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 중국 귀화 선수 제러미 스미스(왼쪽·골리)가 10일 중국 베이징 국립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조별 리그 A조 1차전에서 골 안으로 들어가는 퍽을 쳐내려고 몸을 날렸지만 결국 실점하는 장면. 중국은 엔트리 25명 중 19명을 귀화 선수로 꾸렸으나 올림픽 데뷔전에서 대학 선수 위주로 짠 미국에 0대8로 완패했다. /AFP 연합뉴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느냐에 관심이 쏠린 경기였다. 10일 밤 중국 베이징 내셔널 인도어 스타디움. 미국(세계 4위)과 중국(세계 32위)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베이징올림픽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중국의 0대8 완패.

출전 명단을 보고 나면 중국의 패배가 더욱 참담해진다. 미국 팀엔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선수가 아예 없었다. 전체 25명 중 대학리그(NCAA) 소속이 15명이었고 나머지 10명은 유럽과 북미 2부리그(AHL)에서 뛴다.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를 공언해왔던 NHL 선수들이 오미크론 확산세로 지난달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번 미국 대표팀은 한 달 전 급조됐다. 연습 경기 두 번 치르고 베이징에 왔다.

귀화 선수로 만들어진 중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미국 앞에서 무력했다. 경기 초반 몸싸움으로 버텼지만 결과는 0대8 완패였다./AFP연합뉴스

반면 중국 팀은 전체 25명 중 19명을 귀화 선수로 채웠다. 일본(1998 나가노·귀화 8명)과 한국(2018 평창·귀화 7명)에 비해 월등히 많다. 불법과 특혜도 난무했다. 가령 중국 골리 제러미 스미스(33)는 미국 주니어 국가대표와 NHL 경력이 있는 미시간주 토박이인데, ‘지에루이미 시미시’로 귀화했다. 중국은 이중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서 원칙대로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중국 정부가 슬쩍 눈감았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개최할 때 “아이스하키 수준이 너무 낮으니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내라”고 요구했다. 실력을 쌓아 평창 빙판을 밟은 한국 남자 대표팀은 체코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1대2로 석패하는 등 올림픽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IIHF는 중국엔 ‘베이징 올림픽 무조건 출전’을 보장했다. 중국이 2016년 귀화 선수들로 구성된 ‘쿤룬 레드스타’를 창단하고 세계 2위 리그 KHL(러시아대륙간아이스하키리그)에 편입시켜 대표팀을 프로 리그에서 훈련시키는 자구책을 실시하긴 했지만 실력 차는 돈으로 극복할 수 없었다.

경기 초반엔 중국이 몸싸움으로 버텼다. 팀 훈련도 제대로 못 해봤던 미국도 초반엔 패스 손발이 안 맞았다. 하지만 미국은 1피리어드 시작 10분38초만에 첫 골을 터뜨리더니 2피리어드에서 3골, 3피리어드에서 4골을 몰아쳐 대승을 마무리 지었다.

중국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숀 패럴.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학생이다.

‘하버드대 듀오’가 중국 침공에 앞장섰다. 지난해 ‘아이비리그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상’을 받은 숀 파렐(21·경제학과)이 3골 2도움을 책임졌고, 하버드 하키팀 주장 닉 아브루지지(23·심리학과)가 2도움을 보태며 중국의 골망을 연신 갈랐다. 미국 대표팀 역대 최연소 골리인 드루 코메소(20·보스턴대)는 중국이 날린 슈팅 29개를 완벽하게 막았다.

중국은 12일 평창올림픽 은메달 팀인 독일(세계 5위)과 맞붙고, 13일엔 세계 최강 캐나다와 겨룬다. 중국의 참패가 예정된 남자 아이스하키는 중국에서 찬밥 신세다. “코로나 사태로 NHL 선수들이 베이징 올림픽에 못 온 것을 고맙게 여기자. 중국이 0대100으로 지는 참패를 눈뜨고 볼 뻔했다.” 중국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