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는 인터미션을 포함한 러닝타임이 4시간에 달하는 대작이어서 감상하려면 결심이 필요하다(코로나로 고향길마저 막혀버린 추석 연휴엔 그만일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길어진 것은 영화가 주인공 누들스와 친구들의 우정, 사랑, 배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얽힌 총체로서 인생을 그리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모자이크처럼 맞물리는 가운데, 50년 가까운 누들스의 세월을 가늠하게 하는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모자다.
어린 누들스는 ‘뉴스보이 캡’을 쓴다. 이름 그대로 신문팔이 소년들이 애용하던 모자다. 청년기 이후엔 모자가 중절모로 바뀐다. 동양에서 관례(冠禮)가 성인식으로 간주됐던 것처럼 서양에서도 20세기 중반까지 모자는 신사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이었고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중절모였다. 거칠 것 없었던 젊은 누들스의 챙 넓은 중절모는 높고 빳빳하다. 반면 쫓기듯 떠났다가 35년 만에 돌아온 누들스의 모자는 챙이 좁아지고 크라운(머리가 들어가는 부분)이 살짝 낮아졌으며 꼿꼿했던 각(角)이 완만해졌다. 회한 어린 눈으로 지난날을 돌아보는 노년을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한풀 누그러진 모습이 필요했을 것이다. 성인이 된 누들스가 뉴스보이 캡을 쓴 모습이 출감(出監) 장면에 딱 한 번 나오는데 이는 옥살이를 막 끝낸 누들스가 아직 의관을 정제하지 못하고 미숙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중절모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그 분위기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남자들이 좀처럼 모자를 쓰지 않는 시대엔 중절모 특유의 우아하고 성숙한 느낌이 돋보일 수 있다. 밀짚모자의 일종인 파나마해트가 여름용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포근한 펠트(모직물의 일종) 중절모의 계절이다. 지나치게 튀지 않을까 걱정될 때는 노년의 누들스처럼 챙이 좁은 것을 고르면 부담이 덜하다. 중절모를 쓰기 위해 슈트를 빼입을 필요도 없다. 캐주얼과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누들스의 미소를 화면 가득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압권. 그 위로 흘러가는 엔딩 크레디트까지 한참 바라보게 된다. ‘특히 감사한 분들’ 부분에 모자(hats) 항목을 따로 두고 협찬사 보르살리노(할리우드에서 사랑받았고 ‘히틀러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도 탐냈다고 회고록에 썼을 만큼 정평이 난 모자의 명가다)를 돋보이게 언급했다. 어쩐지 모자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만, 명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겐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