 “슐래플리야말로 미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는데 이 지점이 주부들을 건드렸을 것이다. 슐래플리가 반ERA 운동을 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정치 권력을 얻은 것처럼 주부들도 반페미니즘 강연을 듣고 시위를 하면서 집 밖으로 나와 제 목소릴 내기 시작한다. 이들은 ERA를 반대한 것이지, 성평등을 반대한 게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마저 든다.

군사 안보 학위를 갖고 있으면서 지략이 뛰어나고 실천력도 강하지만 필리스 슐래플리는 정계 진출에 계속 실패한다.

이들이 ERA를 반대한 데는 공포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과정에서 소외 당하는 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문제는 한창 발전에 도취된 이들은 이런 낙오자를 돌볼 여유가 없다는 데 있다. 당시 ERA를 지지하는 여성은 도시에 사는 고학력자에 경제적 자립도 가능한 반면 주부들은 언론이 자신을 무용(無用)한 존재로 조롱하는 데 분노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ERA가 막 권력을 가진 ‘잘난 여자’를 위한 것일 뿐이고, 더 이상 가사 노동과 주부가 가꾼 가정의 가치가 인정을 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한다.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신체 결정권이나 성별간 동일 임금을 주장하느라 가사 노동자이자 가부장제의 피해자일 수 있는 가정 주부들을 소외시키지 않았을까. 드라마에선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하는 반ERA진영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는 양쪽 진영 어디에서도 구제를 받지 못하는 존재다. ERA가 왜 가정주부를 설득하지 못했는지 알만한 지점이다.

슐래플리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나의 영원한 여왕님!)에 이끌려 ‘미세스 아메리카’를 보게 됐는데, ‘하우스 오브 카드’가 떠올랐다. 케빈 스페이시는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을 일삼는 인물이지만 묘하게도, 정말 묘하게도 우리는 그가 드라마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슐래플리에게 느끼는 게 딱 이런 감정이다. 그는 군사 안보 전문가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회의 때는 서기 역할을 해야 했고, 남자들의 정치 모금 행사를 위해서 수영복을 입은 채 사람들 앞에 섰다. 이런 여성혐오와 차별을 받을 때마다 어렴풋한 미소를 짓고 넘어가는데 마치 ‘멍청이들아, 내가 좋아서 웃고 있는 줄 아냐’고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오싹했다. 양옆으로 활짝 벌린 입가가 살짝 욱씬 거리는 게 마치 입 밖으로 터져나오려는 분노와 슬픔을 목구멍 아래로 꾹꾹 밀어넣는 느낌이랄까. 블란쳇이 연기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지금의 절반 정도의 성과만 보였을 것이다.(블란쳇에 대한 편애 때문에 다른 여자들 얘기가 빠졌는데, 모든 캐릭터의 캐스팅와 연기를 갖고 각각 원고지 스무장 정도는 쓸 수 있을 정도로 배우들이 엄청나다.)

'미세스 아메리카'의 한 장면. 맨 오른쪽이 보수 공화당원이면서 ERA지지에 나섰던 질 럭겔스하우스(엘리자배스 뱅크스)이다. 시대극을 그린 영상에는 시대의 공기가 있다. 화면의 질감과 공간의 냄새 같은 것이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시대의 공기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70년대에 태어나지도 않아서 그때의 미국을 알 수도 없지만, 왠지 가본 곳인 것마냥 눈앞에 훤히 펼쳐진달까. 알고보니 역대 최고의 미드 ‘매드맨’의 작가 다비 윌러가 제작했다. 60~70년대 미국을 다룬 ‘매드맨’이 끝난 지점에서 ‘미세스 아메리카’가 시작하는 셈이다.

ERA는 올초 드디어 서른여덟번째 주에서 비준을 받아 입법 요건을 충족시켰다. 70년대에 이뤄졌을 일인데 슐래플리 때문에 미뤄진 것이다. “여성인권을 50년 퇴보시킨 X”이라고 두고두고 욕을 먹는데 어쩌면 이런 갈등과 진통을 겪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미세스 아메리카’와 슐래플리는 여전히 유효한 얘기다. 세상은 변한다. 좋은 쪽으로 변한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그 변화에 도취돼서 누군가를 여전히 소외시키거나 아예 잊어버리고 있을 것이다. 부디 각자의 사정, 각자의 인생, 각자의 역사가 두고두고 존중받기를 바란다.

※모보니: ‘모 좀 보는 언니’의 줄임말. 지난 20년간 영화나 드라마를 거의 하루라도 안보면 눈에 가시가 돋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내가 뭘 좀 봤다’며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