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나이에 그런 기록이 나오다니, 그건 거의 미친 기록이죠!”

2일 일본 도쿄 오메가 홍보관에서 만난 '수영 5관왕' 케일럽 드레슬은 홀가분한 얼굴로 웃었다. 드레슬은 도쿄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인 오메가 홍보대사다.

케일럽 드레슬(25·미국)은 일본 도쿄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다. 금메달 다섯개로 이번 대회 최다관왕 등극을 사실상 예약했다. 그는 2020 도쿄올림픽 경영에서 계영 400m, 자유형 100m, 접영 100m, 자유형50m, 혼계영 400m 등 5종목에서 우승하며 다섯번이나 금빛 물살을 갈랐다.

그는 도쿄올림픽 유일한 5관왕으로, ‘포스트 펠프스’ 시대를 맞이한 남자 수영에서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음을 확실히 알렸다. ‘수영 전설’ 마크 스피츠(1972 뮌헨)와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008 베이징)에 이어 역대 미국인 세번째로 개인종목 3관왕도 달성했다.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결선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고 환호하는 케일럽 드레슬./오메가

2일 오전 도쿄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인 오메가(OMEGA) 홍보관에서 만난 드레슬은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지난 1일 경기를 끝으로 도쿄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물에서 보는 수영복 차림의 드레슬은 키 191cm, 몸무게 88kg 근육질 몸매에 왼 팔을 뒤덮은 화려한 날개 문신까지 더해져 우락부락 포효하는 번개 같은 인상이지만, 뭍에서 만난 반바지 차림의 드레슬은 그저 스물다섯 플로리다 청년이었다. 큰 눈을 껌뻑이며 상냥하게 웃고 또 웃었다. 푸른 수영장을 눈 안에도 담은 것처럼 눈동자가 파랬다.

드레슬에게 “100m 자유형 결선을 바로 옆 레인에서 치렀던 한국의 황선우(18)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당시 결선에서 드레슬이 5번레인 황선우가 6번레인에서 헤엄쳤다. 그는 동그란 눈으로 “물론이다(Of course)!”라고 활짝 웃으며 황선우에 대한 인상을 자세히 말했다.

지난 29일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100m 자유형 결선에서 케일럽 드레슬(왼쪽)과 황선우가 출발하는 모습. 황선우의 출발 반응속도가 드레슬보다 더 빨랐다./뉴시스

“황선우의 경기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아직 열여덟살로 알고 있는데, 그 나이 때의 나보다 더 빠르게 수영을 하고 있어요. 기록을 아마 정확하게 확인해 봐야겠지만, 황(선우)은 아마 100m 자유형 결선에서 48초 이내로 결승선에 들어왔을 겁니다(황선우는 47초82로 5위를 했고, 드레슬이 47초02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 나이에 그런 기록을 해냈다는건 거의 미친 기록입니다!”

드레슬이 말을 이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금메달 기록이 47.5초 정도였고, 단 서너명만이 47초 대를 기록했다는 것을 보면, 그의 성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죠. 그와 함께 레이스를 해서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그가 더 재미있게 수영을 하길 바랍니다. 밝은 미래가 있을 겁니다.”

남자100m 자유형 결선이 끝나고 우승을 기뻐하는 드레슬(아래)와 아쉬워하는 황선우./최문영 스포츠조선 기자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결선에선 카일 찰머스(호주·47.58초), 피터 티머(벨기에·47.80초), 네이든 에이드리안(미국·47.85초)이 금·은·동메달을 나눠가졌고 산토 콘도렐리(캐나다·47.88초)가 4위를 했다. 당시 이 네명만 47초대가 나왔다. 황선우의 이번 기록은 리우올림픽에서였다면 동메달이 가능했던 성적이다.

드레슬은 이미 2017년 헝가리 대회 7관왕, 2019년 광주 대회 6관왕을 차지하고 두 대회 연속 남자부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며 세계 수영계의 차세대 스타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올림픽 성적은 2016 리우에서 단체전인 계영으로 따낸 금메달 2개(계영 400m·혼계영 400m)가 전부였기에 도쿄 무대에서 어느정도 실력 발휘를 할지는 미지수였다. 지난해는 코로나 사태로 코치의 차고에서 역기를 드는 등 훈련에도 차질을 빚었다. 중압감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부담감이 있긴 했지만, 그걸 이겨내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선수로서 매 대회, 매 시합, 매 주, 매 해 느끼는 부담감이 다 다릅니다. 올림픽을 앞두고서는 확실히 부담감이 제일 컸고요. 하지만 그것도 스포츠의 일부분이니까 새로운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부담감과 즐겁게 마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도쿄에서 완벽한 수영을 해내서 너무 만족스럽니다.”

2일 일본 도쿄 오메가 홍보관에서 도쿄 올림픽 5관왕 등극을 축하받는 드레슬./오메가

그는 6번째 금메달도 눈 앞에 뒀지만 동료의 실수로 메달 추가가 무산됐다. 미국 수영의 샛별 리디아 자코비(17)가 지난달 31일 열린 400m 혼성 혼계영 결선에서 출발 도중 물안경이 벗겨지는 돌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자코비는 물안경을 입에 물고 계속 스트로크를 했지만 두 눈을 뜨고 경기한 선수의 기록이 좋을 리 없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국 대표팀은 드레슬의 역영에도 3분40초48로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드레슬은 메달 추가 무산을 아쉬워하기는커녕 동료를 감쌌다.

“그건 리디아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그런 점들도 경기의 한 순간일 뿐이고, 리디아는 본인이 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완벽히 역할을 해주고 경기를 잘 끝냈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경기 결과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고, 동료를 비난하는 것은 저희 팀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 팀원들은 물론 지켜보시는 팬들도 다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케일럽 드레슬은 혼성 혼계영 경기에서 리디아 자코비(사진)의 물안경이 벗겨지는 돌발 상황으로 6관왕 등극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리디아가 자랑스럽다"고 했다./신화

하나도 따기 어려운 금메달을 한꺼번에 다섯개나 따낸 미국 청년은 도쿄 대회가 끝나자마자 벌써부터 2024 파리 올림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배운 것들이 많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행복합니다. 하지만 수영은 앞으로 더 잘하고 싶기 때문에, 실력을 더 향상시킬 방법을 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