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양궁협회는 2019년 6월 네덜란드 세계선수권에서 세계양궁연맹이 선수 심박수를 시험 중계하는 걸 봤다. 언젠가 올림픽에 심박수 중계가 도입될 것으로 보고 그때부터 대비에 나섰다. 양궁협회는 회장사인 현대자동차그룹에 도움을 구했다. 현대차 미래 기술을 담당하는 이노베이션 부서가 나섰다. 당시 현대차는 표정, 심박 등으로 탑승자 감정, 건강 상태를 파악해 최적의 드라이빙 환경을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었다.

그래픽=박상훈

◇안면 인식 심박수 측정

현대차는 카메라로 얼굴색 변화를 감지해 심박수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해 올해 2월부터 양궁 대표팀 훈련에 사용했다. 지도자들은 심박수 분석을 통해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는지 알려줘 선수들 스스로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대처능력을 키우도록 했다. 세계양궁연맹은 도쿄올림픽 개막 2주 전 중계방송에 심박수를 공개하겠다고 했고, 27일 개인전부터 실행했다. 자신의 심박수 변화가 남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사실에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이미 훈련을 통해 적응을 마친 한국 양궁 대표선수들은 당황하지 않고 활을 당겼다. 한국 양궁은 도쿄에서 여자 단체전 9연패(連覇)를 비롯해 26일까지 치른 남자, 혼성 단체 세 종목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고정밀 슈팅 머신

양궁 경기에선 활뿐만 아니라 화살도 중요하다. 현대차는 2016리우올림픽 때 불량 화살을 걸러내기 위해 슈팅머신을 만들었는데,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전면 재개발에 나섰다. 5년 전 70m 거리에서 같은 화살을 수십번 쏴 주먹 1개 정도의 크기 탄착군에 명중하는 화살을 골랐는데, 이번엔 그 탄착군 크기를 1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줄여 더 ‘정밀도’를 높였다. 이 탄착군에서 벗어나는 화살은 불량화살로 간주된다. 양궁협회 관계자는 “선수들이 오차 없는 장비를 갖췄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출전했다. 자신감도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이 슈팅머신에 사용한 기술은 전기차와 충전기를 정확히 연결하는 ‘자동 충전 로봇’ 개발 기술이다.

◇전자 과녁

현대차는 올해 초 정밀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센서를 이용해 전자 과녁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활을 쏘면 점수 데이터만 모았지만, 전자 과녁을 사용하면서 점수를 자동 판독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게 됐다. 위치 파악 센서 기술은 어린 아이나 반려동물이 자동차 뒷좌석에 남아 있으면 경고음이 울리는 데 이용된다.

◇3D 프린팅 그립

활 손잡이인 ‘그립’에는 3차원(3D) 프린팅 기술이 쓰였다. 선수들은 기성 그립 제품을 깎거나 그립에 밴드를 감아 자신의 손 모양에 맞게 만든다. 소모품이라 잘 부서지는데 올림픽 같은 중요한 무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처하기 쉽지 않다. 새 그립이 손에 맞지 않아 실수할 수도 있다. 현대차는 2016리우올림픽 때부터 선수 손에 최적화된 그립을 본떠 3차원 프린팅 기술로 똑같은 그립을 여러 개 만들었다. 최근엔 단단하면서 가볍고 미끄러짐이 거의 없는 알루마이드 소재로 그립을 만든다. 오진혁과 김우진이 이 그립을 사용한다. 3차원 프린팅 기술은 현대차 공장에서 부품 검사를 하거나 디자인 연구를 할 때 사용한다.

◇맞춤형 명상

그동안 큰 대회에 동행했던 심리전문가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동행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파견 인력이 제한됐다. 현대차는 작년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해 심신이 지친 운전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한 경험을 살려 선수별 맞춤형 명상 콘텐츠를 만들었다. 훈련 영상을 자동으로 분석·편집하는 ‘AI(인공지능) 코치’도 도입했다. 양궁협회 관계자는 “당장 상용화할 수 없는 기술도 현대차와 논의를 통해 양궁에 이용하는데, 훈련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