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보>(141~161)=승부에서 조심성만큼 중요한 덕목이 또 있으랴. 하지만 신중이 지나치면 위축으로 발전한다. 기량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자신감도 중요한 요건이지만 ‘무조건 돌격’은 또 다른 패배의 지름길이다. 고비마다 감정을 제어하고 냉정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 인간이 첨단 인공지능에 비해 부족한 것은 기량만이 아니다.

141로 단수 친 수가 경솔했다. 슬슬 잘 풀리다 보니 방심이 깃들어 지나치게 기분을 냈다. 참고도를 보자. 단순히 흑 1, 3을 선수하고 14까지 진행된 뒤 15로 잇는 수가 포인트. 그랬으면 A와 B를 맞봐 백의 파탄이었다. 실전은 흑 ‘가’, 백 ‘나’ 때 ‘다’로 끼워 차단하는 맛이 성립하지 않는다. 중앙 흑의 공배를 꽉꽉 메워 스스로 자충(自充)을 만든 것.

이렇게 돼선 흑이 다시 다급해졌다. 좌변 대마의 삶을 패에 의존하는 수는 남아있지만 완전하지 않다. 역시 고립된 중앙 백 대마를 물고 늘어지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157, 161의 초강수를 동원하고 나선 배경이다. 단 한 차례 회돌이의 통쾌함을 즐긴 딩하오의 방심 탓에 곧 끝날 것 같던 바둑이 또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 (146…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