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울하프마라톤에 참가한 정수영씨가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병원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는 정수영(48)씨는 2012년 오른쪽 신장을 제거한 뒤 모든 게 조심스러워졌다. 신장암 진단 뒤 받은 수술이었다. 그리고 극도로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좋아하던 기름진 음식과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피곤해지면 신장에 부담될까 몸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 후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매사 몸을 사렸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1년 4월, 아들이 물어왔다. ‘아빠, 배가 엄청 나왔네? 왜 이렇게 나온 거야?’ 혹여 몸에 부담될까 아무 운동도 하지 않은 세월이 길어지자 나온 배였다. 정씨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수술 후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날 집 주변을 뛰었다. 스무 걸음도 되지 않아 숨이 차서 손으로 무릎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매일 뛰었다. 스무 걸음이 마흔 걸음이 되고, 두 달 만에 30분은 천천히 뛸 수 있었다.

그렇게 정씨는 달리기에 매혹됐다. 뛰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면서 ‘신장이 하나여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10㎞, 하프마라톤 등을 완주하며 거리를 늘려갔다. 지난달엔 일반인도 뛰기 힘든 42.195㎞ 풀코스를 3시간59분8초로 완주에 성공했다.

30일 열린 2023 서울하프마라톤은 더욱 뜻깊었다. 하프마라톤 부문에 출전해 혼자 완주하는 것을 넘어서서 같은 달리기 동아리 회원의 페이스메이커로서 1시간55분21초 기록으로 함께 완주에 성공했다. 정씨는 “혼자 뛸 때는 기록이 잘 안 나오면 아쉬웠는데, 함께 뛰니까 기록이 덜 나와도 더 기쁘다. 이게 달리기의 또 다른 재미”라고 했다.

정씨는 근무하는 병원에서 업무 외 상담도 가끔 한다. 같은 병인 신장암을 앓는 환자들이 정씨의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암을 앓고 나면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저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프마라톤을 거뜬히 완주한 정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