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주문이 마감됐는데, 조금 더 걸어가면 밤새 하는 곳도 있으니까 그리로 가세요.”

29일 밤 11시쯤 도쿄 지요다구 유라쿠초역 한 주점 앞. 젊은이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운 채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이곳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종업원이 나와 말했다. 긴급사태가 발효된 도쿄에선 음식점 영업시간이 오후 8시까지로 제한돼 있고, 가게가 술을 파는 것도 사실상 금지돼 있다. 위반하면 과태료 30만엔(약 314만원)이 부과된다. 방침을 대놓고 어기고 있는 게 신기해 자세히 확인해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영업이 끝났다”는 종업원의 말에 따라 발을 옮겼다.

29일 밤 도쿄 긴자 지역 한 술집.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김상윤 기자

3분쯤 걸어 긴자의 경계에 있는 신칸센 철로 밑 골목에 들어섰다. 노란 전등 빛 아래 술잔을 들고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폭 2m쯤 돼 보이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대형 음식점과 술집이 줄줄이 문을 열고 있었다. 식당별로 놓인 수십 개 테이블에선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28도 열대야에도 에어컨이 닿지 않는 노상(路上) 테이블까지 만석에 가까웠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불안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곳 도쿄도에는 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 12일 통산 4번째 긴급사태가 발효됐다. 영업시간 제한, 주류 제공 금지 등 조치가 ‘요청’ 형태로 내려졌다. 세계적 이벤트를 치르긴 해야 하는데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보니 다시 규제가 강화된 것이다.

29일 밤 도쿄 도심에서 환히 불을 켜 놓고 영업하는 식당과 술집. /이태동 기자

하지만 이날 도쿄 도심 주요 번화가에선 이를 무시하고 영업하는 가게와 몰려든 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문을 연 몇 곳에 발길이 집중되다 보니 오히려 밀도는 높았다. 유라쿠초 한 수산식당에서도 직원들이 주문을 받고 새 손님을 안내하느라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이랏샤이마세”란 인사는커녕 손님들이 직접 다가갈 때까지 대꾸도 하지 못할 만큼 바빠 보였다. 이들에게 영업시간 제한은 없느냐고 묻자 “매일 아침 5시까지 문을 연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상 24시간 영업이었다.

이날은 급증하는 일본 전역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처음으로 하루 1만명(1만692명)을 돌파한 날이었다. 도쿄에서만 3865명이다. 부도칸(武道館)에서 유도 경기 취재를 마치고 시내 분위기를 살피러 몇 군데만 돌아봤는데도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했다.

29일 도쿄 유라쿠초역 인근 신칸센 철로 밑 술집 골목. 야간에도 술을 마시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김상윤 기자

대로변은 깜깜했지만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주요 번화가의 사정은 대부분 비슷했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신바시역 인근에선 평소처럼 호객꾼도 활동했다. 이곳에 줄 서듯 멈춰선 택시에선 여러 인종의 외국인들이 내려 바(bar)로, 이자카야로 들어갔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막 도착한 이들의 모임은 그때부터 시작일 터였다.

최근 일본에선 ‘야외 음주’도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행동에 제약을 받느니, 그냥 편의점에서 맥주나 하이볼을 산 뒤 공원에 가 마시는 것이다. 긴급사태가 선언될 때마다 ‘길거리나 공원에서의 음주를 자제해달라’는 호소가 빠지지 않고,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며 계도하고 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29일에도 프레스센터 근처 국제전시장역 앞 공원에선 삼삼오오 야외 모임을 갖는 이들이 벤치 이곳저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야간 지하철 안에선 얼큰하게 취한 듯 큰 목소리로 떠드는 회사원들과 누군가 마시고 버린 듯 창틀 위에 남은 맥주캔, 새우처럼 널브러져 자면서 집에 가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29일 밤 12시쯤 신바시역 인근에서 영업 중인 이자카야. /김상윤 기자

“이제 긴급사태는 효과가 없는 처방이 됐다”고 의료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이 원흉으로 지적하는 게 바로 ‘올림픽’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의료법인협회 오타 요시히로 부회장은 “긴급사태가 시민들에게 익숙해졌고, ‘올림픽을 치른다’와 ‘감염 확대를 막아야 한다’는 방침이 모순된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잦은 규제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상황에서 올림픽 때문에 각종 방역 조치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올림픽 개최가 감염 방지의 걸림돌”이라고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확진자가 1만744명 발생한 30일, 도쿄도와 오키나와현의 긴급사태 적용 기간을 8월 22일에서 말일까지로 늘렸다. 긴급사태 적용 지역도 가나가와현 등 수도권 3현과 오사카부로 확대하기로 했다.

올림픽 참가자를 ‘예비 전파자’로 여겨 불안해하는 현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해외에서 방문한 참가자들에게 ‘방역 규정을 준수해달라’고 요청하는 횟수도 늘고 있다. 매일 아침 프레스센터로 출근하는 길에 AD카드에 꽂히는 시선이 점점 따가워지는 느낌이다. 올림픽이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될 거라곤 누구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