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개월 연속 여자 랭킹 1위를 독주 중인 최정 9단. “현재 14위인 남녀 통합 순위를 연말까지 10위권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한국기원

최정(27) 9단의 독주는 볼수록 경이적이다. 3월 현재 112개월 연속 한국 1위로 ‘10년 집권’이 눈앞에 다가왔다. 획득한 타이틀이 26개, 국제 개인전만 8개에 달한다. 모든 기록이 신화로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여자 부문’이란 단서가 따라붙는다. 현재 남녀 전체 랭킹은 14위. 그는 지난주 센코배 우승 후 “통합 10위권 진입이 새로운 목표”라고 밝혔다. “랭킹이 오르면 자신감이 붙어 상승세를 부채질한다”며 “올해 안에 한 자릿수 순위에 들고 싶다. 자신 있다”고 호언했다. 최정의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현재 국내 프로 기사는 총 421명이고, 그중 19.2%인 81명이 여자다. 3월 기준 여성 2~5위 기사의 통합 순위는 69위(김채영), 84위(김은지), 122위(오유진), 161위(조혜연)다. 남녀 간 큰 격차, 그리고 최정의 압도적 위상이 동시에 확인된다.

최정이 그려온 랭킹 그래프를 보면 그가 10위권 진입을 갈망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2011년 11월 102위로 시작해 2017년 8월 50위권(48위)에 처음 진입했고, 30위권(2019년 1월·29위)과 20위권(2019년 12월·17위)에 발을 들였다. 걸음 하나하나가 여자 바둑 역사에 남을 ‘자이언트 스텝’이었다.

지난 2월 개인 최고 순위인 13위를 찍고 한 달 뒤 3월 한 계단 내려왔다. 10위 기사와 랭킹 점차가 14점까지 근접했다가 2월 한 달 부진해 46점 차로 벌어진 것. 치솟기만 하던 상승 곡선이 비로소 단단한 벽에 막혀 주춤대는 모양새다. ‘베스트 10′의 철옹성을 뚫기 위한 본격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최정의 도전은 여성 바둑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도 통합 10위권을 경험한 여성 기사는 아직 없다. 최정의 라이벌인 위즈잉의 중국 최고 순위는 45위(2017년 3월)였다. 역대 최강 여성 기사로 꼽히는 루이나이웨이는 58위(2010년 4월)가 한국에서 기록한 최고 순위로 남아있다. 물론 랭킹 계산 방식이 여러 번 바뀌어 단순 비교는 어렵다.

최정은 아직 종합(혼성) 기전 우승 경력이 없다. 2019년 참저축은행배 대회 4강이 최고 실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국수전 우승 관록의 루이나이웨이와 비교하며 “최정의 한국 랭킹 톱10 진입은 시기상조”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한쪽에선 최정의 화려한 국제 경력을 내세워 반박한다. 삼성화재배 준우승 등 세계 메이저 대회에 11회나 출전했고, 그 과정에서 스웨·구쯔하오·양딩신 등 세계 챔프 출신 강자들을 줄줄이 꺾었다는 것. 실제로 현 10위권엔 최정의 이력에 못 미치는 남자 기사도 몇 명 눈에 띈다.

최정은 프로 통산 1017전을 싸워 705승 312패를 기록 중이다. 69.3%의 높은 승률이다. 상대 기사를 성별로 분류하면 남성에게 51.3%(448전 230승 218패), 여성 기사에겐 무려 83.5%(475승 94패)로 격차가 크다. 랭킹은 가중치가 높은 하이랭커를 잡을 때 오름폭이 크다. 여자기사들 상대로 쌓는 승수는 ‘영양가’가 떨어지는 셈.

한국기원 랭킹 관리 책임자인 장은애 과장은 “최 9단이 남성 강자들을 상대로 승률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10위권 진입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연내 성사 가능성은 50%로 본다”고 진단했다.